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뉴스] [확대경]기후 위기 대응 지금부터다
본문
이진용 강원대 연구처장

최근 몇 년 사이, 대한민국의 계절 변화 양상이 과거와 사뭇 달라지고 있다. 뚜렷했던 사계절은 점차 여름과 겨울이라는 두 극단의 계절로 수렴하고 있고, 제주도에 국한됐던 아열대성 기후는 남부지역을 지나 충청 이남까지 북상하고 있다. 기온, 강수, 바람 등 기본적인 기후요소의 변화가 뚜렷하며, 이에 따라 아열대 작물의 재배한계선도 과거보다 현저히 위로 올라오고 있다. 바나나, 망고 등의 열대 과일이 이제는 남해안뿐 아니라 내륙 일부 지역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반대로,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야 하는 사과, 배 등의 온대 작물은 점차 북쪽으로 밀려나고 있어 재배지의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처럼 지역의 농업과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변화는 단순한 날씨의 변덕이 아니다. 이는 전 지구적 차원의 구조적 문제, 즉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2024년 한 해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한반도 역시 이 예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겨울은 이례적인 고온과 저강수 현상이 반복됐고, 남부지역은 강풍까지 겹치며 초대형 산불이 잇따랐다. 이는 단지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재난이며, 그 영향력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강원도는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림으로 구성되어 있어, 기후 변화의 충격을 정면으로 받는 지역 중 하나다. 최근 몇 년간의 산불 발생 추이만 봐도 그 심각성이 분명해진다. 고온과 건조, 강풍이 결합하면 대형 산불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여기에 병해충의 급속한 확산, 생태계의 교란, 토양 침식과 오염, 수자원 부족 등 부가적인 문제가 함께 발생하고 있다. 산림 생태계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안전, 생활, 경제 기반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농업과 임업의 비중이 높은 강원도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재배 가능한 작물의 선택부터 파종과 수확 시기, 물 관리, 토양 보호 등 전 과정이 변화된 기후 조건에 맞춰 재설계돼야 한다. 단지 한두 해의 이상기후로 치부할 수 없으며, 구조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더 이상 개별 지역이나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복잡하게 얽힌 기후, 생태, 농업, 산림, 지질, 지역사회의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예측 가능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기후-생태계-환경 통합 모델을 개발하고, 정밀한 시나리오 기반의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를 통해 기후위기가 불러올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리스크를 사전에 분석하고, 효과적인 적응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강원도에서 마련한 이 모델은 향후 한반도 전체, 나아가 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이 될 수 있다.
강원도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자연조건과 연구 기반을 모두 갖춘 지역이다. 생물다양성과 산림의 풍부함, 기후 민감성, 그리고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이 보유한 전문 인력과 인프라가 이를 뒷받침한다. 강원대학교는 지질, 기후, 농업, 산림, 생태, 보건, 데이터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하며 기후위기 대응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국내외 유수의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기후위기 관련 국가연구소에 선정되기 위한 준비도 착실히 진행 중이다. 단순한 학문적 관심을 넘어 지역, 한반도 그리고 지구촌과 밀접하게 연결된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곳은 기후위기 대응의 거점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기후위기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음 세대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문제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강원도는 더 이상 상황을 관망하거나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지역 스스로 위기를 진단하고, 예측하고,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 중심에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이 있어야 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지역사회의 관심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전환은 먼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강원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