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살면서 이렇게 가슴 뛴 적 있어?" 노인 셋의 일탈, &apo…

본문

bt30392dfb9b5b02410cfba58cdc622a67.jpg

박근형(왼쪽)과 장용, 80대의 두 배우는 “영화가 우리들의 얘기이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재미있게 찍었는데 이렇게까지 떠들썩한 영화가 될 줄 몰랐지.”

영화 ‘사람과 고기’(지난달 7일 개봉)의 주연 배우 박근형(85)의 말에 또 다른 주연 장용(80)이 맞장구를 쳤다.

“고기 뒤집는 타이밍을 놓쳐 과자 같은 삼겹살 엄청 먹었어. 하하.”

뉴욕타임스가 ‘올해의 유쾌한 발견’이라 극찬한 ‘사람과 고기’는 노년의 삶을 유쾌하면서 따뜻하게 그린 독립 영화다. 입소문 속에 장기 상영하며 관객 수 3만 명을 향해 가고 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장항준 감독, 가수 윤상·양희은 등이 후원상영회를 여는 등 응원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형준(박근형)과 우식(장용), 길거리에서 채소를 파는 화진(예수정)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우연히 만난 세 독거 노인은 형준의 집에서 소고기 뭇국을 끓여 먹으며 친해진다. 오랜만에 접한 고기 맛은 이들을 무전취식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

bt934140421d3e5a302e355892534e7134.jpg

bt4e9e6a5f9b7a86ee99822c34bbf87011.jpg

bt8d94690b8f99d878b911584cc116a4f6.jpg

영화 ‘사람과 고기’는 노년의 쓸쓸한 풍경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형준(박근형, 위 사진)과 우식(장용, 아래 사진)은 채소를 파는 화진(예수정, 가운데 사진 왼쪽)과 함께 무전취식을 한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지난 8일 서울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만난 두 배우는 “내 얘기이자, 노인들 얘기이기 때문에 작품을 선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박근형은 “하고 싶던 얘기를 토해낸 것 같아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서글픈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노인들에게도 욕망과 꿈이 있다는 걸 담백하게 보여준 영화죠. 망사 조끼를 입히려 하길래, ‘내가 쌀장수냐’며 예쁜 캐릭터 셔츠를 입고 찍었습니다.”

박근형과 55년 막역한 사이로,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한 장용은 “시나리오에 ‘비쩍 마른 우식’으로 돼 있어 난 안되겠구나 했는데, 감독이 ‘살은 쪘어도 병색이 완연한 우식’으로 바꿔 놓았다”고 돌이켰다.

셋이 만나는 계기가 고기인 건 “돈 있어야 먹을 수 있고 혼자 먹기엔 서러운 음식”(양종현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장사가 잘되는 식당만 고르고, 비싼 고기는 주문하지 않는다.

두 배우는 무전취식 설정이 꺼림칙했지만, “노년의 삶 등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 위한 빌미”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했다. 영화의 한 장면.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하는 친구의 임종을 지키는 형준이 “너 오늘 안 죽으면 나 내일도 여기 있어야 되냐?”고 묻자, 친구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라며 쓸쓸히 웃는다. 박근형은 “연기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집만 있고 수입 없고 자식 놈들은 싸가지가 없어. 됐지?”(형준), “다 늙어서, 세상이 원하는 대로 조용히 찌그러져 있다가 조용히 죽으라고?”(화진) 둘은 직설적이고 함축적인 대사들이 영화의 묘미라면서 “웃고 나서 뒤돌아서면 슬퍼진다”고 했다.

더 이상 무전취식하지 말자고 말리는 형준과 화진에게 우식은 묻는다. “살면서 이렇게 가슴 뛰어본 적 있어?”라고.

“우식이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었지만, 둘과 함께 고기 먹으러 다닐 때가 제일 좋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울컥 했어요. 노인들의 가슴은 여전히 뛰고 있고, 계속 뛰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장용)

노인 빈곤율 1위(OECD 회원국 기준), 늙음을 ‘천형’(天刑)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화가 묻는 건 ‘노인들이 존엄한 삶을 살고 있는가’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낼까, 관객들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형준이 게이트볼 치는 노인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노인들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박근형)

장용은 노인들도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주인공이 키오스크 주문법을 몰라 슬그머니 식당을 떠나는 장면을 언급하면서다.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식으로 살아선 안돼요. 열심히 배워서 젊은 세대와 소통해야죠. 젊은이들도 평생 안 늙을 것처럼 살면 안됩니다.”

영화 말미, 우식이 남긴 ‘청춘’이란 시를 형준이 화진에게 읽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청춘의 의미는 뭘까.

“진짜 삶은 나이 먹고부터죠. 형준의 대사처럼 ‘끝에서 돌아본 인생이 진짜’예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더 치열하게 무대에 오릅니다.”(박근형)

장용은 우식의 시 ‘청춘’을 읊었다.

“목청껏 웃고 싶어서 목 놓아 울어본다. 살기도 귀찮고 죽기도 귀찮다…가슴 속에 할 말이 너무 많아 배고픔도 잊어버린다…눈 떠보니 아침, 햇살은 공평하다.” 즉석에서 덧붙인 “공평하지 않은 건 상영관”이란 말에 주변이 웃음 바다가 됐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93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