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건 인재" 예산 둑 무너져…1시간만에 마을 통째 잠겼다 [르포]

본문

“아~ 말도 마유. 밤새 잠 한숨도 못 자고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 듣고 이것저것 짐을 싸는데 집 마당까지 물이 잠겼어유. 우리 집이 마을에서 그나마 높은 곳에 있는데.”

17527356305476.jpg

117일 오후 충남 예산군 삽교읍 하포1리에서 119구조대원들이 고무보트를 이용해 물어 난 물에 고립됐던 주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17일 오후 1시 20분쯤 119구조대 보트로 구조된 충남 예산군 삽교읍 하포1리 주민 박은순(여·74)씨는 긴박했던 전날 밤과 새벽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박씨는 구조 직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많은 사람이 제방 위에 남아 있다”며 “7시간 만에 안전한 곳으로 나오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예산에는 전날인 16일부터 시간당 1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삽교천과 무안천이 범람했다. 설상가상으로 상류인 예당호에서 시간당 1000㎥가 넘는 물을 방류하면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났다.

마을방송 듣고 제방·마을회관 옥상으로 대피

하포1리 주민들은 이날 오전 6시쯤 “대피하라”는 마을방송을 듣고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집은 물론 마을 안길에는 물이 차지 않았다. 남성들은 대부분 비닐하우스 상황을 살폈고 여성들은 대피할 장소에서 필요한 옷가지와 이부자리 등을 챙겼다고 한다.

17527356307716.jpg

117일 오후 충남 예산군 삽교읍 하포1리에서 119구조대원들이 고무보트를 이용해 물어 난 물에 고립됐던 주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하지만 30여 분이 지난 오전 6시 30분부터 마을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전 7시쯤에는 본격적으로 마을이 침수되면서 주민들이 인근 마을회관이나 제방으로 대피했다. 마을회관도 금세 물에 잠겨 주민 10여 명은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렸다. 20여 명은 높은 제방(삽교천)에서 구조의 손길을 요청했다. 주민 대부분은 고령의 어르신이다. 주민 50여명 가운데 70대 이상이 80%를 차지할 정도다.

119구조대, 고무보트 투입해 주민 무사히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는 마을이 이미 물에 잠겼고 도로를 이용한 구조가 어렵다고 판단, 고무보트를 투입했다. 구조대원들은 마을을 돌며 집에 남아 있는 어르신을 구조한 뒤 마을회관과 제방을 오가며 주민을 실어 날랐다. 공중에는 드론을 띄워 구조를 기다리는 주민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17527356309915.jpg

17일 오전 충남 예산군 오가면 신원1리 비닐하우스와 주택이 불어난 물에 잠겨 있다. 신진호 기자

새벽 잠을 설치면서 겨우 목숨을 구한 주민들은 보트에서 내린 뒤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여. 집과 비닐하우스가 다 잠겼으니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할 지 걱정이여”라고 한숨을 쉬었다.

마을 주민들은 119구조대원들에게 안전을 당부했다. 주민들이 대피한 제방 근처에 배수펌프장이 있는데 근처에 접근하면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조대원들은 배수펌프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고무보트를 접안한 뒤 주민들을 안전하게 이동시켰다. 보트에서 내린 주민들은 대부분 건강했다. 병원에 가자는 구급대원들의 안내에도 “괜찮다.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며 자리를 떴다. 이날 구조된 하포1리 주민들은 대부분 임시 대피소인 삽교중학교로 이동했다.

주민들 "공사 현장 둑이 무너지면서 마을 침수" 

하포1리 주민들은 마을이 1시간도 되지 않아 물에 잠긴 이유로 ‘무너진 둑’을 꼽았다. 마을 인근에서 교량 공사를 하는 데 이날 새벽 공사장에서 둑이 무너졌다고 한다. 주민 김영남(77)씨는 “오전 6시 30분쯤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데 (공사장) 둑이 무너져 마을이 침수되고 있었다”며 “2년 전 청주에서 발생했던 사고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17527356312262.jpg

17일 오전 충남 예산군 오가면 신원1리 비닐하우스와 주택이 불어난 물에 잠겨 있다. 신진호 기자

예산군 오가면 신원1리는 인근 무한천이 범람하면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비닐하우스는 꼭대기만 남았고 주택도 대부분 물에 잠겼다. 신원1리 주민들은 오전 7시부터 시작한 예당호 방류로 마을이 물에 잠겼다고 주장했다. 이날 새벽 3시부터 쪽파를 심은 비닐하우스를 둘러본 주민은 “갑자기 재난 문자가 들어오더니 (예당호 물을) 방류한다고 하더라. 아래쪽이 이미 물이 가득한데 저수지 물을 한꺼번에 내려보내니 감당이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침수가 ‘인재(人災)’라고 했다.

오가면 신원리도 주택·비닐하우스 침수 피해

한편 지난 16일부터 내린 폭우로 충남에서는 주택과 차량 침수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확한 재산 피해는 비가 그친 뒤 집계가 가능할 것으로 관계 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448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