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럼프와 담판 직후 푸틴 만난 시진핑 “방북 유력”…반미연대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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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3일 중국 제80주년 전승절 열병식에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참석했다. 타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회담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르면 다음 주 북한을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과의 담판 뒤 북·중·러가 연쇄 정상회담 형식으로 한데 뭉친다면, 이는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3각 반미연대’가 공고해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적 대립 구도가 굳어질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21일 “(북·중 정상 회담)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으며 북·중 간 교류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날 소식통을 인용해 시진핑이 다음주 초 북한을 국빈 방문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그간 북·중 고위급 교류 흐름을 근거로 시진핑의 방북 성사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가 짙다. 지난해 9월 김정은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행사를 계기로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오른 뒤 시진핑의 답방은 시간 문제일 뿐 예상된 수순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또 같은달 최선희 외무상이 방중했고, 지난달엔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방북해 김정은을 면담했다. 이를 계기로 외교당국 간 의제 및 일정 조율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중국 실무진이 최근 북한을 다녀갔던 설도 파다하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집무실인 베이징의 중난하이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실 시진핑의 답방 기회는 지난해에도 있었다. 김정은의 방중 직후인 지난해 10월 북한은 대대적 행사를 열고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기념했는데, 중국은 시진핑이 움직이는 대신 리창(李强) 총리를 보냈다. 시진핑은 비슷한 시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 경주를 찾으며 남북에 차등을 두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시진핑의 방북이 실제 곧 이뤄진다면, 중국으로선 지금이 북한을 끌어안을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이번 미·중 회담을 계기로 시진핑이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지위를 확보하려 한다는 점은 더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 전쟁 등으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흔들리는 틈을 타 세 규합에 나서는 게 한층 유리할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중 정상이 합의한 ‘전략적 안정의 건설적 관계’는 결국 중국이 미국과 일정한 틀 안에서 장기적으로 경쟁하겠다는 의미”라며 “이를 위해 우선 주변 전통적 우군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고 자신들의 진영을 단단히 다지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시진핑은 트럼프가 베이징을 떠난 지 닷새만인 20일 푸틴과 만났다. 전날 공항에 도착한 푸틴을 왕이 위원이 영접한 건 한층 격을 갖춰 맞이한다는 점을 부각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를 맞이했던 한정(韓正) 국가부주석은 서열은 8위로 높지만 실질적 권한은 별로 없다는 평가를 받는 데 비해 왕 위원은 시진핑 1기 때부터 10년 넘게 외교 전권을 쥐고 있는 핵심 실세다. 지난해 9월 열차를 타고 베이징에 도착한 김정은을 맞이한 것도 왕 위원이었다,
중·러 정상회담 결과물인 공동성명을 보면 메시지는 더욱 명료해진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군사 공격한 것은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위반한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며 미국을 겨냥했다. “개별 국가가 패권주의를 신봉하면서 신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표현도 포함됐다. “핵무기 보유국 및 비핵 동맹국이 국가 간 ‘핵공유’, ‘확장억제’ 등 안정성을 해치는 협정을 조속히 폐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한·미 동맹과 나토 등을 직격하기도 했다.
한반도와 관련해선 비핵화라는 표현은 쓰지 않으며 “북한에 대한 외교적 고립과 경제 제재, 무력 압박 등 수단을 통해 안보를 위협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양측은 역내 긴장 고조, 군비경쟁 자극, 정치적 수단 남용을 중단하고, 한반도 전쟁발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촉구한다”며 ‘전쟁발발 위험’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문가들이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이 비핵화 견인보다는 북한을 영향권 내에 묶어두고 대미 패권 경쟁에서 유리하도록 우군으로 활용하는 데 방점이 찍힐 것으로 관측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건설적 역할”(청와대)을 기대하는 정부의 의도와는 다른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미·중 정상회담 뒤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와 통화해 결과를 공유했고, 19일 한·일 정상회담이 안동에서 열리는 등 한·미·일 안보 협력도 견고해지는 분위기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향후 미국과 직접 대화에 나설 경우 자칫 중국의 영향력이 축소될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고 북한을 철저히 관리하려는 계산이 깔린 방중”이라며 “중국 입장에선 북한이 통제권 안에서 관리만 된다면 한국과 미국, 일본을 견제하는 아주 유용한 레버리지가 되기 때문에 굳이 비핵화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이번 방북엔 미·중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북한 비핵화’ 논의와 관해 시진핑이 직접 설명하려는 목적도 깔려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17일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엔 ‘한반도 비핵화’보다 북한 핵 폐기를 더 강조하는 ‘북한 비핵화’를 공동의 목표로 한다”고 적혔다. 북한은 몇 년 전부터 비핵화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시진핑이 직접 평양을 찾아 김정은을 다독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북한 문제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양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미·중 정상회담 직전 한국이 양국 간 무역협상 장소를 제공하지 않았나”며 “이에 대해 미·중 양국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양국과 각각 긴밀한 소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난이 만성화한 북한 역시 중국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관계도 맞닿아 있다. 러시아라는 뒷배를 새로 얻었지만, 최근 북한 내 물가 및 환율 폭등은 러시아의 지원만으로는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북한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와 관련,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달 북·중 교역 규모는 대북 제재가 본격화한 2017년 11월 이후 최고치인 약 3억2600만 달러(약 4915억원)를 기록했다. 평소 중국은 제재 우회로인 ‘뒷문’ 열기도 북한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는데, 중국이 시진핑 방북을 앞둔 사전 조치로 빗장을 더 푼 것이란 말도 나온다.
박원곤 교수는 “시 주석이 평양을 찾는 것 자체가 김정은의 권위를 안팎에 세워주는 커다란 정치적 선물이자 관계 회복의 결정적 변곡점”이라며 “유엔 제재를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끊겼던 대규모 관광객 송출 등이 이어질 수 있고 북한 경제엔 확실한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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