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정보] 원주시 문막읍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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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문막읍의 문화재좀 찾아주세요...

요약하고,언제 만들어 졌는지.. 그런 것들 중요한 내용은

꼭 적어주는 센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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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미님의 댓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의 문화재)

1.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종 목  천연기념물  제167호  면 적 1,045㎡(보호구역) 지 정 일 1964.01.31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문막면 반계리 1495-1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반계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800∼1,0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2m, 둘레 16.27m로 논밭 중앙에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전체가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일부 가지는 부러질 염려가 있어서 받침대로 받쳐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 살던 성주 이씨의 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관리하다가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떤 큰스님이 이곳을 지나는 길에 물을 마시고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 지팡이가 자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이 나무 안에 흰 뱀이 살고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겼으며, 가을에 단풍이 한꺼번에 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오래되고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높고, 신목으로서 역할을 하고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민속문화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2.원주 비두리 귀부 및 이수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0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귀문로 1008 (비두리 산31)  시 대 조선시대

비두리 마을에 놓여 있는 비로, 원래는 후용리 마을의 용바위골에 있던 것을 인근에 법당을 세우면서 옮겨갔다가, 비두리 마을 주민의 건의에 따라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비는 바닥돌 위로 거북받침을 두었고, 그 위로 비몸이 사라진 채 머릿돌만 놓여 있다. 거북받침은 머리가 뒤로 바짝 돌려져 비를 바라다 보는 형상이며, 등에는 2중의 육각무늬가 가득 차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거니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얼굴을 마주보고 몸은 서로 뒤엉킨 모습으로 요동치는 용의 움직임이 힘차다.

비몸이 사라져 비을 세운 시기나 그 주인공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조각솜씨가 돋보이며, 특히 뒤로 돌려져 등에 붙어 있는 거북머리는 매우 독특한 발상이다.

3.김두한 가옥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지샘등안길 46-11 (건등리 852-4)  시 대 조선시대

원주목사와 남원목사를 지낸 김탄행(1714∼1774)의 묘를 관리하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약 240여 년 전에 처음 지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으며, 1936년에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ㄱ자형의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ㄷ자형을 이루고, 사랑채 끝에 대문과 헛간 등이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안방과 웃방이 부엌에 접하여 있고 그 옆으로 대청과 건넌방이 있으며, 지붕 옆면은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사랑채는 3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앞면 3칸의 규모로 지었으며, 왼쪽 1칸은 마루방·오른쪽 2칸은 방으로 되어 있다. 마루방 뒤쪽에는 사방 1칸의 온돌방을 두었는데, 이 뒤쪽으로 안채의 부엌과 닿아있다.

사랑채 옆은 대문으로 여기에 이어져 헛간·창고방들이 ㄴ자로 연결되어 있다. 대문에서 헛간부분은 사랑채보다 현저히 낮게 구성되어 지붕선도 층단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이용하는 공간이 구분되어 전체의 가옥형태를 이루는데, 이 집은 사랑채의 주요공간이 안채의 부엌 앞쪽에 닿아 있는 특이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4. 충효사

종 목  원주시 향토유적 제 3호 

지 정 일  2009.11.01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78 시 대  조선시대

이 사당은 부사과 충효공 황무진(1568~1652)을 봉안한 곳이다. 황무진의 본관은 창원이며 자는 자룡, 호는 벽룡담이다. 회산부원군 황석기의 9세손으로 원주시 봉산1동 무진고개 너머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자랐으나 가세가 빈곤하여 문막면 반계리에 있는 골무내기 마을로 옮겨서 평생을 살았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모친을 모시고 살면서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출천지효자)라는 칭송을 받으며 살다가 1627년 정묘호란때에 사한 김창일, 관설 허후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여 그 공으로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에 봉해졌다.

그 후 1634년(인조 12)에 그의 효성을 찬양하기 우해 나라에서 명하여 정문을 그의 집앞에 세우게 하였다. 후에 사당을 건립하도록 하고 각판과 현판, 제기등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충효사부조좌일에 의하면 사당은 그가 죽은지 69년후인 경종 1년(1721)에 건립 되었으며, 1965년 이후에 여러차례 중수 하였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익공집이다. 최초에는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그 후에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현재는 충효공의 탄신일에 향교에서 다례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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