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정보] 동해시 발한동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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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발한동에 대한 문화재에 대해 하고 싶습니다 내용은 많을수록 좋구요
문화재 사진도 필요한데 아 그리고 사진이나 문화재에 대한 사진에 출처를 적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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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쌤님의 댓글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의 문화재)

 

1.동해 향운암 소장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종 목  보물 제1948호

지 정 일  2017.12.26

소 재 지  강원도 동해시 발한천길 43-68 (발한동 496-4)

시 대  조선시대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는 수륙무차평등재의 기원과 의식, 절차 등에 관한 것을 모은 불교의 의례서로, 권말에 있는 김수온의 발문을 바탕으로 세조비 정희왕후(1418-1483)가 세조·예종·덕종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0년(성종 1) 왕실 주도로 간행한 판본이다.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전적 중 성종연간(1479-1494)에 왕실과 사찰 등에서 간행된 것은 총22건이며, 이 중 향운암 소장 수재의궤의 간행연도인 1470년에 간행된 불서는 3종이다. 향운암 소장본은 왕실이 주관하여 간행한 수륙재의 기본서이자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및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의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2.동해 신재공 심동로 신도비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9호

지 정 일 2009.05.22 소 재 지 강원도 동해시 붉은언덕길 24-1 (발한동 181-1)  시 대 조선시대

이 비는 고려말 문신인 신재공 심한의 신도비이다. 심한이 1361년(공민왕10)에 벼슬을 버리고 삼척으로 낙향하자 공민왕이 ‘노인이 동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동로”라는 이름을 내렸으며, 후에 진주군에 봉하여졌다.

 

비는 동해시 발한동 시가지 도로변에 접하여, 도로를 제외한 주위가 민가에 둘러싼 비각 안에 위치하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고려예의판서호신재심공신도비명’이라는 전이 있고, 전면에는 신재공의 선조와 공의 내력, 후면에는 기문과 후손의 이름을 기록하였으나 측면에는 내용이 없다. 비문은 사헌부대사헌 겸 경연관원자우유선인 이성보가 찬하고, 글씨는 전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지제교인 이석우가 썼으며, 영춘현감인 유한지가 전을 썼다.

 

비는 장방형의 농대와 가첨석을 갖추고 있는데, 농대와 가첨석은 화강암이며 농대의 하부는 시멘트로 채워진 바닥에 묻혀 있어 현재는 상면만 볼 수 있다. 가첨석은 팔작지붕 형태로 간단하게 모양만을 내고 있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248cm, 너비 98cm, 두께 15cm이고, 가첨석은 높이 35cm, 최대 너비 125cm이며, 농대는 현재 보이는 높이 19cm, 너비 145cm, 두께 58cm이다.

 

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형식으로, 4기둥은 다듬은 원형 주초석 위에 놓여 있다. 비각의 전면은 출입용도의 쪽문을 두고 2단으로 살대를 만들었으며, 나머지 3면은 하단은 벽채를 만들고 상단만 살대를 설치하였다.

 

3.동해 향운암 소장 천지명양수륙잡문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지 정 일  2015.11.06

소 재 지  강원도 동해시 발한천길 43-68 (발한동 496-4)

시 대  조선시대

이 책은 수륙무차평등재 때에 필요한 문, 표장, 방 등의 여러 가지 문식들을 모아 정리한 불교의례서이다.

천지명양수륙잡문의 원본은 중국의 소연이 지은 수륙의문이며, 1303년 원나라 무외가 이를 완보하였다. 수륙의문은 ‘자기’ㆍ‘지반’ㆍ‘중례’ㆍ‘결수’라 하였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자기’ㆍ‘지반’ㆍ‘중례’ㆍ‘결수’ 등은 각각 모두 간본이 있었다. 1463년(세조 9)년 중국에서 구하여 1464년 주자로 수십건을 인출하고 어찰에 하사하여 봉행토록 하였다.

성종조에는 금강산 표훈사에 수륙재를 설치하여 낙성한 일도 있었다. 연산조에는 천지명양수륙잡문의 간본이 너무 적어 안타깝게 여기던 중 성종의 계비였던 자순대비 윤씨(1462~1530)가 내탕금을 들여 목활자를 만들고, 200건을 간행하기도 하였으며, 그 후로도 수차례 더 간행되었던 듯하다.

향운암 소장 수륙잡문은 내용으로 볼 때 발원자 이의동(?~?)이 통훈대부 이수천(1524~1594) 등 수십인의 시주를 받고, 성일(?~?)선사 등이 서사한 것을 정언(?~?)선사 등이 판각하여 간행한 목판본임을 알 수 있다.

간기가 없어 어느 시기에 어느 사찰에서 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으나, 시주질에 나타나는 이수천과 전유(?~?) 등의 생몰년과 판식 등으로 볼 때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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