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랜 꿈 접은 순간 시작된 이야기, 악기 대신 펜으로 그은 기억[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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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엇박자의 마디
내털리 호지스 지음
송예슬 옮김
문학동네

“과거를 바꾸고 싶으면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해보기만 하면 된다.”
매력적인 첫 문장의 이 에세이는 꿈을 포기한 지점에서 시작한다.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은 저자는 매일 5~6시간을 연습했지만 무대 공포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하던 음악을 그만두고, 활 대신 펜을 잡고 자신의 과거와 마주했다.

그 과거에는 1956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외조부모, 바이올린을 좋아했지만 생활고로 그만둔 어머니, 가정폭력 끝에 가족을 떠난 아버지가 있었다. 4남매에게 악기를 들려 레슨을 다니던 어머니,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두각을 드러내면 “타이거맘”이라고 수군대던 다른 학부모들, 레슨 마친 금요일 오후 덴버 남부의 한국 식당에서 여섯 식구가 갈비와 물냉면을 먹던 추억이 음악과 함께 한다.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켜켜이 감춰둔 상처를 끄집어내 기록했다. 한 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연주의 시간에 대해서도 탐구했다. 읽다 보면 듣고 싶어지는 책이다. 작은 종이 울리듯 밝고 화려한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에선 고교 졸업 학기 연주를 망칠까 봐 덜덜 떨며 씨름하는 소녀가, 궁극의 기교를 요구하는 바흐의 샤콘에서는 영재 음악캠프에서 있는 대로 쪼그라든 열여섯 살 저자가 보인다. 대학에 가서야 연주자의 꿈을 포기한 저자는 탱고를 배우면서 상대의 리드를 믿고 굳은 몸을 맡기고, 즉흥 연주의 묘미를 알게 된다. 이때 저자가 연주한 곡은 피아졸라의 '항구의 겨울'과 '카페 1930'.

이야기는 그저 이민자 서사도, 타이거맘 스토리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꿈꿔왔던 것을 그만둬야 할 때가 올 수 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고,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첫 책으로 2022년 전미도서상 후보와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미국 공영 라디오(NPR)과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서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됐다. 『마이너 필링스』(캐시 박 홍)의 바닥까지 훑는 솔직함, 『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가 풍기는 냄새와 정서가 좋았던 독자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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