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하루 12시간 작업에 1.8㎝…전통 다회 만드는 임금희 장인 [스튜디오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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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486]은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들이 발로 뛰어 만든 포토스토리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중앙일보는 상암산로 48-6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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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희 다회,망수 장인이 20일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광다회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타닥타닥 달그락….”
서울 광진구 작업실. 상하교차조 광다회틀 위에서 명주실을 직조하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진다.
임금희(65) 다회·망수 장인이 수십 가닥의 실 사이로 시선을 깊게 밀어 넣은 채 손끝을 분주하게 움직인다. 작은 추들이 좌우로 교차할 때마다 가느다란 실은 조금씩 단단한 다회의 형태를 갖춰간다.
하루 12시간을 앉아 작업해도 완성되는 길이는 고작 1.8cm. 손가락 한 마디 길이다.
그는 “집중이 흐트러져 순서가 한 번이라도 틀리면 쓰지 못하고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안경을 고쳐 썼다.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깊이 빠져 쉽게 일어나지 못할 만큼 몰두하게 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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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다회 틀에서 작업하고 있는 임금희 장인.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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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방향으로 늘어진 각 네 개의 작은 타래를 순서대로 교차하면 둥근 모양의 동다회가 만들어진다. 전민규 기자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1980년대 초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우연히 전통 매듭을 접했다.
낯선 도시의 외로움을 달래려고 취미로 시작했는데 가느다란 한 줄의 실이 전혀 다른 구조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후 스승 조일순 선생 문하에 들어가 매듭과 다회, 망수 기법을 배우며 전통 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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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희 장인이 다회와 망수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들. 전민규 기자

다회는 여러 가닥의 명주실을 직조해 만드는 전통 끈이다. 단면이 둥근 동다회와 납작한 광다회로 나뉜다. 조선 시대에는 왕실과 양반가 복식의 핵심 요소였다.
특히 광다회는 왕과 백관의 품위를 상징했다. 3품 이상은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계열, 그 아래는 땅의 기운을 나타내는 푸른 계열을 쓰는 등 엄격한 신분 질서도 담겼다.
그는 “다회와 망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우리의 혼이고 맥”이라며 “실이 끊어지면 못쓰게 되듯 혼과 맥도 끊어지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작업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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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색깔로 만든 조대(허리띠). 두루마기의 옷 매무새를 다듬는 용도로 쓰였다. 사진 임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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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희 장인의 작업실. 벽면 가득 명주실 타래들이 가득 놓여있다. 전민규 기자

작업실 한쪽에는 총천연색 명주 실타래들이 놓여 있다. 원재료 자체가 귀해 원하는 색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는 직접 전통 염색까지 공부했다. 복원 작업을 위해 논문까지 썼다. 지금은 대부분의 명주실을 해외에서 들여오지만, 그는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원형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쉽게 바꾸면 결국 전통도 달라지니까요.”
임 장인은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유물을 바탕으로 면류관의 다회와 후수, 망수, 노리개 등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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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의 부속품으로 사용된 다회. 사진 임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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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희 장인이 재현한 면류관.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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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희 장인이 고증해 만든 면류관. 오채다회(오색 끈)로 오색 구슬을 꿴 모습. 전민규 기자

“최근 방영한 드라마에 나온 면류관은 오채다회(오색 끈) 대신 구슬이 촘촘하게 걸려 있더라고요. 안타깝죠”
그의 말에는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오랜 연구자의 기준이 담겨 있다.
“요즘은 너무 쉽게만 가려고 해요"
"어렵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 과정을 지켜야 전통의 의미도 지켜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은 부분이라도 우리 조상들이 지내온 ‘진짜’의 모습을 이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임 장인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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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을 감은 추는 200개 까지 설치해 다회를 만들기도 한다.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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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희 다회,망수 장인이 다회를 만들기 위해 명주실을 살펴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다회틀 앞에 다시 앉은 그의 손끝이 바쁘게 움직인다. 작업실에는 다시 타닥타닥 작은 직조 소리가 이어지고, 실들이 교차하며 단단한 조직이 만들어진다.
임 장인은 “다회를 만들며 평생을 즐겁게 살아온 것 같다”며 “가끔은 전생에도 이 일을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전통의 맥은 그렇게 오늘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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