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훗날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에게 안겨준 갈등[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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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박설영 옮김
김영사

저자가 모두에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비평서이자 자서전이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은 “베트남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저자가 “타자(他者)의 자리에서 글쓰기”를 하는데 원인을 제공하고 영양을 공급한 두 가지라는 점에서 정당하다.

고상한 철학 용어인 타자를 소수자나 아웃사이더, 비주류로 바꿔도 무방할진대, 저자는 10대 때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이 그런 위치에 속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주인공 윌러드 대위가 우연히 마주친 배에 타고 있던 베트남 여인을 쏘는 장면이었다. “나는 살인을 저지른 미국인일까, 살해당한 베트남인일까.” 이야기로 외로움에서 ‘구원’받았던 난민 아이가 이야기에는 자신을 ‘파괴’할 만한 강력한 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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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로 퓰리처상 받은 비엣 타인 응우옌 내한 (서울=연합뉴스)=소설 '동조자'와 '헌신자'를 쓴 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가 2023년 6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6.15 xxxxxxxxxxxxxxx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과 타자성의 공존 속에서 저자는 양측이 갖는 일반적 기대를 거부한다. 이를테면 ‘포’를 묘사할 때 베트남식 쌀국수라는 설명을 달지 않는다. 피츠제럴드가 샌드위치를 쓰면서 두 조각 빵 사이에 고기나 야채를 끼운 것이라 설명하겠냐는 말이다. 첫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뒤 “목소리가 없는 자들을 위한 대변자”라는 찬사를 듣고도 시큰둥하게 답한다. “베트남 사람들과 놀아봤어? 우리는 정말 시끄러운 민족이야.”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말한 것처럼 목소리가 없는 게 아니라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찾아야 하며 그 전에 목소리가 없는 상태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연대를 추구한다. 그것은 울타리 안의 연대, 즉 인종과 국가에 갇힌 제한적 연대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확장 연대다. 오늘날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그나마)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은 그들이 성실한 이유도 있지만, 원주민이나 흑인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그들과의 확장 연대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분수를 아는 ‘모범 소수자’라고 자복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저자는 외친다. “타자의 삶을 지키려 하지 않고 우리의 삶만 방어한다면 그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인류의 집단적 해방을 위해서는 “바퀴 벌레, 괴물 취급을 받는 이들”까지 포용하는 포괄적인 정치적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비전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꿈꿀 수 있는 게 작가의 특권이자 의무 아닐까.

내가 더 꽂힌 건 이 책의 비평이 아니라 전기적 측면이다. 하버드대의 유명한 ‘노턴 강의’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이지만 소설가인 저자는 여기서도 극적 반전을 보여준다. 부모가 베트남에서 탈출할 때 집에 남겨둔 누이에 관한 진실인데, 함께 남겨둔 약간의 금붙이를 빼앗아가는 이모들의 입을 빌려 털어놓는다.

혼란과 혼돈 속에 홀로 남아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등 고생한 누이는 50년이 지난 뒤 미국에 초청받는다. 책의 헌사를 누이에게 바친 것이 설명되는 부분이다. 말하고 싶지만 스포일러라고 욕 먹을까봐 자제한다.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고 한 마디만 하자면 누이 역시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 타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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