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통산 15승을 달성한 고진영은 명예의 전당 입성에 도전 중이다. 고봉준 기자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명예의 전당은 전설 중의 전설에만 입회를 허락한다. 1950년 창설(당시는 여자골프 명예의 전당) 이래 헌액된 선수는 초대 회장 패티 버그(미국·2006년 타계)부터 지난해 최연소 헌액자가 된 리디아 고(28·뉴질랜드)까지 35명뿐이다. LPGA 투어에서 숱한 드라마를 쓴 한국 선수 중에서는 25승의 ‘골프 여왕’ 박세리(48)와 21승의 ‘골프 여제’ 박인비(37)만 헌액됐다.

LPGA 투어 자체 명예의 전당이 설립된 1967년부터 적용한 입회 조건은 이렇다. 먼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거나 평균타수상, 올해의 선수상 중 하나를 수상해야 한다. 기준 점수(27점)도 채워야 한다. 우승에 1점(메이저대회는 2점)이, 평균타수상이나 올해의 선수상에도 1점이 주어진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도 1점이다. 이렇게 27점을 채워야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한국인 통산 세 번째 명예의 전당 회원으로 누가 유력할까. 현재로선 20점의 고진영(30)이다. LPGA 투어 15승의 고진영은 현재 페이스를 유지할 경우 머지않아 20승을 돌파하고 입회 기준인 27점도 넘어설 전망이다. 27일 개막한 HSBC 여자 월드챔피언십 경기장인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에서 만난 고진영도 내심 명예의 전당 입회를 의식하는 눈치였다.

고진영은 “아직은 크게 욕심은 내지 않는다”면서도 “팬들의 염원이 크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이곳 싱가포르에 (저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기원하는 팬클럽이 있다”고 ‘비밀 결사대’의 존재를 귀띔했다. ‘JY unlimited’(한계 없는 고진영)로 명명된 싱가포르 현지 팬클럽은 지난 2022년 결성됐다. 그가 HSBC 여자 월드챔피언십에서 처음 우승한 해다. 팬클럽은 정확히 ‘27명’의 회원만으로 운영된다. 바로 입회 기준인 ‘27점’을 의미한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종의 사조직이다.

고진영은 “(팬클럽에서) 신입 회원을 뽑을 때도 기준이 까다롭다고 들었다. 특징은 회원 대부분이 싱가포르 현지 팬이라는 점”이라며 “3년 전 내 플레이를 처음 보고 팬이 된 분들이다. 확실한 목표 의식이 있는 팬클럽인 만큼 나도 명예의 전당 헌액을 더 의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 현지 팬의 응원을 받은 그는 이듬해인 2023년에도 같은 대회에서 정상을 밟았다. 지난해에는 공동 22위에 그쳐 아쉬움을 삼킨 그는 이번에 우승 트로피를 탈환하겠다는 각오로 싱가포르를 찾았다.

1라운드 경기가 열린 이 날도 팬클럽 회원들이 대회장을 찾았다. 금융업계에서 일한다는 교포 마크 김(42)씨는 “명예의 전당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 않나. 그러나 고진영이라면 충분히 입회할 수 있다고 본다”며 “올해부터 매년 3점씩 쌓아 하루빨리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66명이 출전한 이 날 1라운드에선 김아림(30)이 버디 5개와 보기 1개로 4언더파 단독선두를 달렸다. 3언더파의 찰리 헐(29·영국)이 2위, 2언더파의 최혜진(26)이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양희영(36)이 1언더파 공동 7위로 뒤를 이었고, 임진희(27)가 이븐파 공동 14위, 고진영, 유해란(24), 김효주(30)가 1오버파 공동 20위에 랭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