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본 실사영화 역대 1위 임박 '국보' 이상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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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국보'는 가부키 무대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 온나가타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NEW

영화 '국보'(19일 개봉)는 일본 전통연극 가부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온나가타(여성 역할을 연기하는 남자 배우)로 활동하는 기쿠오(요시자와 료)와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두 남자의 우정과 갈등, 예술 혼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아냈다.

"온나가타의 신비성에 매료" #요시다 슈이치와 세번째 협업 #"한국 영화, 다시 살아날 것"

천부적 재능을 가졌지만 가부키 혈통이 아닌 기쿠오, 피는 이어 받았지만 기쿠오 만큼의 재능은 없었던 슌스케. 서로를 뛰어넘어 최고의 온나가타가 되고자 했던 둘의 영광과 좌절, 마침내 최고의 무대를 완성하는 과정이 처절하고 숭고하게 그려진다.

영화는 일본에서 1207만 관객(흥행 수익 170억 엔)을 모으며, 역대 실사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 2'(2003, 흥행 수익 173.5억 엔)를 넘어 1위에 등극하는 건 시간 문제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일본 대표로도 선정됐다.

'국보'를 연출한 이상일(51) 감독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3세다. '악인', '용서받지 못한 자', '분노', '유랑의 달' 등의 화제작을 만들며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 됐다.

14일 서울 논현동의 한 영화사에서 만난 그는 "'국보'에도 경계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이 투영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혈통이 아닌, 외부에서 온 기쿠오가 가부키라는 폐쇄적인 세계에 들어간다는 점은 태생에서 오는 내 정체성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내 뿌리는 한국"이라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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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소재의 일본 영화 '국보'를 연출한 이상일 감독. 사진 미디어캐슬

일본 흥행 소감은. 

"봉준호 감독이 흥행 축하한다며 '고생 많았겠다"고 하더라. 흥행 열기에 스스로도 놀랐다. 일본 개봉 첫주부터 5주차까지 관객 수가 꾸준히 늘었다. SNS로 정보를 접한 젊은 층이 2주차부터 극장을 찾기 시작했고, 중장년층은 꾸준히 입소문을 냈다. '20년 만에 극장에 갔다'는 반응도 있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가부키를 소재로 만든 계기는.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라 가부키에 대한 거리감이 없었다. '악인'(2011)을 찍은 뒤 실제 온나가타 배우에 관심을 갖고,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0~60년 간 예술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으며 사생활까지도 엄격히 통제하는 신비성에 매료됐다. 마침 요시다 슈이치 작가도 온나가타 얘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해서 내가 영화화하겠다고 했다."

요시다 작가가 당부한 것이 있었나. 

"기쿠오의 가부키 무대를 실제로 보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악인', '분노'에 이어 '국보'까지 요시다 작가의 소설 세 편을 영화화했는데,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내가 쓰고 싶은 게 이거였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과 싱크로가 맞는 유일한 작가다. 인간을 향한 허무와 애정이 공존하는 시선이 닮은 것 같다."

가부키 무대 장면은 어떻게 연출했나.

"가부키 배우의 드라마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에 그들이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는 지, 어떤 풍경이 보이는 지에 집중했다. 중압감, 무대에 오른 기쁨 등 다양한 내면을 보여주고 싶어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촬영 감독 소피안 엘 파니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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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국보'는 가부키 무대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 온나가타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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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국보'는 가부키 무대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 온나가타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NEW

기쿠오 역의 배우 캐스팅이 가장 중요했을 것 같다. 

"영화를 기획한 게 5~ 6년 전인데, 그 때부터 기쿠오 역엔 요시자와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기쿠오와 마찬가지로 요시자와의 내면은 투명하고 텅 빈 느낌이 있다. 외모도 아름다워 도자기 인형이 인간이 돼서 연기하는 느낌이 든다. '유랑의 달'에서 함께 한 요코하마는 대조적으로 일에 매진하는 집요함이 있다. '소네자키 동반 자살' 무대에서 중압감과 희열을 모두 드러내는 요시자와를 클로즈업으로 찍었을 때, 이 영화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연기 지도는 어떻게 했나. 

"영화 속에서 리얼한 존재감을 표현하지 못하면 영화가 붕괴된다는 사실을 배우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1년 반 동안 준비하며 필사적으로 연습했다. 가부키 뿐 아니라, 내면을 담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했다."

무대 위 흰색과 붉은 색의 대비가 강렬하다.

"눈과 피를 중시해서 표현했다. 흰색과 붉은 색이 핵심 색깔이었다. 흰색은 죽음 뿐 아니라 모든 걸 뒤덮어 무(無)의 세계로 만드는 걸 의미한다. 붉은 색은 기쿠오의 야쿠자 아버지가 죽을 때 흘리는 피이자, 생명을 상징한다. 가부키 배우는 얼굴을 하얗게 칠해 자신을 투명하게 비운 뒤, 붉은 색 화장으로 배역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큰 무대에 서기 전 긴장한 기쿠오에게 슌스케가 붉은 화장을 해주는 건, 가부키 적통의 피를 나눠주는 느낌으로 찍은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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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국보'는 가부키 무대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 온나가타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NEW

영화가 한국 관객에도 어필할 수 있을까. 

"가부키에 거리감을 느낄 수 있지만, 영화의 중요 요소는 외부인이 혈통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둘이 원한과 질투를 넘어서 함께 발전해가는 숭고한 과정을 그리는데, 잔혹하고 잃게 되는 것도 많이 있다. 그림자를 등에 진 채 빛나는 존재가 예술인이다. 예술에 인생을 건 인간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다."

한국 영화가 침체기다. 조언할 게 있다면.

"영화를 시작했던 20대 때 도약하는 한국 영화를 부럽게 바라만 봤다. 한국 영화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다시 올라올 힘이 있다고 본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몰린 영화의 힘이 다시 영화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요즘 일본 영화계는 살아나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일본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여러 장르의 실사 뿐 아니라 '국보' 같은 영화도 나오고 있다. 아무도 흥행할 거라 생각지 않았던 '국보'는 애니메이션 회사의 투자 덕분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영화계 생각과 달리, 관객의 취향은 다양하다."

인상적으로 본 한국 콘텐트는.

"'유랑의 달'에서 함께 작업한 홍경표 촬영감독이 찍은 영화 '하얼빈'을 인상적으로 봤다. '승부'에서 이병헌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파친코 시즌2' 연출에 참여했는데, 김민하·이민호 등 한국 배우들은 연기론이 확실하고 기초가 탄탄하더라. 윤여정 배우는 처음엔 무서웠는데, 함께 하면서 신뢰 관계가 생겼다."

자신에게 예술의 의미는 뭔가.

"영혼을 정화시켜 주는 것이다. 나도 질투나 악의를 품을 때가 있지만, 아름다운 걸 보고 감동 받으면 더러운 감정이 깨끗이 정화된다. 그런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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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국보'는 가부키 무대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 온나가타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NEW

예술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거래할 수 있다는 기쿠오의 마음이 이해가 되나.

"모든 감독들이 훌륭한 작품을 위해서라면 영혼을 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예술을 위해 반드시 무언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기쿠오처럼 목표를 위해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일 때 무의식에서 희생되고 잃게 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국보'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 

"기쿠오처럼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 계속 추구해 결국 자신 만의 풍경을 보게 된 사람 아닐까.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삶이 얼마나 고독하겠나. 잃어버리고 짊어져야 할 것들이 엄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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