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뉴스] [춘추칼럼]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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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한 주일 전에 만나 서로의 건재함을 확인한 지인이 죽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평소 지병이 없던 분이기에 그 부음은 큰 슬픔과 당혹감은 안겨주었다. 사망 원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죽은 당사자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겠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나는 황망한 마음에 한동안 일손을 놓고 망연히 앉아 있었다. 다시는 웃으며 말하는 그이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죽고 사는 일의 덧없음이 밀려든다. 무생물계 저편으로 사라졌으나 그이의 부재는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언젠가 점심식사 자리에서 그이는 시인이 된 계기를 유쾌하게 들려주었다. 그이는 과도와 잘 익은 사과 한 알을 보자기에 싸서 한국시의 전설인 원로를 찾아가 당돌하게 가르침을 청한다. 그걸 계기로 사제 간의 연을 맺고 배움을 잇다가 시인의 꿈을 이뤘다. 그이는 동료들의 신간 시집을 받아 읽은 뒤 반드시 재생 용지에 쓴 편지를 보내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나도 반듯한 글씨로 쓴 그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동료들의 창작을 격려하는 선의가 작동했을 테다. 그이는 착한 사람이지만 막상 그이에 대해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인간은 한 생명체로 태어나서 죽음이라는 한계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말하는 생물학적 실존을 잇는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란 놀라운 실존 사건을 단 한 번씩 겪는다. 죽음이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마주한 영구불변의 조건이다. 지구의 생명체 중에 자기 죽음을 투명하게 인식하는 건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인간이 죽음을 향하여 있는 존재라는 걸 기억하라는 뜻이다. 질병은 생물학적 존재로 엄연한 인간의 생태적 균형을 흔드는 일이다. 질병을 겪으면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저항을 조금씩 누그러뜨린다.

인간은 대뇌변연계를 갖게 되면서 장기 기억 처리가 가능해진다. 이것은 과거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긴 시간’을 뇌의 해마와 편도체에 저장하고 산다는 뜻이다. 긴 시간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니 인간은 이전보다 훨씬 더 똑똑해진다. 긴 시간은 기억의 양태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데, 그 안쪽에는 사랑과 이별, 명예와 비루함, 고통과 쾌락들이 마치 올실과 날실로 짠 카펫처럼 펼쳐진다. 우리 삶은 긴 시간이라는 카펫 위에 세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 카펫은 죽음과 함께 거둬져서 사라진다. 죽음이 사라짐이라면 그것은 우주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의 일부가 아닐까? 그것은 몸이라는 유기체의 구조를 버리고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일이 아닐까?

불면으로 깨어 있는 동안 나는 자주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우리 안에 작은 씨앗 같은 있다가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죽음은 계속 자란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때에 우리를 포획한다. 죽음은 나의 화두, 불가사의한 수수께끼였다. 나는 지금까지 죽음으로 인한 혼돈과 불안에서 멀리 달아나려고 했다. 죽음에서 도피하려는 욕구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내 무의식의 본성이 낳은 것일 테다. 누구도 살아 있는 동안 제 죽음을 겪을 수 없다. 내 대뇌피질에 오롯하게 있는 죽음에 대한 관념은 대체로 타인의 경험에서 유추된 결과물이다. 나는 아직 인간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했다.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젊었을 때 읽은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 명쾌한 전언에 따르면 무릇 죽음은 태어남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무에서 나와 유로 존재하다가 무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잠시 돌아가신 지 오래인 어머니도 떠오른다. 나는 형제들과 요양병원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는데,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둔 뒤 이불 아래로 드러난 어머니의 하얀 발을 잊을 수가 없다. 여동생들이 오열을 할 때 나는 어머니가 발이 시릴까 가만히 쓰다듬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통곡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한밤중 주방에서 혼자 오래 울었다. 내 어머니는 흙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안식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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