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외됐던 소아 악성 뇌종양 환자들, 완치 희망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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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소아암 어린이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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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세포종 환자 뇌·척수 MRI 사진. 소뇌 종양(왼쪽 원 안)과 척수 전이(오른쪽)가 눈에 띈다. [사진 서울대병원]
소아암은 성인암에 비해 소외된 영역이다. 연구비도 적고 따기도 힘들다. 환자가 적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병원 연구진이 소아 악성 뇌종양을 좀 더 빨리 진단해 치료하고, 나아가 임신 테스트기 같은 진단 키트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에 써달라고 내놓은 기부금 3000억원이 바탕이 됐다.
연구를 주도한 서울대병원 소아신경외과 김승기 교수의 설명을 들었다.
“어린이 악성뇌종양 환자들은 5년 생존율이 80%를 넘어설 만큼 예후(치료 결과)가 좋습니다. 그런데 전이가 되면 생존율이 60%대로 떨어집니다. 좀 더 정확하고 빠르게 진단하고, 전이 가능성까지 예측한다면 치료 계획이 달라져 결과가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연구에 착수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 교수팀은 소아 악성 뇌종양인 ‘수모세포종’을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수모세포종은 소뇌에 주로 생긴다. 소아 뇌종양 중에서도 가장 흔한 유형이다. 소뇌는 뇌의 뒤쪽 아래에 있다. 몸의 균형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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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 교수. [사진 서울대병원]
김 교수는 “수모세포종은 미국에선 10만명당 0.5명 꼴로 발병하고, 한국은 연간 20~30명 나온다”고 설명했다. 수모세포종은 뇌척수액을 따라 종양이 퍼질 가능성이 높다. 진단 시점에 이미 환자 30%는 종양이 전이된 상태라고 한다. 수술과 방사선·항암치료법이 발전하면서 치료 성적이 좋아지지만, 전이된 고위험 환자는 치료가 훨씬 어렵다. 현재는 MRI(자기공명영상) 검사와 뇌척수액 검사로 전이 여부를 확인한다. 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져 미세하게 전이된 것을 잡아내기 어렵다. 김 교수는 “한 명의 아이도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김 교수팀은 2016~2019년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수술 받은 수모세포종 환자 21명과 뇌종양이 없는 수두증(뇌척수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현상) 환자 14명의 뇌척수액 단백질을 모두 분석했다. 환자 1인당 평균적으로 1100여 개의 단백질이 검출됐는데, 이 가운데 ‘TKT(Transketolase) 단백질’이라는 효소의 농도가 수모세포종 환자에게서 유독 높게 나왔다. TKT 단백질은 세포의 당 대사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로, 에너지를 생성하고 세포 성장에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
연구팀은 더 나아가 전이가 있는 수모세포종 환자들은 TKT 단백질을 담은 세포외소포(세포가 분비하는 작은 주머니) 개수가 훨씬 많고, 이게 많을수록 전이 정도도 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 교수는 “TKT 단백질이 전이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바이오마커(생물학적 지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연구를 발전시키면 향후 임신 테스트기처럼 뇌척수액을 주입하면 수모세포종 발병과 전이 여부를 알 수 있는 간단하고 정확한 진단 키트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환자 수가 많은 성인 질환 연구는 연구비가 많이 지원되지만, 소아 종양은 환자가 적다 보니 그렇지 않다. 연구비 지원 사업에 응모해도 떨어지고 소외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김승기 교수를 비롯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김주환 교수,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 소아암사업부 최승아 교수, 융합의학과 한도현 교수·단기순 박사가 팀을 이뤄 진행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이건희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시작도 못했을 것”이라며 “덕분에 공동 연구팀을 꾸려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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