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너” 대신 “누나”…달라진 연하남의 플러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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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의 세포들3' 한 장면. 순록이 호칭을 바꿔 부르자 유미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tvN 유튜브]
“계란 껍질 여기에….”
“네, 누나”
이상할 것 없는 일상적인 대답인데, 여자 주인공의 심장이 별안간 두근거린다. 행동을 멈칫하며 상대를 쳐다보자 남자는 “누나라고 하지 말까요? 계속 ‘작가님, 작가님’하는 게 이상한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남자가 호칭을 어떻게 할지 차분하게 묻는 중에도 ‘누나’란 말을 들을 때마다 여자 주인공의 귀에선 ‘두근두근’ 소리가 크게 울린다.
최근 종영한 tvN ‘유미의 세포들’ 시즌3의 한 장면이다. 로맨스 소설 작가 유미와 그를 담당하는 기획 PD 순록이 사귀기로 한 직후다. ‘유미의 세포들’은 유미의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포라는 장치로 재치있게 표현해, 원작 웹툰부터 실사화 드라마까지 10년 가까이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장면은 곧바로 유미의 몸속 ‘세포 마을’로 이어진다. ‘누나’라는 말에 세포 마을에선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응큼 세포’가 어린 세포들 앞에 나타난다. “여러분, 새 학기는 연하남과의 연애예요”라며 칠판을 가리키는 응큼 세포는 개그우먼 안영미가 목소리를 맡아 극의 재미를 더했다.
'유미의 세포들3' 한 장면. '응큼세포'(안영미)가 세포마을에 나타나 어린 세포들에게 강의를 시작한다. [tvN 유튜브]
2004년 신인 가수 이승기를 일약 스타로 만든 곡 ‘내 여자라니까’의 “너라고 부를게”란 가사처럼, 과거에는 남성이 연상녀를 이성으로 대할 때 누나라는 호칭을 지양했다. 하지만 ‘젠지(GenZ·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 세대부터는 누나라는 호칭이 경우에 따라 플러팅으로 여겨질 만큼 세태가 변했다. 누나도 ‘오빠’처럼 두 가지 기능(일상적 호칭, 이성적 관계에서 쓰는 호칭)을 갖게 된 것. 이런 분위기는 2018년 방영된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시작으로 감지되기 시작했다.
과거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의 설정이었던 ‘실장님’이란 호칭이 여자 주인공 몫으로 넘어오기도 했다. tvN ‘은밀한 감사’도 여자 주인공 주인아(신혜선)가 감사팀 실장 역할로 등장한다.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직급이 한참 낮은 감사팀 대리 노기준(공명)이다. 노기준은 주인아에게 깍듯하지만은 않지만 호칭은 영락없이 ‘실장님’으로 부른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상승 추세다. 지난달 25일 첫 방송 시청률은 4.4%로 출발해, 지난 17일 8회에선 7.9%(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tvN 드라마 '은밀한 감사' 속 한 장면. 주인아(신혜선)가 넘어질 뻔한 노기준(공명)을 보호한다. [tvN]
드라마는 실제 사회 트렌드를 반영한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식을 올린 초혼 부부 19만8603쌍 중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비중은 20.2%를 기록했다. 20%를 넘긴 건 처음이다. 반면, 연상남 연하녀 부부 비율은 63%로 역대 최저였다. 이와 함께 과거 ‘여성은 외모, 남성은 능력’으로 요약되던 매력 기준도 뒤섞였다. 여성이 남성의 외모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거나, 남성이 여성의 능력을 매력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전보다 강해졌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방송된 KBS ‘누난 내게 여자야’는 남녀 출연자 5쌍 중 3쌍의 커플이 탄생하며 화제를 모았다. 오는 23일 시작되는 시즌2를 앞두고는 ‘100억 버는 여성’‘육체미를 자랑하는 남성’ 등 출연진의 특징을 소개하는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엔 ‘연상연하’ 커플이란 표현을 썼지만, 이젠 그런 말도 쓰지 않을 만큼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보편화됐다”며 “고정된 성 역할이 무너졌기 때문인데, ‘누나’라는 호칭의 기능 변화도 이와 같은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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