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권력 바뀌어도 등기 영원"…무주택자가 만든 '권력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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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한강변 아파트단지. 뉴스1
초강력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규제로 묶인 뒤 파장은 컸다. 집값을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하지만 '실수요자 부담을 가중시켰다', '주거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한 온라인 부동산 카페에 올라온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정책 만드신 분들은 서울 비싼 땅에 아파트가 있겠죠?'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보유 실태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김용범 정책실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 등 정책 결정권자들이 '갭투자'로 자산 증식을 이룬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끝내 이상경 전 차관이 물러난 후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도마에 올랐다. 과거 시민단체 간부 시절 '다주택자는 고위공직자 임명 제한'을 주장했던 그가 서울 서초구 아파트 2채, 상가 2채를 보유했다고 알려지자 "부동산 내로남불"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그가 매도 의사를 밝힌 뒤엔 호가가 얼마라든지, 반나절만에 팔렸다든지, 계약금으로 ETF를 매수했다든지 당이 실시간 중계되다시피 했다.
부동산 논란 속에 입길에 오른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공직자의 자산 목록, 평가액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고위공직자 자산추적사이트 '리얼 시그널(real-signal.org)이다. 지난 6월 개설됐지만, 10·15 대책을 계기로 폭발적 관심을 받고 있다.
사이트는 재산 신고를 바탕으로 건물·토지·증권·예금, 채무까지 고위공직자 재산 현황을 꼼꼼히 알려준다. 부동산의 경우 실제 어디에 보유하고 있는지, 어느 지역에 몰려 있는지 지도에서 보여준다. 마침 '리얼시그널(진짜 신호)'라는 사이트명도 "투기를 잡겠다"는 공직자의 말보다 그들의 행동을 보라는 의미다.

리얼시그널 사이트 캡처
하루 50만명이 접속하고 있지만 지금껏 개발자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었다. 중앙일보는 사이트 개발자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본인 소개를 해달라.
- 경기도에 거주하는 30대 남성 무주택자다.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평범한 IT업계 직장인이다. 퇴근 후 남는 시간에 만들었는데, 직장 동료에게도 말을 안 해서 배우자만 알고 있다. 도메인(사이트 주소) 비용으로 1년에 10달러 외에는 들어간 돈이 없다. 초기에 데이터 수집하고 가공하느라 30시간 걸렸고 지금은 유지 관리 작업만 하고 있다.
- 인기를 실감하나.
- 지난 6월에 만들고 나서 잊고 있었다. 처음엔 궁금하면 와보라고 온라인 홍보글도 썼지만 접속자 수가 미미했다. 그러다 9·10월 들어 접속자가 폭증했다. 요즘 하루 50만명이 들어오니 부담스러운 동시에 재밌기도 하다.
- 왜 만들었나.
- 부동산 정책을 내고 정치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국가와 국민이 최우선인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들도 사람이지 않나. 자기 재산이 걸려 있는데 집값을 낮추겠다고 하니 신뢰가 가지 않았다. 특히 재건축, 재개발, 용도 변경 등 개발 호재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그들만이 접근하는 정보가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누가 어디에 투자를 해놨는지 지도로 한눈에 보여주고 싶었다.
- 정책 결정권자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가.
- 우선 나는 정파성이 전혀 없다. 그런데 이번 부동산 대책 나온 뒤에 고위층 누가 집 팔았다는 소리를 못 들어봤다. '서울 집값은 안 떨어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진보든 보수든 높은 분들의 서울 아파트에 대한 신뢰는 정말 단단하다. 이런 게 리얼시그널 아닌가.

지난달 15일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합동브리핑'. 오른쪽부터 이억원 금융위원장,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임광현 국세정창. 연합뉴스
-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 문재인정부에서 청와대 계셨던 분이 대통령 지시에도 집을 안 팔고 버티다 사표를 낸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직보다 집'이란 사실이 임팩트가 컸다. 솔직히 나 같아도 그랬을 거 같다. 권력은 4~5년마다 바뀌지만 아파트 등기는 영원하다.
- 어떻게 부동산 정책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까.
- 한국에선 누구든 부동산 가치 상승을 기대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주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주식도 사장단 등 내부자가 팔면 시장 심리가 확 바뀐다. 이제 집값 내릴 거라고 말하는 분들이 다주택자라면 자기부터 팔아야 한다. 억지로라도 팔게 했으면 좋겠다. 집값 하락을 일으키는 매도 분위기는 그래야만 시작될 것 같다.
- 강제로 팔게 하는 건 가혹하지 않나.
- 언론 보도에서 (이상경 전 국토부 차관이) '2채 중에 1채를 팔려 했는데 아직 내가 원하는 가격이 아니다. 내가 자선사업가는 아니지 않나'라고 하는 걸 봤다. 개인 자격으로는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럴 거면 공직을 맡으면 안 된다.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아예 안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이트를 만들면서 특히 눈길이 간 인물이 있나.
- 김남국 디지털소통비서관의 가상화폐 사랑에 놀랐다. 국회의원 시절 신고 내역인데 아파트 없이 가상화폐를 샀더라. 나쁘게 보지는 않고 세대가 바뀌었다고 느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증권 포트폴리오가 정말 대박이다. 과거부터 찾아보면 텐버거(10배 상승) 달성한 주식이 한두개가 아니다. 투자한 기업도 전부 테크 업종이고 IT업계 사람들만 알 만한 회사도 있다. 앞으로 어떤 기업에 투자할지 기대된다.
- 사이트 향후 방향이 궁금하다.
- 공직윤리시스템(PETI)에 등록된 고위공직자 재산 자료가 사이트로 자동 연계되는 구조다. 그런데 인사혁신처에서 정확성 검증을 제대로 안 한다고 느꼈다. 증권 보유 내역에서 회사 이름이 잘못되거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옛 지명이 그대로 등록된 경우도 있다. 특히 해외 부동산을 신고한 고위공직자가 30~40명인데 평가액이 제멋대로 돼 있다. 네티즌들과 집단지성으로 실제 가치에 가까운 가격으로 수정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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