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삼전·하이닉스 등 5대 기업 수출 비중 44%…반도체 나홀로 질주에 임금도 ‘K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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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화려한 성적표를 뜯어보면 뻔한 정답이 나온다. 반도체 초호황이다. 반도체가 수출과 생산 증가를 이끌고 있지만, 반도체를 뺀 경기 지표는 여전히 차갑다. 일자리 시장에서도 반도체와 비(非)반도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양극화가 심하다. 반도체에 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며, 산업·고용·소득 전반에 ‘K자’형 양극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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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조성중인 반도체클러스터 단지. 우상조 기자

24일 국가데이터처 통계를 보면 올해 1~3월(1분기) 한국 전체 수출액 2199억 달러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상위 5대 수출기업의 수출액은 957억 달러로 전체의 43.5%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8%포인트 상승하며, 201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개수로는 전체 수출기업 6만7531개 가운데 0.007%에 불과한 5개 기업이 한국 수출의 절반 가까이 채웠다.

수출 호황의 과실도 이들 소수 기업에 집중됐다. 상위 5대 기업의 전년 대비 수출 증가액은 499억6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 증가액(603억3000만 달러)의 82.8%를 차지했다. 상위 10대 수출기업 내에서도 쏠림 현상은 심했다. 상위 10대 기업 수출액 가운데 상위 5대 기업 비중은 86.8%로 1년 전보다 8.4%포인트 상승했다.

수출 양극화가 심화한 것은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 영향이 크다. 관세청 집계 결과 올 1~4월 반도체 수출액은 1109억55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6% 치솟았다. 반면 반도체를 제외한 품목의 수출 증가율은 13.3%에 그쳤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36.2%로 전년보다 15.6%포인트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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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 등 나머지 제조업은 부진하다. 지난 4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73.5% 증가했지만 15대 주력 수출품목 가운데 7개 품목의 수출은 감소했다. 자동차(-5.5%), 자동차부품(-6.0%), 일반기계(-2.6%), 가전(-20.0%), 철강(-11.6%), 이차전지(-6.5%) 등이 대표적이다. 고환율(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 전 세계적인 수요 둔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생산 현장에서도 반도체와 비반도체 간의 격차는 뚜렷하다. 국가데이터처 산업활동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제조업 생산은 전 분기 대비 3.0% 증가했다. 반도체 생산이 14.1% 늘며 2023년 2분기(19.0%)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결과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0.2%에 그쳤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고용 유발 등 낙수효과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생산액 10억원이 증가할 때 발생하는 취업자 수는 반도체 산업이 2.1명으로 전체 제조업 평균(6.2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 산업은 자본집약적 업종으로 매출 증가에 비해 고용 창출 효과가 낮아 반도체가 견인하는 거시경제 지표와 가계가 체감하는 경기 사이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산업 내부에서도 K자형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 지난해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의 상용직 근로자 월평균 임금총액은 745만9815원으로 집계됐다. 임시·일용직 근로자(268만8670원)의 2.77배에 달했다.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이 차이는 2023년 이후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차이 뚜렷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 상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942만원으로, 300인 미만 사업장(450만원)의 두 배를 웃돌았다. 24년 1.9배였던 격차는 더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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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반도체에 국한하지 않고 전체 산업으로 봐도 노동시장 임금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산업 정규직 근로자의 월 임금총액은 평균 457만원으로 비정규직(192만원)보다 265만원 많았다. 시간당 임금총액 역시 정규직은 2만8599원, 비정규직은 1만8635원으로 9964원 차이를 기록했다. 격차는 2020년 5716원에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대규모 성과급이 지급될 경우 임금 차이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동안 노동자가 많이 종사하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생산성과 부가가치 증가가 제한돼 임금 상승 여력도 크지 않다”며 “반도체 호황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반도체 밖 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이 정체된 구조가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AI 투자 둔화 등 외부 충격에 대한 경제 전반의 취약성도 커질 수 있다. 핀란드는 한때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국가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를 이끌었지만, 스마트폰 전환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으며 수출과 고용이 동시에 위축된 경험이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산업은 통상 2~3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만큼 호황기에 발생한 초과 세수를 기금 형태로 적립해 불황기에도 연구개발(R&D) 투자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반도체 이후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바이오와 양자기술 등 아직 수익이 나지 않는 미래 산업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산업 구조의 편중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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