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李 “한·미 협상, 모든 사항이 걸림돌”…기로에 놓인 APEC 빅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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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27일 공개된 미국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투자 방식, 투자금, 일정, 손실 분담 및 투자 이익 배분 방식 등이 모두 쟁점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 타결이 쉽지 않다고 시사한 것이다. 오현주 국가안보실 3차장도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간담회에서 “현재 진행되는 것을 볼 때 이번에 바로 타결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최근 한·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미국과 추가 협상을 하고 귀국한 지난 24일 “양국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그 전날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관세 협상에)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26일 “(한·미) 정상회담 계기에 타결될 수 있는지는 확신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미 대통령실은 관세 협상이 장기화하는 것을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김용범 실장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만난 이후 협상 상황에 큰 변화는 없는 상태다. 3500억 달러(501조6000억원)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해 미국은 여전히 연간 250억 달러(35조8000억원)씩 8년간 직접 현금 투자를 요구하는 반면 한국은 150억 달러(21조5000억원)가 연간 최대 한도라고 방어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측의 발언 분위기는 한국과 정반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면서 “(관세 협상) 타결에 매우 가깝다”며 “그들이 (타결할) 준비가 된다면, 나는 준비됐다”고 했다.
양국의 협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데도 ‘희망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건 고도의 협상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인교 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공을 돌리며 압박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미국 측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줄이는 식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위기도 전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협상 추가 논의를 마치고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전 본부장은 “한국은 25% 관세로 피해를 보더라도 시간에 얽매여 불리한 협상을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발신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 연방 대법원의 관세 판결도 있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섣불리 협상을 타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연방 대법원은 다음달 초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위법성 여부를 심리하는데, 그 결과에 따라 한·미 관세 협상도 원점 재검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지만 (협상 타결의) 지연이 꼭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는 평가다.
29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톱다운’ 방식의 담판으로 협상을 타결지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담판 합의는 어느 정도 이견이 좁혀진 상태에서 가능한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며 “29일 두 대통령의 오찬, 정상회담 일정도 긴 편은 아니라서 담판으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관세 관련 양해각서(MOU)나 공동성명은 발표하지 못하더라도, 현재까지 합의된 내용을 법적 구속력이 없는 팩트시트(설명자료) 형태 등으로 발표하는 방안을 미국 측과 논의 중이다.
하지만 극적인 막판 협상 타결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오현주 차장은 “노딜(no deal·협상 결렬)이라는 건 정부의 입장은 아니다”며 “마지막까지 협상단은 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양자 회담을 앞두고 악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6년 만에 이뤄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대면 회담을 언급하며 한국을 “두 맷돌(grinding stones) 사이에 낀 나라”에 비유했다. 미·중 사이에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마치 중국과 미국이 우리의 양팔을 각각 반대편으로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며 “우리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국 협력을 중시하는 기본 정책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중국이나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과도한 대립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이 대통령이 지난 8월 밝힌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탈피 기조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29일 트럼프 대통령과, 다음달 1일 시 주석과 연쇄 정상회담을 한다. 미·중 정상회담은 30일 열린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이 대통령의 안미경중 탈피라는 기본 입장은 맞다고 본다”며 “과거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거리의 균형’을 취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이익의 균형’을 취하는 게 정답이라고 본다”고 했다.
APEC 정상회의에서 대북 이슈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 전망이다. 오현주 차장은 “세계 무역 질서가 혼란스러워 경제협의체에서의 공동 선언문 도출이 쉽지 않지만, 채택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며 “(북한 핵과 관련한 내용이) 공동 선언문에 들어가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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