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성산패총에 화강석 덩어리들이 놓였다…창원은 지금 ‘조각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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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을 통해 생명의 에너지를 드러낸 정현의 ‘목전주’(2006). [사진 창원조각비엔날레]

경남 창원시 대원동 창원복합문화센터 넓은 공터(옛 동남운동장)에 키 큰 나무 기둥 여섯 개가 세워졌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늘로 뻗어 오르는 형상이다. 조각가 정현(67)의 대형 작품 ‘목전주’(2006)다. 2007년부터 경기도미술관 마당에 서 있던 것을 이번에 잠시 옮겨 왔다. 정 작가는 “2006년 작품 제작 당시 수소문해서 창원변전소에 남아 있던 것(목전주)을 찾아 재료로 썼다”며 “아버지가 전기 일을 하시며 5남 4녀 중 8남매를 대학까지 보내셨다. 목전주는 평생 묵묵히 일만 하신 아버지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지난 27일 창원시 일대에서 개막했다. 창원은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82)과 문신(1923∼95), 박석원(82) 등을 배출한 ‘조각의 도시’다.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이 모태로, 2012년부터는 비엔날레 형식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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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 감상하는 이마즈 케이의 설치 작품.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첫 여성감독인 현시원 예술감독이 이끄는 올해 행사는 김혜순 시인의 시 ‘잘 익은 사과’에서 따온 ‘큰 사과가 소리없이’가 주제다. 16개국 86명(63팀)의 작품 177점을 창원 곳곳에 배치했다. 현 감독은 “사과껍질처럼 나선형 길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동시대 조각의 수평성, 여성과 노동, 도시의 역사와 변화 등을 다각도로 다루고자 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기존 전시장인 성산아트홀과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하 문신미술관)  외에도 창원의 역사가 담긴 성산패총과 창원복합문화센터(동남운동장)를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산업도시의 특성을 살려 노동의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홍승혜 작가는 영화 ‘모던 타임즈’(1939) 장면을 차용해 낙하하는 채플린 등의 모습으로 성산아트홀 대형 유리창을 시트 드로잉으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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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정숙의 ‘비상’(1990).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철기시대 조개 무덤 유적지인 성산패총은 이번에 처음 비엔날레 공간으로 쓰였다. 야외 언덕에 자리한 창원(진해) 출신 조각가 박석원의 화강석 작업 ‘적의(積意)-중력’과 알루미늄 작품 ‘핸들’은 거친 돌과 매끈하고 반짝이는 알루미늄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성산패총 유물전시관 2층 발코니에는 거대한 용수철 모양인 최고은의 작품 ‘에어록’이 놓였다. 금속 파이프의 반복되는 곡선이 장복산과 인근 공장 풍경을 하나로 엮은 드로잉 같은 조각이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정숙(1917~ 91)의 1952년 작 ‘명상’, 마사 로슬러(81)의 대표 영상 작품 ‘부엌의 기호학’(1975) 등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다만 정현의 ‘목전주’ 등 몇몇 작품을 소개하는 것 외에 동남운동장의 드넓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주최 측은 전시 정보를 담은 일반 가이드북 대신 조각가의 에세이 등을 담아 무크지 형식으로 출간했다. 조영파 창원문화재단 대표는 “비엔날레를 통해 지역 이야기를 발굴하고, 새로운 문화가치를 창출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행사는 11월 10일까지이며, 이 기간 창원중앙역과 전시 장소들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화∼일)를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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