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선택의 문제’와 ‘잘못된 선택’...미국은 왜 베트남전 일찍 끝내지 못했나[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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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제프리 와우로 지음
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는 종전 50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당대 세계 최강국이던 미국이 어째서 동남아시아의 신생 약소국인 북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했을까? 신간 『베트남 전쟁』도 이 문제에 도전하고 나섰는데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1967년 4월, 정크션시티 작전 도중 제296경보병여단의 병사들이 베트콩 점령 지역으로 가기 위해 헬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국립문서고. [사진 책과함께]
군사역사(Military History) 전문가인 저자 제프리 와우로(Geoffrey Wawro) 노스텍사스대학 석좌연구교수는 미국이 전쟁을 ‘왜 더 일찍 끝내지 못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기밀 해제된 백악관 녹취록과 군사·외교·정보 문서를 바탕으로, 이미 1968년에 끝낼 수 있었던 전쟁을 7년이나 더 끌게 된 배경을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추적한다. 케네디 대통령 후반기부터 시작해 존슨 대통령과 닉슨 대통령 시기에 이미 승산이 없음을 알았음에도 전쟁이 계속 확대된 이유를 집중 재조명했다.
책은 “베트남 전쟁은 선택의 문제였다”는 말로 시작한다. 미국의 생존이 걸린 전쟁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민주적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했던 전쟁도 아니라고 했다. 냉전기 외교 도그마였던 ‘도미노 이론’이나 공산군이 하와이 해변까지 쳐들어올 것이라던 정치적 수사는 대중 선동의 공포 마케팅에 불과했다고 비판한다.
후에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이곳에서 방송한 'CBS 이브닝 뉴스'의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크롱카이트는 MACV와 미국 대통령이 ″먹구름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찾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 발언은 존슨에게 치명타였다. ″크롱카이트를 잃으면 나는 이 나라를 잃는 걸세″라고 존슨은 앓는 소리를 했다. 미국국립문서고. [사진 책과함께]
여기서 “선택의 문제”라는 표현에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명분이 있었음에도 참전을 했고, 기왕 참전했으면 가능한 한 빨리 끝냄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장기전의 늪으로 빠지는 ‘잘못된 선택’을 계속했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아예 개입을 하지 않거나, 개입했다면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미국은 ‘참전은 하되 전면전은 피한다’는 어정쩡한 절충안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지옥 같은 소모전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그렇게 전쟁을 끄는 사이에 사상자는 두 배나 더 늘었다고 한다.
사이공의 거리에서 싸워야 했던 미군의 1968년 5월 사상자는 전시를 통틀어 한 달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제9보병사단의 병사들이 폐허가 된 사이공 동네를 조심스레 통과하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고. [사진 책과함께]
미국 정치권과 군부에 대한 이 책의 신랄한 폭로는 자못 충격적이다. 책에 묘사된 케네디, 존슨, 닉슨으로 이어지는 세 대통령이 참전한 동기를 보면 세계 전략이나 국가 안보와는 거리가 느껴진다. 저자는 “약해 보일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이 전쟁의 본질이었다고 주장한다. 국제 사회와 국내 정치에서 ‘공산주의에 유약하다’는 낙인이 찍힐 것을 두려워했다는 얘기다. 초강대국의 위신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다음번 선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볼 때 정치 지도자의 권력욕이 초래한 전쟁 속에 더 기름을 부은 것은 베트남 현지 미군 사령부의 ‘화력 만능주의’였다. 미군은 현지인의 신뢰를 얻는 활동은 경시한 채, 헬기와 네이팜탄을 동원한 ‘수색과 섬멸’ 작전에 집착했다. 결과적으로 베트콩을 제압하기는커녕 남베트남의 민심까지 적으로 돌리는 치명적 패착을 둔 군부는, 전황이 악화되자 데이터와 통계까지 조작해 승리의 환상을 지어냈다고 한다. 군부의 거짓 보고가 다시 백악관을 흔들며 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확대되었다는 이야기다.
구슬 목걸이, 평화 상징물, 긴 머리카락, 조용한 항명. 전세가 기울고 닉슨이 징병 추첨제를 통해 더 많은 회의론자와 대학생을 군대에 밀어넣은 1970년 이후 미군 병력은 변했다. 사진은 1971년 1월 추라이 인근에서 제11경보여단의 한 분대장이 병사들에게 소리쳐 지시하는 장면이다. 미국 국립문서고. [사진 책과함께]
이 책의 주장은 국제정치의 현실을 더 중시하는 이들로부터 글로벌 안보 시스템의 붕괴가 우려됐던 당시 냉전 체제의 지정학적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전쟁의 본질을 지도자의 ‘심리적 두려움’이나 ‘자존심 싸움’으로 희화화했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기밀자료를 근거로 저자가 제시하는 전쟁의 이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충분히 벌어졌을 법해 보이는 권력의 오만과 군부의 무능에서 비롯되는 ‘잘못된 선택’이 계속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개입해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전쟁과 안보 위기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과 리더십의 혜안을 고민하는 이들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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