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정보] 강원도 관찰시 심진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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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관찰시 심진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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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둥소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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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수토 결과에 관해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이 ... - 조선왕조실록 : 인쇄보기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沈晉賢)이 장계하였다. " 울릉도의 수토(搜討)를 2년에 한 번씩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돌아가며 거행하기로 이미 정식( ...

http://sillok.history.go.kr/popup/print.do?id=wva_11806003_009&gubun=all

심진현

[ 沈晉賢 ]

정치/경제/생업 > 암행어사

1. 생몰 1747년(영조 23)

2. 급제

-35세 1782년(정조 6), 별시(別試) 병과8(丙科8)

3. 암행어사 연보

-39세 1786년(정조 10) 홍문관 부교리로 있다가 수찬이 되다. -40세 1787년(정조 11) 호남암행어사로 길을 떠나다 -40세 1787년(정조 11) 돌아와서 홍문관 수찬으로 돌아오다 -49세 1796년(정조 20) 의주에 물난리가 났을 때 의주부윤이었는데, 일 처리를 잘못했다 하여 백의종군하였음.

4. 관련 기록

《정조 023 11/04/02(기해) / 지방관의 처벌에 관한 호남 암행 어사 심진현의 서계 》 호남 암행 어사 심진현(沈晉賢)이 복명(復命)하였는데 서계(書啓)를 올려, 담양 전 부사(潭陽前府使) 홍배호(洪配浩)·전주 전 판관(全州前判官) 이의기(李宜耆)·운봉 현감(雲峰縣監) 한광적(韓光迪)·고산 현감(高山縣監) 이의일(李義逸)은 위법(違法)을 다스리지 않은 죄이고, 좌도 수군 절도사 허임(許任)은 송금(松禁)을 단속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는 것으로써 허임과 홍배호, 이의기는 잡아다 심문하여 정죄(定罪)하고, 한광적과 이의일은 파출(罷黜)하게 하였다. 그 별단(別單)에 이르기를, "조창(漕倉)의 폐단 가운데 실로 개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 군산(群山)과 성당(聖塘) 두 창고에 소속된 여러 고을 절반은 산골짜기여서 조창에서 혹 수백 리가 떨어져 있으니 쌀을 실어다가 바칠 형세가 만무하여 으레 모두 돈으로 방납(防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납하는 즈음에 갖가지 폐단이 다 생기게 되니 본읍(本邑)의 경우로 말한다면 호수(戶首)가 받아들이는 때에 주구(誅求)함이 갖추 이르게 되며 감관(監官)과 색리(色吏)가 영납(領納)하는 길에 쓸데없는 비용이 절반이나 됩니다. 이른바 노비(路費)나 태가(큓價) 등 각종 명색은 모두 민결(民結) 가운데서 더 징수하게 되니 통괄하여 계산하면 민간의 2석(石)의 값으로는 조창에 1석을 바치기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조창으로 말한다면 서울과 시골의 모리배(牟利輩)가 미포(米包)를 무역하는 데 힘을 써서 창고 아래에다 쌓아 두었다가 각 고을에서 납세할 때가 되면 차원(差員)에게 청탁하여 감관·색리와 부동(符同)하여 시가(市價)를 조종함으로써 값이 오르도록 힘써서 1석의 값에 시가(時價)의 반 배를 더한 연후에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어서 무역해 둔 곡식은 정조(精粗)를 따지지 않고 수효를 채워 실어와서 이익은 부자 장삿꾼에게로 돌아가고 피해는 가난한 백성에게로 돌아가니 널리 방법을 강구하여 바로잡는 바탕을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인재(人才)의 경우에는 호남의 습속이 부경(浮競)함에 있어서 호서보다 더 심하고 박실(樸實)함에 있어서는 영남에 비해 아주 못하여 학문을 숭상하는 집안의 후손들이 부지런히 힘쓰는 것은 과구(科臼)에 불과하며 향곡(鄕曲)의 준재(俊才)들이 성취하는 것은 모두 술수(術數)뿐입니다. 비록 더러 두세 명의 자호(自好)하는 선비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하더라도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 어떻게 잠깐 말하는 모양을 보고 능히 분별할 수가 있겠습니까? 실로 성상께서 어진 인재를 급구(急求)하시는 지극한 뜻을 우러러 본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효열(孝烈)의 경우에는 남원부(南原府)의 유학(幼學) 정조문(鄭朝文)의 처 이씨(李氏)가 집 뒤 시내 옆에서 쑥을 캐는데 이웃에 사는 상한(常漢) 권만세(權萬世)란 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손을 잡고 강간을 하려고 하자 이씨가 죽기를 각오하고 반항하면서 사기(辭氣)가 더욱 사납게 되자 권만세가 그녀의 정조를 빼앗을 수 없음을 알고는 몸을 돌려 멀리 도망했습니다. 이씨가 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손도끼로 오른쪽 팔을 자르고 또 목을 베려고 했는데 마침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받고 중지되어 거의 죽으려다가 살아났으니, 마땅히 정려(旌閭)하고 포상해야 합니다. 순천부(順天府)의 무부(巫夫) 추절창(秋節昌)이란 자가 병이 위급해졌는데,(하략)

[네이버 지식백과] 심진현 [沈晉賢]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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