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IAEA 수장도 "北 '핵 보유'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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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국제사회가 '북한이 핵을 보유(possess)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recognize)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북핵 용인론이 커지는 가운데 국제 비확산 체제를 떠받치는 IAEA 수장까지 북한의 핵 보유 사실 자체는 받아들이자는 뉘앙스로 말한 것이라 파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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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IAEA 수장 "北은 사실상 핵보유국"

이날 AP에 따르면 그로시 총장은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a de facto nuclear weapon possessor state)이라고 부르며 "2006년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이후 국제사회의 관여는 없었고 그 이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크게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로시 총장은 이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유엔 안보리 제재와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점에선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멈추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그로시 총장은 북한과 대화를 위해서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매우 신중하고 외교적인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며 북한에 관여하기 위해 가능한 주제 중 하나로 '핵 안전' 문제를 꼽았다.

그로시 총장의 이날 발언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현상 자체를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칫 '사실상 핵보유국' 노선을 추구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증진하고 국제 핵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된 IAEA의 수장이 북핵 용인의 여지를 주는 듯한 뉘앙스를 공개적으로 내비친 것만으로도 북한 등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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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로이터. 연합뉴스.

의도치 않은 논란 야기 우려

특히 그로시 총장은 과거엔 "북한의 핵 보유는 불법이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2020년 2월, 카네기국제평화재단 강연회)고 명확하게 말해왔다. IAEA도 2022년 10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와 IAEA의 핵 사찰·검증 수용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IAEA의 기존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IAEA 수장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부르며 "핵 보유 사실은 인정하자"고 발언한 건 처음이라 의도치 않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IAEA의 궁극적인 목표는 반확산, 쉽게 말해 핵을 없애자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IAEA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존립 근거와 명분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비현실적 목표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는 게 사실이고 김정은은 그 틈새를 이용하려고 한다"며 "북핵의 실존적 위협을 받는 한국 정부로선 이럴 때일수록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명시되지 않은 어떤 형태의 협상과 합의도 수용할 수 없단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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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권수립기념일(9월 9일) 76주년을 맞은 9일 ″금후 국가사업 방향과 관련한 중요 연설을 했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강력한 힘이 진정한 평화″라며 ″핵역량을 부단히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노동신문. 뉴스1.

美 공화·민주 정강서 '비핵화' 빠져

앞서 지난 7~8월 차례로 공개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강에서도 북한 비핵화 목표가 빠졌다. 2016년, 2020년 발표됐던 민주당 정강에는 CVID 목표가 명시됐지만 올해 정강에선 사라졌다. 공화당도 지난 두 차례 대선 때 밝힌 정강에선 CVID를 명시했지만 올해 정강에선 한반도와 북한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다.

이를 두고 향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핵 접근이 비핵화가 아닌 군축을 통한 위협 감소에 방점을 찍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재임 시절 김정은과 직접 마주 앉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미국이 비핵화 협상 대신 미 본토에 대한 위협만 제거하고 북한이 일부 핵은 보유한 채 제재를 완화하는 '스몰 딜'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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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 등을 방문해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신문. 뉴스1.

지난 13일 북한이 사상 최초로 우라늄 농축 시설을 사진과 함께 보란 듯이 공개한 것도 미 대선을 앞두고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미국 차기 행정부를 향해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고, 북한 핵무기의 고도화는 불가역적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던지고 있다"며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정치적'으로 승인받아 새로운 핵 협상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는 러시아의 '뒷배'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국영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은 자체적인 핵우산을 갖고 있다”며 “우리에게 (핵우산 관련) 어떤 도움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러 불법 군사 협력 혐의를 부인하려는 취지지만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처럼 들릴 여지가 있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세르게이 라프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26일(현지시간) 외무부 웹사이트를 통한 질의응답에서 "북한에 적용되는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가 모든 의미를 잃었다. 우리에게 이것은 종결된 문제"라고 주장하며 북한 비핵화 불가론에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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