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호카 주춤한 사이 ‘온’의 시대가 왔다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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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포츠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 단연 ‘온(온 러닝)’이라 말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나이키와 아디다스라는 두 개의 매머드급 브랜드가 시장을 이끌었던 운동화 시장이 ‘호카’라는 새로운 스타의 등장으로 판세가 바뀌기 시작하더니, 이젠 온으로 그 흐름이 넘어왔다.
스타 된 스위스 운동화, 온(On) #러닝 트렌드 속 호카 누르고 성장 #‘구름 위 달리는 느낌’ 기술력에 #명품·스타 협업으로 소유 열망까지

지난 7월 3일 스위스 스포츠 브랜드 온이 선보인 로봇 공학과 라이트 스프레이 기술로 만든 퍼포먼스 러닝화 ‘클라우드붐 스트라이크’. 사진 온
구름 위를 달리는 느낌을 준다고?
온은 겨우 설립 16년 차에 접어든 젊은 브랜드다. 77년 된 아디다스, 62살 먹은 나이키를 생각하면 새내기급이다. 온은 먼저 인기를 얻은 호카보다 1년 늦은 2010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설립된 브랜드다. 철인 3종 경기에서 6번이나 우승한 선수 출신 올리비에 베른하르트와 그의 친구 데이비드 알레만, 카스파 코페티가 공동 설립했다.
베른하르트는 은퇴 후에도 러닝을 즐겼는데, 당시 신던 나이키 운동화에 부족함을 느끼고 직접 운동화를 만들기로 한다. 선수 시절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그는 착지할 때 충격을 줄여주는 동시에 달릴 때 추진력을 제공하는 운동화를 꿈꿨다고 한다(※보통 운동화는 충격 완화 기능이 높을수록 추진력은 약해진다).

온의 아웃솔.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온 러닝화 기술의 핵심이다. 사진 온

온의 공동 창립자 올리비에 베른하르트가 정원용 호스를 잘라 만든 러닝화 프로토타입. 사진 온
그는 기존 러닝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운동화를 디자인하고, 정원용 호스를 잘라 밑창(아웃솔)에 붙여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타 브랜드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그의 '소박한' 운동화 개발 과정은 이후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클라우드테크’ 쿠셔닝 기술로 발전했다.

클라우드테크를 적용한 온 러닝화. 울퉁불퉁한 밑창이 착지시 충격 완화 효과와 달릴 때 추진력을 도와준다. 사진 온

테니스의 전설 로저 페더러는 자국인 스위스 브랜드인 온에 직접 투자한 것은 물론이고, 협업 라인 '더 로저'를 출시해 온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사진 온
2019년엔 스위스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가 투자자로 참여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페더러는 투자에 머물지 않고 '더 로저(The Roger)'라는 라이프스타일 스니커즈 라인을 온과 공동 개발해 출시해 성공시켰는데, 이를 계기로 온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올해 온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발표한 ‘2025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에 스포츠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호카 vs 온, 수퍼루키들의 전쟁
온이 단독 선두로 나서기까지 경쟁자는 분명했다. 바로 미국의 호카다. 두 브랜드는 코로나19로 운동 시설이 폐쇄되며 달리기, 걷기, 하이킹 등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급성장했다. 주목할 점은 2022년 당시만 해도 폭발적인 매출 성장률은 비슷했지만 이후 다른 전략을 택하면서 온이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이다.
2020년 온은 4억5400만 달러(약 6260억 원)에서 2021년 7억9300만 달러(약 1조1000억 원)로 75.5%가, 호카는 같은 기간 4억9600만 달러(약 6840억 원)에서 7억8600만 달러(약 1조839억원)로 58.5% 성장했다. 2022년에도 흐름은 이어져, 호카는 전년 대비 65.8%가, 온은 61.5% 성장했다.
하지만 2022년을 기점으로 기세는 전환됐다. 온의 매출 증가율은 고속 성장세(전년 대비 55.9% 성장)를 유지한 반면, 호카는 8.3% 성장률에 그치며 성숙기에 진입했음을 알렸다. 다음 해 바로 호카도 28%대의 성장률로 두 자릿수 성장세를 회복했지만, 온의 성장(32%)엔 못 미쳤다.
올해는 과연 어떨까. 일단 1분기는 온의 승리다. 지난 5월 2025년 1분기 기업 실적 발표에서 온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3% 증가한 매출(약 1조1500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호카의 경우 같은 기간 매출은 5억8610만 달러(약 8090억 원)로 예상치에도 못 미치는 실적을 내놨다.

온 vs 호카 매출, 성장률 추이. 그래픽 전유진, 자료 각 브랜드 IR
기술은 기본, 정체성이 중요하다
양사의 전략 차이는 명확하다. 호카는 러닝 유저 중심의 퍼포먼스 중심 성장 모델을 택했다. 트렌드보다는 기능성과 전문성에 집중했고, 제품군도 아웃도어·레이싱 중심으로 구성했다.
반면 온은 뛰어난 기술 기반은 유지하되 스포츠 스타, 럭셔리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하며 ‘운동화 이상의 운동화’ 전략을 구사했다. 로저 페더러라는 스포츠 스타와의 협업은 정규 상품화돼 일상에서 신는 운동화로 인기를 얻는 중이다. 또한 배우 젠데이아와의 협업, 새로 출시한 신제품 ‘클라우드6' ‘클라우드 서퍼2’가 인기를 얻으며 올해 1분기의 인기를 견인했다.

배우 젠데이아는 온과 협업해 의류 라인을 론칭하고, 이들의 광고 캠페인을 함께했다. 사진 온

온의 의류와 운동화를 착용한 젠데이아. 사진 온

케냐의 장거리 달리기 챔피언 헬런 오비리가 경기 후 자신이 신었던 온 러닝화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온
특히 2022년부터 이어온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와는 올가을 벌써 8번째 컬렉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협업은 온이 일반적인 스포츠용품을 넘어서 럭셔리 소비자층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온의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이들의 판매전략이다. 온은 브랜드가 직접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D2C(Direct-to-Consumer) 유통에 집중한다. 주요 판매 플랫폼은 온라인 홈페이지 겸 자사 쇼핑몰. 신제품을 출시하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이 소식을 접할 수 있고, 또 주문할 수 있다. 이 전략이 먹히면서 올해 DTC채널을 통한 온의 순매출은 전년 대비 45% 이상 증가하며 브랜드의 성장을 견인했다. 특히 중국·일본·한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130% 넘는 매출 증가가 있었다.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와 협업한 온의 운동화. 올 가을 8번째 협업 컬렉션 출시를 예정하고 있다. 사진 온
이제 운동화는 달리기만을 위한 신발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패션과 문화, 테크 아이템이 됐다. 달릴 때의 기능성, 일상에서 신었을 때의 편안한 착화감, 그리고 ‘패션’이 되어야 확장될 수 있다. 아디다스의 이지부스트와 나이키의 조던 시리즈가 이미 이 길을 개척했다면, 온은 여기에 기술력과 럭셔리 감각을 접목한 하이브리드 전략을 통해 새 지평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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