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日선수 트로피 들자, 카메라 쌩~ 유럽축구 ‘아시안 패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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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챔피언십 헐시티가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 지은 직후 시상식에서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4일 영국 런던의 축구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로축구 2부 리그 플레이오프 결승전. 후반 막판 일본인 공격수 히라카와 유가 올린 날카로운 패스가 결승골로 연결됐다. 이 한 골로 헐시티는 미들즈브러를 1-0으로 꺾고 10년 만에 꿈의 무대인 1부 리그(EPL) 복귀를 확정 지었다.
이 경기는 승리하는 순간 다음 시즌 중계권료와 보조금 등 최소 2억 파운드(약 4066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보상이 따르기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스포츠 경기’로 불린다. 수입만 따지면 월드컵 우승의 5배가 넘는 대형 무대다.
하지만 감격스러운 시상식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됐다. 승리의 일등 공신인 히라카와가 동료에게 트로피를 넘겨받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려는 바로 그 순간, TV 중계 화면이 갑자기 엉뚱한 관중석을 비춘 것이다.

헐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 지은 직후 열린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려는 순간, TV 생중계 화면은 급히 다른 장면으로 전환했다. 사진 중계화면 캡처

헐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 지은 직후 열린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려는 순간, TV 생중계 화면은 급히 다른 장면으로 전환했다. 사진 중계화면 캡처
우연의 일치라기엔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했다. 이런 모습은 유럽 축구계에서 드물지 않게 목격된다. 아시아 선수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 재빨리 화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트로피가 서구권 선수에게 넘어가면 다시 카메라를 돌려놓는 이른바 ‘아시안 패싱(아시아 선수 외면하기)’이다. 소셜 미디어에는 팬들의 비판이 쏟아졌고 일본 언론도 “명백한 차별”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아시아 선수 소외 논란은 박지성, 기성용, 손흥민, 김민재 등 한국의 간판스타들도 차례로 겪었다. 지난해 여름 파리생제르맹(PSG)을 유럽 정상에 올려놓은 이강인이 우승 트로피를 들 때도 카메라는 선수의 얼굴 대신 트로피만을 확대해 보여줬다. 손흥민은 2025년 유로파리그에서 토트넘이 우승할 때는 캡틴이어서인지 살아남았지만, 201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준우승팀 시상식 등의 화면에서 지워졌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상징적 소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특정 인종이나 집단을 화면에서 지속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대중의 인식 속에서 그들의 가치와 존재감을 가리는 은밀한 시도라는 뜻이다.
아시아 출신 축구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반감이 '아시안 패싱'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헐시티 일본인 미드필더 히라카와 유(오른쪽). AFP=연합뉴스
이 현상의 이면에는 유럽 축구계의 불평등한 인종적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흑인 선수를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 등에 대해서는 강력한 사회적 지탄과 법적 징계를 내린다. 흑인 선수들의 두터운 연대와 적극적인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 선수를 향한 차별적 시선에는 상대적으로 무감각하다. 제재를 가하기 모호하다는 점을 악용해 아시아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한다.
그 바탕에는 ‘축구는 서구권의 전유물’이라는 오만함이 깊이 깔려 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유럽 구단들이 아시아 시장의 막대한 자본과 유니폼, 중계권 수입 확보에는 적극적이면서도, 정작 아시아 선수가 무대의 주역으로 인정받는 것에는 인색하다는 방증이다. 아시아 선수를 주체적인 주인공이 아닌, 서구권 스타들을 빛내줄 ‘조력자’나 마케팅용 이방인으로 묶어두려는 비뚤어진 무의식이 카메라 앵글을 통해 투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남희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는 “흑인 선수 차별에는 엄격하면서도 아시아 선수에 대한 차별적 조치에는 침묵하는 유럽 축구계의 이중적인 세태는 개선되어야 한다. 상업적 이익은 취하면서 선수의 명예는 지워버리는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이제는 아시아 축구계 전체가 보다 공식적이고 단호한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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