[원주시] 원주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마주하다. 원주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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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예술이 숨쉬는 도시, 원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원주 역사박물관은 처음에 원주시립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2000년 11월에 개관했으며, 2010년 원주역사박물관으로 개칭하였습니다. 원주의 역사에 대해 꼼꼼히 알아볼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써 학생들이 많이 오며, 자녀 현장체험학습으로도 많이 방문하는 장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전시물들이 있어 유익한 여행이 되어줄 공간으로 떠나볼까요?

 

오늘 원주 역사박물관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박순영 해설사님입니다. 원주 역사박물관에 관하여 폭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계신 해설사님과 함께 원주의 역사에 대해 알찬 이야기들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에 앞서 원주 역사박물관 입구의 연꽃이 오늘을 위해 피었다며 만남부터 미소를 짓게 해주셨습니다.

 

원주 역사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이 자동차는 10대 대통령 故 최규하 전 대통령이 타고 다니던 것이며 역사박물관 뒤편으로는 故 최규하 전 대통령의 생가 터에 복원된 전통한옥이 있어 야외공연 및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지 전시물을 먼저 둘러봅니다. 강원도 원주는 닥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한지의 고장으로 불러져왔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닥나무를 꺾고, 벗기서, 말리고, 씻는 과정을 100번까지의 손길에 거쳐서 만든 것이 바로 한지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한지 전시물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옛 시절에는 출생부터 교육, 혼사, 죽음까지 한지와 함께 해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승람도는 지금으로 치면 모두의 마블, 세계여행과 같은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것으로 옛날에도 방식은 다르지만 현재와 비슷한 맥락의 재미있는 놀이를 즐겼습니다.

 

원주 역사실을 들어가기 전 꿩 두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둘 중 어떤 것이 수컷 꿩일까요? 사자에서도 갈퀴머리가 있으면 수컷, 공작에서도 더 화려한 것이 수컷인 것처럼 위의 두 꿩 중에서도 오른쪽 꿩이 좀 더 눈에 띄는 것으로 왼쪽은 암컷(까투리), 오른쪽이 수컷(장끼)이라고 합니다.

 

원주는 보은의 도시라고 불리었는데 은혜 갚은 꿩 이야기가 그 이유를 뒷받침해줍니다. 한 선비가 치악산 산길을 지나가다가 꿩이 구렁이의 먹이가 될 뻔했는데 화살로 꿩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선비가 잘 곳을 구하다가 한 여인네가 잠자리를 제공해주어 어느 초가집에서 잠을 청했지만 목이 졸리는 느낌에 깨어보니 여인네는 선비가 화살을 쏜 구렁이의 암컷구렁이었습니다. 암컷구렁이는 아침까지 종이 3번 울리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기적적으로 아침까지 종이 3번 울려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이야기일까요? 바로 선비가 살려준 꿩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상원사 종을 머리로 쳐서 3번을 울려 선비를 살려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치악산의 ‘치’자가 꿩 ‘치’로 원래의 산 명칭 적(붉을)악산에서 꿩의 보은 이야기를 통해 치악산으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기획전시실은 주기적으로 전시물이 바뀌는 곳으로 이번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짚풀공예를 전시하여 멍석, 항아리 등등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짚신은 하루 4~5켤레는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금방 헤지는 편으로, 부유계층들은 한지로 짚신에 덧대어 잘 닳지 않는 신발을 신고 다녔다고 합니다. 지난번 전시에는 원주 풍경 사진을 전시하였으며 이전 작품들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전시실을 나오면 돌로 만든 석불 좌상을 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 불상으로 불상 뒤의 나뭇잎 모양의 조각은 광배라 하는데 사실은 배 모양을 형상하여 만든 것입니다. 옆으로 걸음을 옮기면 청동으로 만들어진 철불 좌상이 있는데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가장 유행했던 것이 철불이었다고 합니다.

 

원주의 역사가 시작되는 역사실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이 곳에는 선사시대부터 근 현대시대까지의 전시물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원주의 이름이 언제부터 나왔을까요? 고려 태조 왕건때 원주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장수왕때에는 원주 문막 부근의 드넓은 평야가 전략적 요충지로 평원군으로 자리 잡았으며, 통일 신라때 작은 서울이라 불리는 9주 5소경 북원경으로 원주가 속해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강원감영이 설치되면서 원주가 핵심적인 도시로 되었습니다.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 선사시대의 모습을 확인해 봅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생활모습과 사용했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이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점차 자리를 잡고 정착하게 되면서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도구의 모습, 나아가 구역싸움이 시작되면서부터 싸움을 위한 도구가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봅니다. 불교의 중심지 원주를 입증하는 다양한 유적물들 중 눈에 띄는 거돈사, 법천사, 흥법사 탑비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국보 법천사의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상감기법을 써서 화려한 문양이 들어가 있는 섬세함을 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 다섯 명의 왕에게 사랑을 받았던 지광국사는 임금이 타는 가마까지 타고 다닐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던 역사적인 사람입니다.

 

조선시대 당시 강원감영의 모습입니다. 감영은 조선시대 각 도의 감사가 거처하며 집무를 보던 관청으로 강원감영은 현재 원주시 일산동에 일부 남아있는 강원도 유형문화제 제3호입니다. 내선문을 통해야 선화당을 통해 관찰사를 만날 수 있는 구조입니다.

 

1910년대부터 2000년도까지의 원주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입니다. 1910년대 사진은 관찰사를 만나기 위한 첫 번째 문인 포정루입니다. 여기까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원주의 모습을 알아보았습니다. 원주 역사박물관에서 여름방학을 보낸다면 아이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오면 민속생활실과 일사 김봉룡실이 있습니다. 먼저 일사 김봉룡실에서 나전칠기에 대해 알아봅니다. 나전칠기란 조개패, 전복껍데기 등을 사용해서 가구 등에 붙여서 예쁘게 장식을 하는 것으로 일사 김봉룡실 입구에서는 나전칠기 도안하기부터 완성까지의 제작과정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사 김봉룡 선생님은 소라류, 전복류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원주는 1968년 일사 김봉룡 선생님이 이주를 한 이후 칠공예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으며, 일사 김봉룡 선생님은 원주 정착 이후 원주만을 위한 옻칠, 나전칠기의 원주정착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습니다.

 

민속생활실로 넘어와 봅니다. 원주의 의생활, 식생활 등 다양한 원주의 민속생활, 그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원주의 4계절 세시풍속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6월에는 삼복더위 7월에는 칠석인 7월 7일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등이 있습니다.

 

원주 역사박물관에는 전통공예실이 따로 구비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전통문화 체험하기’ 프로그램이 매주 토, 일요일 오후 2시~4시까지 열립니다.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도자기, 전통문양(팽이, 컵받침), 한지 공예 등의 다양한 체험을 통해 나만의 공예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원주의 역사박물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가오는 방학에는 온 가족이 함께 원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면서 다양한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는 원주 역사박물관으로의 여행을 떠나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원주 대표음식 뽕잎황태밥은 자연 그대로 담아내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일석이조의 웰빙 한정식입니다. 뽕잎은 성인병 예방에 좋고, 노화방지 효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뽕잎황태밥을 먹고 나면 한층 건강해짐이 느껴집니다. 원주를 대표하는 건강음식과 함께 알차고 배부른 여행을 즐겨보세요.

 

 


●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5, 5-1, 5-2번 버스 탑승 후 원주역사박물관 정류장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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