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과 못내도 성과급 시대…공포의 ‘N% 청구서’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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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사가 적자 사업부에도 사실상 성과급 지급 길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잠정 합의하자 재계와 노동시장 전반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식 성과주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구조가 다른 기업으로 확산할 경우 기업 경쟁력과 투자 여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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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 조합원들이 20일 경기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고용 안정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카카오 노동조합은 임금교섭 결렬의 책임을 경영진에 묻겠다며 대규모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뉴스1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DS(반도체)부문 특별경영성과금 재원을 사업 성과의 10.5%로 정하고, 이를 부문 공통으로 40%, 부문 내 사업부별로 60%를 배분하는 내용에 잠정 합의했다. 특히  파운드리·시스템LSI 등 적자 사업부도 공통 지급률의 60%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 사업부 직원은 최대 6억원 수준, 적자 사업부 직원도 최소 1억6000만원가량을 보장받게 됐다. 회사 측은 그동안 “성과급은 사업 성과에 연동돼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해 왔지만, 총파업 위기 속에서 노사 간 절충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삼성발(發) 선례 효과’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반 초과이익분배금(PS·현 OPI) 제도를 도입하며 국내 대기업 성과급 체계를 표준화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삼성에서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구조가 제도화될 경우 다른 기업 노조들도 유사한 요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LG유플러스·카카오·HD현대중공업 등 일부 대기업 노조는 이미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라는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한 상태다.

재계에선 이번 논란의 시발점으로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체계 변화를 꼽는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호황 이후 ‘10년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는다’는 파격적인 기준에 합의했다. 이에 삼성전자 내부에선 “왜 우리는 더 못 받나”라는 불만이 커졌고, 노조는 이를 핵심 요구로 내세웠다.

“삼성은 국내 기업 보상체계 기준점…다른 노조도 비슷한 요구할 가능성”

반도체·배터리·자동차처럼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요한 산업일수록 우려가 크다. 미래 사업은 초기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부별 성과 책임보다 집단 재분배 성격이 강한 보상 구조가 확산할 경우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국내 기업 보상 체계의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다른 대기업 노조들도 비슷한 요구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데 안도하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치열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상황에서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춰서는 사태를 피한 것은 수많은 협력업체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국민경제 전반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삼성전자 노사가 전면 총파업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가지 않고 잠정 합의안을 도출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중소기업중앙회는 “수억원대 성과급 논쟁 속에서 협력 중소기업들에 정당한 보상과 대가가 충분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핵심은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문제”라며 “삼성전자 사례가 향후 국내 산업계 보상 체계 논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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