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배추에 여치와 메뚜기,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최고 스타의 서민적 매력[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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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유물
정잉 지음
김지민 옮김
글항아리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아무리 뛰어난 걸작품이라고 해도 관심이 없고 보는 눈이 없다면 그냥 스치고 지나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 문화재나 작품을 통찰력 있게 옆에서 제대로 설명해 준다면 비록 심미안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대만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진귀한 유물을 정잉(鄭潁)보다 더 오감에 쏙쏙 들어오게 해설해 줄 수 있는 길잡이는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정잉은 중국 고전문학 전공자로 타이베이 의학대학 전인교육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쓴 『애착 유물』은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의 70만 점 보물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36점을 해설한 책이다. 취옥백채, 북송 여요, 모공정, 부춘산거도, 계산행려도, 조춘도 등 인기 전시물들은 정잉의 해석에 올라타 날개를 달고 승화한다.

여요 청자무문수선분 [사진 글항아리]
가장 처음 소개된 문화재는 여요 청자무문수선분(汝窯 靑瓷無紋水仙盆)이다. 지은이는 독자들의 다보격(多寶格·황제들의 유물 서랍수납장)에 첫 번째로 담고 싶은 보물로 여요를 꼽았다. 이 문화재는 북송 황궁만을 위한 도자기 제작소인 여관요에서 빚은 청자빛 무늬 없는 수선화 받침대라는 뜻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직접 겪은 에피소드와 전문서적, 고서적, 경매기록, 역사, 정요(定窯) 백자, 남송 관요(官窯)와의 차이 비교, 예술적 감각 등을 총동원해 여요 청자무문수선분이 왜 고궁박물관을 지키는 보물인지를 아름답게 입증했다. 이 글을 읽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반드시 이 여요를 만나서 인사를 길게 나누고 싶은 감정에 복받쳐 오르게 될 것이다.
취옥백채(翠玉白菜)는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의 최고 스타다. 국보 아래 단계인 중요고물(古物)에 불과하지만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친근한 유물이어서인지 그렇지 않아도 관람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흰 바탕에 푸른색을 띤 취옥을 조각해 배추 모양으로 만들고 그 배추 위에 여치와 메뚜기를 올려 놓은 취옥백채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온갖 각도에서 요모조모 조명하고 인기의 비밀을 파헤친다. 지은이의 박학다식 설명에다 감성마저 건드리는 놀라운 솜씨가 가미돼 취옥백채의 품격은 한껏 고양된다.

취옥백채 [사진 글항아리]
중국 최고의 문인으로 꼽히는 소동파의 한식첩(寒食帖)은 그가 변방 황주에서 한식을 보내는 소회를 담은 글이다. 정잉은 한식첩을 소개하며 소동파가 살았던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불운한 인생 전체를 당대의 드라마로 재현했다. 소동파의 삶을 꼭 빼닮은 한식첩의 유랑에 관한 정잉의 스토리텔링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애착 유물』에는 이 밖에도 청나라 강희·옹정·건륭제가 쓴 법랑채 자기, 서주(西周) 선왕(宣王) 중흥의 역사를 정교하게 새긴 청동기 ‘모공정(毛公鼎), 한나라 때의 옥무인(玉舞人), 당나라 고궁의 제일가는 미인 회도가채사녀용(灰陶加彩仕女俑)에 얽힌 구구한 사연들이 역사소설처럼 전개된다. 강희·옹정·건륭제는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이 소장한 70만점의 유물 거의 대부분을 수집하고 아꼈던 황제들이다.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을 다녀올 계획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 책을 한 자 한 자 짚어 가며 정독하기를 권한다. 아는 만큼 훨씬 더 넓은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모공정책 [사진 글항아리]
우리는 지금 ‘박물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덕분인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관객은 지난 10월 15일 기준으로 이미 5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루브르, 바티칸 등에 이어 세계 5위라고 한다.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들과는 달리 내국인 관람객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아무튼 박물관이 이렇게 인기가 있다고 하니 놀랍다. 이번 기회에 한국판 정잉의 『애착 유물』 같은 멋들어진 국보 문화해설서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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