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해외시장 사실상 완판 나홍진 ‘호프’, 한국영화 희망 봤다
-
4회 연결
본문
영화 '호프'의 나홍진 감독과 배우들이 18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포토콜, 기자회견 등 공식 일정을 가졌다. 사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나홍진 감독 영화 ‘호프’의 수상은 불발됐지만, 79회 칸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계에 희망을 남겼다.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중엔 처음으로 심사위원장에 위촉됐고, 나 감독은 대중적 장르인 액션과 스릴러가 결합된 SF로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연상호 감독(‘군체’), 감독 주간에 초청된 정주리 감독(‘도라’), 학생 부문에 초청된 진미송 감독(‘사일런트 보이시스’)과 최원정 감독(‘새의 랩소디’)도 있다. 진 감독은 학생 부문 2등상을 받았고, 최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처음으로 칸 학생 부문에 초청됐다. 박 감독은 개막식 직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더 이상 영화의 변방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침체를 겪던 극장가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으로 되찾은 활기가 칸영화제와 함께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1억명을 간신히 넘기며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2억2667만명이 찾았던 2019년의 반토막도 되지 않았다. 올해 누적 관객 수는 4442만명(22일 기준)이다. 지난해 5월까지 누적 관객수(3478만명)보다는 28%가량 많지만, 여전히 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이런 가운데 칸영화제에 초청된 ‘군체’가 개봉 나흘 만인 24일 오전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685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보다 빠른 속도다. 올 여름 개봉하는 ‘호프’가 바통을 이어 받으면 극장가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칸영화제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관객들이 극장으로 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프’, 칸에서 최고 해외 판매 실적
한국 영화의 글로벌 흥행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호프’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영미권 주요 매체들에게 ‘재미’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미국 인디와이어는 “경쟁 부문 최초로 흥행도 가능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역시 미국 매체인 버라이어티도 “최근 몇 년 사이 나온 영화 중 가장 숨 막히도록 우아한 액션 연출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평했다. 영어권 인구 13억명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문화 소비 시장으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북미 수출을 통해 영화 산업을 살리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호프’는 영화제 기간 주요국에 판권을 ‘완판’하며 현재 한국 영화로는 역대 최고 해외 판매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군체’는 칸 공개 이전에 120여개국 선판매 소식을 전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래틀크릭의 강도들’은 워너브러더스 계열사가 북미 판권을 가져갔다.
차준홍 기자
나홍진 감독이 전형적인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또는 한국 특유의 사회 문제를 파고드는 영화 등 기존 흥행 공식을 따라가지 않는 감독이란 점도 의미가 크다. 김헌식 영화평론가는 “한국 영화가 작가주의 영화를 선호하는 칸 경쟁 부문에서 SF 장르로 겨뤘다는 건 그만큼 장르 영화에서 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간 나 감독은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를 추구하면서도 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작품을 추구해왔다. 그가 앞서 내놓은 세 편의 장편 영화 ‘추격자’(2008), ‘황해’(2010), ‘곡성’(2016)은 각각 504만, 226만, 687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세대 교체 성공한 일본, 70년대생 3인 경쟁부문에
23일(현지시간) 열린 79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 출연 배우 오카모토 타오, 버지니 에피라가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칸영화제 포토콜에서 배우 오카모토 타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버지니 에피라(왼쪽부터). [로이터=연합뉴스]
희망과 함께 과제도 남았다. ‘호프’는 과작(寡作) 감독인 나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공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호프’ 이전 한국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4년 간 경쟁 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모든 부문에서 초청받지 못하는 전멸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년 가까이 박찬욱·봉준호·홍상수 등을 잇는 다음 세대 거장이 나오지 못한 탓이다. 세대 교체에 성공한 일본 영화계가 지난해엔 70~90년대생 감독만 5명, 올해는 70~80년대생 감독 3명을 칸에 보낸 것과 비교된다.
한국에서 ‘넥스트 나홍진’이 나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다양성 부족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했다. 한국 영화는 범죄·스릴러·액션·사극 등 특정 장르를 선호한다. 기존의 흥행 요소를 답습하려는 상업주의 영향이다. 영화 감독이 되는 길이 좁고 사실상 ‘엘리트 코스’가 존재한다는 점도 다양성 측면에서 불리한 요소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계 관계자는 “국내에선 한국예술종합학교 또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나온 신예 감독이 수십억의 투자를 받아야 개봉에 성공할 수 있다”며 “같은 교육 과정을 거친 감독과 배우들이 점점 ‘이너 서클’이 되면 다양성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선 영화 감독을 배출하는 대학 등 교육 기관도 다양하지만 독학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도 1억~2억원대의 초저예산 영화로 데뷔할 수 있다. 김헌식 평론가는 “‘아이언맨’도 1편은 가볍게 만든 B급 영화로 출발했다”며 “처음부터 큰 투자금을 쏟아 붓지 않고도 흥행하는 다양한 영화가 나오려면 B급 영화가 나오고 개봉할 수 있는 루트가 많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