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인 용기·역사에 감동 받았다"…프랑스 거장의 현대극 한국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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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현실이 된 시대, 로봇이 인류를 멸망시킬 지 모른다는 디스토피아적 예언보다 더 불안한 건 아마 이런 상상 아닐까. 인간과 똑 닮은 안드로이드가 아이들의 가정교사이자 단짝 역할을 하게 된 근 미래, 방문을 걸어 잠근 성장기 자녀의 머릿속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일들 말이다.
“인간과 사물의 경계에 있는 로봇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죠.”
프랑스 최고 공연예술상 몰리에르상을 9회 수상한 현대극 거장 조엘 폼므라(61)가 7~10일 나흘간 서울 마곡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창작 연극 ‘이야기와 전설’로 오리지널 프러덕션과 함께 최초 내한한다. ‘이야기와 전설’은 안드로이드 로봇이 상용화된 미래, 로봇과 함께 자라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11개 에피소드에 모자이크처럼 담아냈다. 몰리에르상 최우수 작품‧연출‧극작상 3관왕에 오른 작품이다. 내한 전 그를 서면 인터뷰했다.
7일 LG아트센터 개막 '이야기의 전설'#현대극 거장 조엘 폼므라 첫 내한 #로봇과 청소년 탐구한 11개 이야기 #현실 해부 우화적 상상…弗대통령 반해 #연극 '두 코리아의 통일'로 수상 휩쓸어 #"한국인 용기와 역사 깊은 감동준다"
弗대통령 취임 직후 보러 달려간 연극
프랑스 연극의 상징인 폼므라는 1990년 자신의 극단 ‘루이 브루이야르’를 창단한 이래 현대사회를 고전 동화로 해석한 3부작 ‘빨간모자’ ‘피노키오’ ‘신데렐라’ 등을 만든 극작가이자 연출가. 유명 연출가 피터 브룩은 그를 “최고의 연극 장인”으로 칭했다.
“불안하고 불편한 진실로 가득한 작품”(가디언)으로 명성 높은 그는 우화적 이야기에 비수 같은 현실을 담아왔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 2012년 취임 후 제일 먼저 관람한 연극이 그의 작품이었던 이유다.
그에게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청소년기는 중요한 화두다. 엄격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누나를 통해 연극을 접한 뒤 10대 후반 학교를 그만두고 배우로 출발해 극작을 독학했다. 무대는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 놨다. 프랑스 혁명 초기 4년 간을 다룬 6시간 대작 ‘괜찮아, (1) 루이의 종말’(2015)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뒤 초심을 되짚듯 청소년 주인공의 동화 시리즈로 돌아왔다.
"자아형성기, 자연인류·인공인류 공존 다뤄"
2020년 프랑스 초연한 ‘이야기의 전설’에선 마치 미래로 건너간 인류학자처럼 청소년과 어른, 안드로이드 간의 관계를 관찰했다. 배우들과 리허설하며 대본을 쓰기로 유명한 그가 특유의 절제한 무대에서 10명의 배우들과 110분간 극을 끌어간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 성 정체성, 부모와의 관계, 죽음, 거짓과 진실을 격렬히 탐구하는 청소년기를 무대로 “자연적 인류와 인공적 인류의 공존 가능성”을 폭넓게 실험했다. 가령 ‘진짜 남자’가 되고 싶은 거리 소년들이 욕정을 느낀 상대가 로봇이란 걸 알고 수치심에 시달리거나, 사춘기 아이가 배려심 많은 돌봄 로봇과 결혼을 꿈꿀 만큼 사랑에 빠진다면 어떨까.
“로봇이라는 환상 요소가 등장하는 작은 이야기들”이라 작품을 소개한 그는 “자아를 형성하는 어린 시절이 작품의 출발점”이라 밝혔다. 평소 “‘인공지능’보단 주변의 삶에서, ‘인간의 지능과 감성’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그는 로봇과 인간의 공생 관계, 즉 '기계와 인간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는 우리 안의 무엇을 드러나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사춘기 열병에 달뜬 아이가 결국 로봇과 인간의 쓰디쓴 진실에 눈뜨는 고통을 먼 미래에 불시착한 전래동화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보편적인 제목이기 때문에 관객이 공연에 자신만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단순한 이야기를 풍부하고 복잡하게 전달하는 것이 의미 있다. 내가 오랜 세월 예술적으로 다듬어진 동화에 관심 많은 이유”라고 말했다.
사랑과 욕망 이야기 '두 코리아의 통일' 제목 까닭
이처럼 관객에게 삶에 관한 수수께끼를 던져온 그의 대표작 중엔 프랑스 연극상을 휩쓴 2013년작 ‘두 코리아의 통일’도 있다. 사랑과 관계 맺기의 욕망을 탐구한 작품이다. 폼므라가 극 중 한 남자가 병든 아내를 향한 사랑의 기쁨을, 긴 세월 떨어져 있던 이들의 재회에 비유한 대사에서 남북한 이산가족을 연상하며 제목을 달았다. “이 제목이 한국 관객에게 단순히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그는 “한국인들의 용기와 역사를 떠올릴 때마다 깊이 감동한다”고 전했다.
“좋은 이야기에 정답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야기에 계속 관심을 가질 겁니다. 이야기는 우리를 움직이고, 우리를 스스로에게 돌아오게 하기 때문이죠.”
그는 2000년대 초반 유럽의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쓴 ‘이야기와 전설’이 한국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 기대도 내비쳤다. 이번 내한 공연은 불어로 구성된 극에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중학생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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