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정보] 삼척시 남양동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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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 남양동의 문화재는 무엇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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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장난감님의 댓글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의 문화재)

 

삼척 봉황산 미륵삼불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 시 대  조선시대

삼척 봉황산 미륵불이 보고있는 지점을 호악, 즉 호랑이산이라 불러왔는데, 이곳에서 사악한 기운이 나와 마을과 주민들에게 온갖 재앙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여 삼척부사가 미륵삼불을 만들어 세웠다. 지역의 노인들에 의하면 실제로 그 지역에는 살기가 넘쳐났다고 한다. 지금의 동두고개 즉 남양동에서 정라진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넘어서서 정라동사무소 맞은 편 언덕이 조선시대에 사형장이었다.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해치면 피해를 입는다하여 신성시하고 신목으로 여겨 보호해 왔으며,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단오 때에는 큭 굿을 올린다고 합니다. 또한 잎이 필 때 동쪽 가지에서 먼저 피면 영동지방이, 서쪽 가지에서 먼저 피면 영서지방이 풍년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음나무 인근에는 소나무 고욤나무 뽕나무 향나무가 각각 한그루씩 자리잡고 있어 과거 주거지로 보이는데 마을 노인들의 의하면 음나무가 서 있는 곳이 고려 공양왕이 유배되어 은거하던 집뜰이었다고 합니다.

정라진은 동해안 수군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수군의 죄수들은 모두 정라진의 삼척포진에서 재판과 함께 형을 집행당했고, 각처에서 압송되어온 죄인들은 삼척에 들어서면 당연히 떨 수밖에 없었다. 삼척주민들도 죄인에게 따뜻한 방을 줄 수 없었기에 [삼척냉방]이란 말도 생겨났다. 그렇게 사형당한 죄인들의 사악한 기운이 동두고개를 넘어 읍내에 재앙을 가져다 준다고 믿게 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자 1835년 부사 이규헌은 미륵불 3기를 만들어 봉황산 위에 설치했다(향교의 안산인 봉황산에서 요사한 기운이 나와 그렇게 했다는 말도 있음) 그후 마을의 재앙은 사라지고 평화스러운 나날이 지속되었는데 삼척포진영의 병사들이 미륵을 강물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러자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 되었다.

 

이 때 한 노인의 꿈에 미륵보살이 나타나 "나를 건져주면 비를 내리겠다"고 하므로 선량 오십명을 동원, 미륵불을 건져내자 곧 번개와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후 1857년 주민들이 남양동 백조아파트 뒤쪽인 현 위치로 옮겨졌다. 조선왕조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미륵불 조상에 있어서 조각수법이 조잡해졌다는 예술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삼척의 석재로 삼척의 석공이 만든 미륵불이기에 대단히 값진 향토문화재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서울의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공간에 삼척의 미륵삼불이 복재되어 의연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잡다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굵은 선으로 전체적 조형미를 갖추고, 타원형의 큰 눈, 반원추형의 코, 도톰하고 큰 귀, 반쯤 미소를 머금은 가녀린 입술, 전체적으로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선비의 모습을 하고있는 미륵삼불. 그 속에 웅대한 기상을 지녔으나 잔꾀를 부리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생활했던 조선시대 삼척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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