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뉴스] 사실혼 관계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 가능…대법, 동성부부 권리 첫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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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에 준하는 경제공동체…동성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면 차별"
'동성혼' 인정은 아니지만…동성부부 경제적 권리 확장될지 주목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오른쪽)가 손을 잡고 밝은 표정으로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떠나고 있다.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게 됐다.

민법상 인정되지 않는 동성 부부지만 최소한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아래서는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라고 본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8일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 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민법 등 가족 법제와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특성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피고(건보공단)는 평등원칙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므로 그 차별 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에 "피부양자 제도의 본질에 입각하면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며 "동성 동반자도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해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자력이 없는 경우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의 이날 판결이 '동성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 준해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문제와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이날 대법원은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비롯해 3건의 판결을 선고했다. 2024.7.18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는 직장가입자와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피고가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피부양자 제도와 같이 동성 부부에게 허용되는 '경제적 권리'가 향후 확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피부양자 등록 배제가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했다는 다수 의견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김선수·노정희·김상환·이흥구·오경미·서경환·엄상필·신숙희 대법관이 동의했다.

반면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은 "배우자는 이성 간의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하는데, 동성 간의 결합에는 혼인 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리적 근거 없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남겼다.

대법원은 건보공단이 소씨에게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다고 통보하는 과정에 절차적 하자도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 의견에는 대법관 전원이 동의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없었던 동성 간 결합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소씨는 동성 반려자 김용민 씨와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배우자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소씨가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김씨가 그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두 사람이 동성이며 사실혼 관계에 있다고 설명했고, 건보공단 직원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성 사실혼 부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건보공단의 방침이 이들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그해 10월 이 같은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담당자의 업무 처리에 착오가 있었다"며 적용을 번복했다.

건보공단이 소씨를 다시 지역 가입자로 전환해 보험료를 부과했고, 소씨는 "실질적 혼인 관계인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며 2021년 2월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건보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같은 집단을 차별대우해 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년 5개월 만인 이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씨(왼쪽 두번째)와 김용민씨(오른쪽 두번째)가 재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7.18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날 동성 동반자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것은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급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민법상 인정되지 않는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가 누리는 권리의 일부라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최고 법원의 판단에 따라 우리 사회의 견고한 '이성애 중심' 구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물론, 동성 커플의 추가 권리 확대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동성혼이 인정되는 주춧돌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이 판례가 다른 사회보장제도로 확장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민연금법·고용보험법 등은 관련 규정에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소씨 부부의 경우 대상이 되기 어렵다.

반면 국민건강보험법의 경우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1976년 개정되면서 삭제됐다.

그런데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실혼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등 '행정적인 재량권'을 행사해 왔고, 그 행사 과정에서 이유 없는 차별을 했다는 것이 앞서 2심의 논리였다.

다만 공고했던 과거 판단에 최고 법원이 처음으로 균열을 일으킨 만큼 변화의 물결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사회보장제도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동성혼 합법화 논의도 한층 활성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종교계의 극심한 반대 등으로 사회적으로 동성혼은 물론 동성애를 공론장에 올리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강한 만큼, 그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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