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뉴스] [강원포럼] 느리게 걷는 길, 고려의 숨결을 잇다-강원관광의 새로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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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운 강원특별자치도의원

2025년, ‘강원방문의 해’를 맞아 강원특별자치도는 관광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느리게 걷는 여행’이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치유하는 여정으로 진화하고 있다. 강원도 역시 자연을 넘어서, 고유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콘텐츠로 한층 깊이 있는 관광자원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강원의 고려 유산을 잇는 ‘느리게 걷는 길’ 조성사업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걷기 코스를 넘어, 고려의 정신과 강원의 정체성을 체험하는 새로운 관광 형식이다.

강원은 고려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역사적 무대이다. 철원은 고려의 출발점이었으며, 삼척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유배되어 생을 마감한 곳이다. 이 외에도 원주 법천사지, 강릉 객사터, 홍천 팔봉산성, 철원 도피안사 등 고려의 정치, 종교, 군사적 흔적이 강원 곳곳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러한 유산은 조명되지 못한 채, 자연 중심의 관광 위주로 소비돼 왔다. 이런 유적을 도보 중심의 관광도로로 연결하고, 각 구간마다 ‘느리게 걷기’ 콘셉트를 적용한다면 강원만의 독창적인 관광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단절된 유산을 잇고, 흩어진 기억을 모아 하나의 ‘길’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 길은 트레킹 코스이면서 지리적 연결을 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문화적 깊이를 지닌 관광자원이 된다.

‘느리게 걷는 길’은 여러 가치를 지닌다. 첫째, 역사적 서사를 따라가는 ‘스토리텔링형 관광’이다. 걷는 구간마다 고려 인물, 사건, 철학을 풀어내는 전시, 체험, 이야기 콘텐츠를 구성해 걷는 이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한다.

둘째, 지역경제와 연결되는 ‘분산형 관광’이다. 대형 관광지에 집중된 수요를 분산시켜, 작은 마을과 전통시장, 지역 식당과 로컬 숙소에 자연스럽게 소비가 발생한다. 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로 직결되며, 공동체와 상생하는 관광 모델로 이어진다.

셋째, 환경과 건강을 고려한 ‘지속가능 관광’이다. 도보 중심의 이동은 탄소배출을 줄이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접촉을 가능케 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도 자연을 느끼는 여행, 그 안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여정이 되는 것이다.

넷째, 정신적 치유와 사색의 공간으로서 ‘느리게 걷는 길’은 고려의 충효 사상과 개방의 철학을 소재로 해, 현대인에게 심리적 안식처를 제공하는 ‘명상형 관광’이다. 빠르게 소모되는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길’로서 가치를 지닌다.

강원은 이미 ‘운탄고도 1330’, ‘네이처로드’, ‘샷건 트레킹’ 등을 통해 걷기 여행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강릉 바우길, 인제 소양강둘레길 등은 지역 특성을 살린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고려 유산을 연결하는 새로운 테마형 걷기 콘텐츠를 도입한다면, 중복 없이 차별화된 ‘역사문화 트레킹’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또, 동해중부선 개통 등 교통 인프라 확충으로 접근성이 개선된 지금이 바로 ‘강원형 느리게 걷는 길’ 조성의 적기다. 여기에 지역 주민 참여형 콘텐츠, 로컬푸드 연계 프로그램, 예약제 도입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운영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관광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기억과 감정, 사색과 울림을 남기는 여정이 돼야 한다. ‘느리게 걷는 길, 고려의 숨결을 잇다’는 강원의 역사적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담아낸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이다. 빠름의 시대에 역행하는 느린 길 위에서, 고려의 정신을 되새기고, 지역의 숨결을 느끼며, 삶의 방향을 되묻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강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이며, ‘강원방문의 해’는 그 이야기를 걷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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