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뉴스] [광부엄마]탄광의 여성, 엄마들을 기억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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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에필로그=사진으로 기록한 광부엄마

태백 장성광업소 철암역두 선탄장에서 두꺼운 방진마스크와 귀마개를 착용한 선탄부들이 작업하고 있다. 이들의 마스크와 귀마개는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의 갑옷과도 같다. 신세희기자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마침내 여성광부.

그들의 탄광 입사지원서 첫 문장은 갑작스러운 반려의 부재로부터 시작한다.

슬픔은 잠시, 당장 새끼들의 주린 배를 채우려면 엄마는 눈물을 닦고 집 밖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남편을 삼킨 탄광으로 다시 향했다. 그녀들의 가정을 무너뜨린 탄광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한 구원의 통로가 되었다.

그들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된다. 변변한 마스크 하나 쓰지 못하고 그녀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벨트에 따라 바삐 손을 움직인다. 허리를 펼 수 있는 순간은

30분 남짓 점심시간 뿐이었다. 고단한 노동이 연속이었지만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추가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산업화의 역군,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불렸던 광부들은 1989년 정부의 일방적인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1일 3교대였던 선탄부들도 석탄 생산량 감축에 따라 한 팀으로만 운영됐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 구조조정이 있었다. 열악한 처우와 고된 노동 환경에도 그녀들이 버텼던 이유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은 그녀들은 집으로 향하며 이렇게 말했다.

“탄광의 여성, 엄마들을 기억해달라”

태백 장성광업소 철암역두 선탄장. 거울에 비친 선탄부 신세희기자태백 장성광업소 철암역두 선탄장 앞에서 선탄부들이 작업 시작 전 안전을 다짐하고 있다. 강도 높은 노동에 의존하는 탄광촌에는 여성의 일자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성광부가 없는건 아니다. 지하막장에서 막 올라온 석탄 더미에서 상품성이 있는 석탄과 잡석 등을 가려내는 선탄부는 여성만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이 일하는 공간은 지상막장이며 이들은 탄광의 유일한 여성노동자다. 신세희기자태백 장성광업소 철암역두 선탄장. 이곳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단어는 '안전'이었다. 신세희기자태백 장성광업소의 마지막 선탄부들과 강원일보 취재진.◇1981년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촬영한 여성광부들. 강원일보DB◇1974년 정선 고한의 탄광에서 연탄을 이고 가는 여성들. 강원일보DB정동탄광 매몰사고로 숨진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1992.9.26태백시 통보광업소 매몰사고 4일만인 17일 오전 광부5명이 생환 구조되었다고 발표해 웃음을 되찾았던 가족들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자 오열하고 있다. 1993.8.18겨울 가뭄으로 인근 하천에서 물을 길러다 먹는 탄광촌 여성들의 모습. 1980.1.27석탄개발과 함께 계곡마다 빽빽히 들어선 광부사택 1983.3모두 광업소에 취업한 광부가족. 1982.1.26탄광생존 궐기대회 정선 시가 행진 1988.11.20고한사북 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가 정부의 석탄 감산정책에 항의하며 반대 투쟁궐기대회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19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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