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정보] 삼척시 근덕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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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리고장의문화재를 조사해오는개 숙제인데 좀 도와주세요.....ㅜㅅㅜ내공 250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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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의 문화재) 

 

1.삼척 초당굴

종 목  천연기념물  제226호  면 적 85,226㎡(지정구역) 지 정 일 1970.09.17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금계리 산380외 

삼척 초당굴은 대형 동굴로, 총길이가 약 4㎞로 추정된다. 초당굴은 백색과 회백색, 연홍색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고 수직굴과 경사로, 수평굴의 3단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동굴 안에는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과 땅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기둥을 이룬 석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많다. 또한 크고 작은 연못이 연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동굴속에는 지하수가 계속 흘러 밑바닥 아래층의 굴로 흐르고 있는데,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물김이 자생하고 있다.

삼척 초당굴은 대형 석회동굴로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의 동굴 생성물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희귀한 물김이 자라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2.삼척 궁촌리 음나무

종 목  천연기념물  제363호  면 적 573㎡(보호구역) 지 정 일 1989.09.16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2길 58 (궁촌리 452) 

 

음나무는 보통 엄나무라고 불리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중국·만주·우수리 등지에 분포한다. 연한 잎은 나물로 먹고 가시가 있는 가지는 악귀를 물리치는데 사용하였다. 옛날에는 이 나무로 6각형의 노리개를 만들어 어린아이에게 채워 줌으로써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것을 ‘음’이라고 하여 음나무로 불리워졌다.

이 음나무는 나이가 약 1,000년 정도이며 높이 18m, 둘레 5.43m의 크고 오래된 나무이다. 나무 둘레에는 돌담을 쌓아 보호하고 있는데, 담 안에 고욤나무와 뽕나무가 있고, 담 밖에는 큰고욤나무, 향나무, 소나무가 서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모두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특히 음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나무에 금줄을 치고 부정한 사람이 나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매년 음력 정월과 단오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며, 단오 때는 그네뛰기, 널뛰기, 농악놀이 등 잔치를 벌인다.

이 음나무는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자라온 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음나무 중의 하나로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3.삼척 교수당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1호

지 정 일 1979.05.30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531  시 대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문신인 홍준이 고려가 앞으로 혼란해질 것이라 예감하고, 삼척에 내려와 살면서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고려 우왕 14년(1388)에 처음 지었으며,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다시 지어졌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건물이다. 좌우 1칸에서만 출입이 가능하며,나머지 부분은 모두 난간으로 처리되었다.

 

건물 안에는 선생의 스승이었던 목은 이색의 시가 새겨진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

 

 

4.삼척 영은사 대웅보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길 1162 (궁촌리 924)  시 대 신라

영은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범일조사가 처음 지은 절로, 이때에는 운망사라 하였다. 조선 선조 18년(1585)에 사명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지으면서 영은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산불로 절이 모두 불탄 것을 순조 5년(1805)에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영은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옆에서 보았을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다포식 건물은 보통 팔작지붕이나 우진각지붕집인데 비해, 이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특이하다. 내부에는 석가모니삼존불상을 모시고 있고 5폭의 탱화가 있다. 

 

 

5.삼척 영은사 팔상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길 1162 (궁촌리 924)  시 대 신라

영은사는 통일신라말에 범일조사가 지은 절이다. 절에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팔상전은 조선 인조 19년(1641)에 지었다고 하는데, 건축양식으로 보면 조선 후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앞쪽은 겹처마이고 뒤쪽은 홑처마로 되어 있는데, 뒤쪽의 덧서까래를 앞쪽보다 길게 하여 건물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또 지붕 옆면에 방풍판을 달았는데, 모서리를 서로 다르게 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어 특이하다.

 

내부에는 영조 36년(1760)에 그린 탱화 8점이 모셔져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것이다. 

 

 

6.교가리 느티나무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14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650-15  시 대 시대미상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교가리 옛 장터 가운데에서 자라고 있는 교가리의 느티나무는 높이 약 10m, 둘레 9m이고, 확실한 나이는 알 수 없다. 원래는 높이가 25m였으나 1947년 폭풍우로 인해 가운데 부분이 부러졌다.

전설에 따르면 1355년에 큰 화재가 있어 거의 죽을 뻔한 이 나무를 한 도승이 와서 소나무 뿌리와 느릅나무 뿌리로 나무의 구멍을 채우고 진흙으로 덮게 하여 살렸다고 하며, 1885년에도 화재가 나서 다시 죽을 뻔한 것을 전과 같은 방법으로 살렸다고 한다. 이 나무에는 신령한 기운이 있어 옛부터 이 나무 근처에는 호랑이나 표범 등이 접근하지 못했다고 하며, 매년 말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교가리의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7.삼척 공양왕릉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71호

지 정 일 1995.09.18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공양왕길 43-21 (궁촌리 178)  시 대 조선시대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의 묘로 전하는 곳이다.

 

공양왕은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폐위되었고, 태조 3년(1394)에 왕자 석, 우와 함께 삼척으로 간 뒤 교살되었다.

 

공양왕릉은 강원도 삼척시와 경기도 고양시 두 곳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문헌의 기록이 부족하여 어느 쪽이 왕릉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고양시의 능은 조선 왕조가 인정하고, 삼척시의 능은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이나 둘 다 조선시대 문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삼척시 왕릉에 대한 기록은 현종 3년(1662) 삼척부사 허목의『척주지』와 철종 6년(1855) 김구혁의『척주선생안』이 있다. 그리고 3년마다 공양왕릉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이 전해지는데 임금이 유배된 곳이라 하여 궁촌, 마을 뒷길 고돌산에서 살해되었다고 하여 살해재, 왕자 석이 살았다는 궁터, 말을 매던 마리방 등이 그것이다.

 

삼척의 공양왕릉은 봉분이 모두 4기인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 2기는 두 왕자, 나머지 하나는 시녀 또는 말의 무덤이라 전한다.

 

 

8.삼척 신흥사 설선당 및 심검당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8호

지 정 일 1988.05.18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양리길 220 (동막리 1332)  시 대 통일신라

신흥사는 진덕여왕 3년(889) 범일국사가 창건하여 지흥사라 하였는데 조선 현종 15년(1674) 현위치로 이전하여 광운사라 하였고, 후에 다시 운흥사로 개칭하였다. 영조 46년(1770)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고 순조 21년(1821) 신흥사라 개명하였다.

 

설선당과 심검당은 모두 신흥사의 요사로 그중 심검당은 현종 15년(1674) 건립된 ㄴ자형 목조아즙 홑처마 팔작기와지붕이며, 심검당은 영조 47년(1771) 건립된 ㅁ자형 목조와즙 홑처마 팔작기와지붕의 건물로 진영각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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