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푸틴, 참극 끝내라” 박찬욱이 이끈 칸 폐막 정치적 메시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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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거장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이 23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9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신작 '피오르드'로 생애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사진은 행사 직후 외신 앞에서 상패를 들어보인 모습이다. AFP=연합
“사회가 분열되고 극단주의화되고 있는 지금, 이 영화는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에 맞서는 우리의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23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오르드’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루마니아 거장 크리스티안 문주의 수상 소감이다. 시상자인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에게 상패를 건네받은 그는 “변화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관용과 공감의 정신을 강조했다.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 심사위원장을 맡은 올해 칸 경쟁 부문은 이를 비롯해 화합과 포용을 호소한 정치적 메시지와 유럽 강세가 도드라진 수상 결과로 마무리됐다. 유난히 시대극이 많았던 올해 동시대를 그린 작품들이 1, 2등상을 차지했다.
23일 제79회 칸영화제 폐막 #루마니아 문주 2번째 황금종려상
"근본주의 경계" 루마니아 거장, 2번째 황금종려상
올해 제79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피오르드' 한 장면. 마블 수퍼 히어로 윈터솔저 역할로 유명한 세바스찬 스탠(맨 뒷줄 오른쪽부터)이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센티멘탈 밸류'의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와 함께 곤경에 처한 루마니아 부부 역할로 180도 변신했다. 사진 칸영화제
‘피오르드’는 노르웨이로 이사한 루마니아의 복음주의 기독교인 부부(세바스찬 스탠·레나테 레인스베)가 아동 학대 의혹 탓에 다섯 자녀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과정을 악몽처럼 그려냈다. 노르웨이의 진보적인 복지 정책이 오히려 타 문화권 이민자에게 권위주의적 잣대로 작동하는 방식을 예리하게 묘사했다.
올해 한국인 최초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왼쪽 두번째)이 23일(현지 시간) 제79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 무대에서 다른 심사위원단 멤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순서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발표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올해 함께 경쟁 부문 심사에 참여한 할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다. 로이터=연합
임신중지 금지법을 비판한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로 첫 황금종려상을 안았던 문주 감독은 이로써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10번째 감독이 됐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이마무라 쇼헤이, 다르덴 형제, 미하엘 하네케, 켄 로치, 루벤 외스틀룬드 등에 이어서다.
반정부 러시아 감독, 푸틴에 "참극 끝내라"
프랑스 망명 중인 안드레이 브비아긴체프 감독은 23일(현지 시간) 제7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그는 팬데믹 시기 코로나19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반정부 성향으로 인해 국외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EPA=연합
준우승상인 심사위원대상은 반정부 성향의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에게 돌아갔다. ‘리바이어던’으로 2014년 칸 각본상, ‘러브리스’로 2017년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그는 9년 만의 복귀작 ‘미노타우로스’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현대 러시아의 암울한 부패상을 통해 노골적인 반전 메시지를 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해온 그는 이날 수상 무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이 참극을 끝내시라. 전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90년대생 감독 영화, 기립박수 20분
(왼쪽부터)올해 제79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라 볼라 네그라'의 공동 감독 하비에르 암브로시와 하비에르 칼보. 23일(현지 시간) 폐막식에서 수상 직후 감정이 북받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
감독상은 1984·1991년생 콤비 감독과 1957년생 노장이 공동 수상했다. 먼저, 스페인 시대극 ‘라 볼라 네그라’의 하비에르 암브로시·하비에르 칼보 감독이다. 1932년, 1937년, 2017년의 세 시대를 넘나들며 전쟁과 역사의 비극에 얽힌 동성애자들의 자취를 155분에 걸쳐 담아낸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가장 긴 20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파더랜드’로 감독상을 받은 폴란드의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1940년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설가 토마스 만(한스 지쉴러)과 딸 에리카(산드라 휠러)의 여정을 통해 전후 유럽의 혼란상을 82분 분량의 흑백 영상에 담았다.
박찬욱 "나도 못 받은 황금종려상, 안 주고 싶더라"
제79회 칸영화제 남자 배우상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카워드' 주연 배우 발렌틴 캄퍄뉴(왼쪽부터)와 에마뉘엘 마키아(왼쪽부터)와 가 공동 수상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남자 배우상은 차세대 거장으로 꼽히는 벨기에 감독 루카스 돈트 감독의 ‘카워드’에서 1차 세계대전 중 사랑에 빠지는 두 병사 역의 배우 발렌틴 캄퍄뉴와 에마뉘엘 마키아가 나란히 받았다. 여자 배우상은 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처음 프랑스에서 찍은 영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의 프랑스 배우 비르지니 에피라와 일본 배우 오카모토 다오가 함께 받았다. 환자의 존엄성을 고민해온 요양원 원장이 암 투병 중인 일본 연극 연출가와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상자 속의 양’과 후카다 코지의 ‘나기 노트’까지, 올해 25년 만에 경쟁부문 초청작 3편을 배출한 일본영화는 유럽 영화들이 주요상을 싹쓸이한 가운데 연기상을 챙기며 자존심을 지켰다.
심사위원상은 독일 감독 그리제바흐의 ‘더 드림드 어드벤처’가 가져갔다. 한 고고학자가 불가리아 국경 마을에서 범죄의 실체를 파고드는 내용이다. 각본상은 1940년 나치에 부역한 괴뢰정권에 이용당한 공무원을 그린 벨기에 감독 에마뉘엘 마레의 ‘노트르 살뤼’가 받았다.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미국의 제임스 그레이 등은 명성에 비해 수상운은 못 미쳤다.
여자 배우상을 공동 수상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의 일본 배우 오카모토 다오(왼쪽부터)와 비르지니 에피라. 로이터=연합
박 감독은 폐막식 직후 기자회견에서 휴대전화까지 반납했던 최종 심사 과정을 돌아보며 “마지막 결정이 그렇게 늦게까지 계속되진 않았다”면서 심사에 큰 이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실 누구에게도 시상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상이기 때문에”라며 “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좋은 영화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농담을 덧붙였다.
공로상 스트라이샌드 "영화는 마음 여는 마법"
올해 시상식에선 유독 공동 수상이 많았다. 감독상에 대해 박 감독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두 편이 다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배우상의 경우 클로이 자오 감독이 부연했다. “요즘처럼 외로움이 커지고 인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시대에 (중략) 우리가 사랑에 빠진 것은 배우들만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관계, 사랑, 그리고 따스함이었기에 두 사람 모두에게 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올해 경쟁 부문 심사에는 두 감독을 비롯해 할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 스웨덴 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 켄 로치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각본가 폴 래버티 등이 심사위원단에 참여했다.
가수 겸 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피터 잭슨 감독과 공동 수상한 명예황금종려상(공로상) 무대엔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올라 대리 수상했다. 로이터=연합
올해는 공로상 격인 명예황금종려상도 공동 수상이었다. 개막식 때 먼저 수상한 피터 잭슨 감독과 함께, 가수 겸 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선정됐다. 이날 불참한 스트라이샌드는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대리 수상한 폐막식 무대에서 헌정 영상을 통해 “영화는 우리를 하나로 묶고, 마음을 열게 하는 마법같은 힘이 있다”고 전했다.
진미송 단편, 라 시네프·퀴어종려상 2관왕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학생 영화 부문인 라 시네프 섹션에 ‘사일런트 보이시스’로 2등상을 수상한 나딘 미송 진 감독이 앞서 21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 팔레 데 페스티(Palais des Festivals)에서 인터뷰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올해 한국인 수상은 학생 단편 경쟁 ‘라 시네프’ 부문 2등상을 차지한 ‘사일런트 보이시스’의 진미송 감독이 유일했다. 지난해 이 부문에선 허가영 감독의 ‘첫여름’이 한국작품 최초 1등상을 받았다. ‘사일런트 보이시스’는 뉴욕에 이민간 한국인 가족 각자의 하루를 17분여에 담은 작품으로, 진 감독이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중 제작해 작품 국적은 미국으로 표기됐다. 앞서 21일 라 시네프 수상 발표 후 최휘영 문화체육부장관은 진 감독에게 축전을 보내 “감독님의 수상은 다음 세대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주었다”고 의미를 짚었다. ‘사일런트 보이시스’는 올해 성소수자 주제 등을 빼어나게 다룬 영화에 주는 번외상 퀴어종려상까지 2관왕에 올랐다.
박찬욱 "'호프', 장르 영화 경쟁 초청 자체로 의미 커"
올해 한국인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은 지난 17일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등급의 문화예술공로훈장 ' 코망되르'를 받기도 했다. 사진은 23일(현지 시간) 폐막식에 참석한 박 감독의 모습이다. AP=연합
올해 경쟁 부문 초청 자체가 파란을 일으켰던 나홍진 감독의 SF 액션 스릴러 ‘호프’는 영화제 중반부 공개되며 다크호스로 떠올랐지만 수상은 끝내 불발됐다. 그러나 칸영화제 경쟁 부문의 작가주의 전통에 도전한 파격으로 기록될 만하다는 평가다. 공식 석상에선 한국 작품에 대한 코멘트를 아낀 박찬욱 감독도 폐막 후 중앙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이런 장르 영화로 경쟁에 잘 초청이 안 되는데, 초대된 것 자체로 굉장히 이례적이고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영화로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후 4년만에 경쟁 부문에 진출한 ‘호프’는 그간 이창동·홍상수·박찬욱·봉준호 등 일부 거장 감독의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이 반복돼온 상황을 세대 교체했다는 의미도 있다. 데뷔작 ‘추격자’(2008, 미드나잇 스크리닝, 이하 초청 부문)부터 ‘황해’(2010, 주목할 만한 시선), ‘곡성’(2016, 비경쟁) 등 장편 연출작이 모두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나홍진 감독은 이번 영화로 세계 거장들의 경연에서 확실히 얼굴도장을 찍었다.
제79회 칸국제영화제 주요 부문 수상
▶황금종려상=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피오르드’
▶심사위원 대상=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미노타우로스’
▶감독상=‘라 볼라 네그라’의 하비에르 칼보 감독과 하비에르 암브로시 감독, ‘파더랜드’의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
▶남자배우상=‘카워드’의 발렌틴 캄퍄뉴와 에마뉘엘 마키아
▶여자배우상=‘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의 비르지니 에피라와 오카모토 다오
▶각본상=에마뉘엘 마레 감독의 ‘노트르 살뤼’
▶심사위원상=발레스카 그리제바흐 감독의 ‘더 드림드 어드벤처’
▶황금카메라상=‘베니마나’의 마리 클레망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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