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내가 강경 보수? 짜증이 난다" 이문열을 싸우게 만드는 것들 [이문열, 시대를 쓰다] - 전국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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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9 05:00 9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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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중앙플러스 회고록 연재] ‘이문열, 시대를 쓰다’

소설가 이문열이 더중앙플러스를 통해 회고록 ‘이문열, 시대를 쓰다’를 연재한다. 그의 인생 회고록인 동시에 그의 육성으로 듣는 시대의 회고록이기도 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이문열의 삶과 문학에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올해 일흔여섯인 그는 1948년에 경북 영양의 양반가 후손으로 태어났다. 일본 유학파에 남로당원이었던 부친 이원철(1999년 작고)씨가 한국전쟁 기간 월북해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연좌제의 굴레를 피해 작가가 된 그는 1980~90년대 최고 인기 작가였다. 사실상 등단작인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1979)이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으며 ‘이문열 신드롬’을 일으켰다. 치밀한 리얼리즘(신춘문예 등단 중편 ‘새하곡’), 초월적 교양주의(『사람의 아들』), 분단으로 결딴난 현대사(『영웅시대』), 화려한 의고체 문장(『황제를 위하여』)에 이르기까지, 감각적인 수법과 묵직한 주제의 신작에 독자는 열광했다. 영광 뒤에는 상처도 있었다. 월북한 부친의 내면을 허무주의로 채색한 장편 『영웅시대』(1984)가 진보 진영의 비난을 불렀다.

“다수가 항상 선은 아니다…획일적으로 개인 재단 안돼”

산문집 제목인 ‘시대와의 불화’(1992)라는 말이 그를 따라다녔다. 2001년 DJ(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칼럼으로 비판하면서 ‘책 장례식’이라는 문화 참사를 겪었다. 페미니즘과 갈등했고, 보수 정당 공천 심사에도 참여해 논란을 빚었다. 그래도 그는 세상일에 보수적인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문열 작가가 문학과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회고록 ‘이문열, 시대를 쓰다’는 25일부터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를 통해 주 1회, 30주가량 연재된다. 연재 전 인터뷰에서 그는 “글 한 줄 쓰지 못한 지 3년쯤 됐다”면서 “지어내지 않은 진솔한 인생 회고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 회고록인 동시에 그의 육성을 통해 듣는 시대의 회고록이기도 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람의 아들』

지금까지 수없이 받은 질문일 텐데, 어떻게 작가가 됐나.

“등단 전 젊었을 때는 가능하면 작가가 되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성리학 전통이 뿌리 깊은 고향 문중에서는 작가는 그리 높게 쳐주지 않는다. 오래 살다 보니 생각도, 기억도 바뀌는 것 같은데, 결국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발적이지 않은 원인이 있었다는 게 최종적인 느낌이다. 작가가 된 게 아니고 되어져 버린 것 같다. 되고 보니 꼭 거부할 일은 아니었다. 원래 내가 할 일인데 잊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작가가 되어져 버리게 한 요인은.

“말을 운용하고 글을 쓰려면 언어 훈련이 필요한데, 내 경우 정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중·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마쳤고, 대학교(서울대 국어교육과)도 세 학기만 다녔으니 학문적으로는 붕 떠버린 혼처럼 돼버렸다. 그 빈 시간을 메워준 게 독서였다. 다행히 이래저래 책이 흔한 환경에서 자랐다. 처음에는 별 목적 없이 읽었는데 고등학교 무렵부터 내 딴에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상당히 정선해서 읽었던 것 같다. 대학 입학할 무렵에는 1만 권가량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지냈던 거로 알고 있다.

“밀양에서 국민학교 다닐 때 석 달 정도였다. 어머니가 권사로 있는 교회에 딸린 고아원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처럼 아버지가 월북한 불온한 가족에게 교회는 신기한 부적 같은 존재였다. 좌익에게 엄혹하던 시절 아닌가. 수사관들이 따라붙었다가도 목사님이 뭐라고 하면 가버렸다. 당시 어머니는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건 교회밖에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열심히 다녔다. 성경 암송대회에 나가 1등 한 적도 있다.”

『변경』

(역설적으로) 출세작 『사람의 아들』은 기독교 해체 소설 아닌가.

“평생 성경을 아는 척하며 살았는데, 뒤늦게 군대 가기 전 구약을 꼼꼼히 읽었다. 참 대단한 이야기다 싶더라. 당시는 소설을 알 때라서 초고를 썼는데, 평생 한 번 쓰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에 남은 약간의 믿음과 자라면서 생긴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충돌했다. 기독교에 대한 반동의 뜻은 있다. 헬레니즘을 반동의 구실로 삼아 싸워보려 한 것 같다.”

무슨 뜻인가.

“기독교의 바탕인 헤브라이즘(유대교 전통)은 헬레니즘(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이라는 거대한 문명체계를 뚫고 성장했다. 나중에 기독교가 번성하자 헬레니즘을 억압했다. 그에 대한 역해방이 르네상스였다. 그런 역사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려 했다는 뜻이다.”

작가로서 보람은 어떤 건가.

“속되게 얘기하면 책이 많이 팔려 경제적으로 도움 되고, 밖에 나가면 아무개라고 알아보는 상태 아니겠나(웃음). ‘내 방식으로 어떤 위대한 영혼의 이야기를 잘 써내면 굉장히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쁘지 않은 일거리를 찾았다는 기분이었다.”

큰 사랑을 받았지만, 비난도 많이 받았다. 과도하게 비판받았다고 생각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내 작품이나 칼럼을 읽고 화내거나 공격적이면 대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의도 없는 글이 있겠나.”

논란이 예상되는 글을 굳이 발표했다는 건가.

“승산 없고 결말 안 나고 요란스럽기만 한 싸움을 왜 했나 싶다. 글을 쓰다 보면 완벽하게 못 쓰고 슬쩍 넘어가는 대목이 생기는데 그걸 참 기광스럽게 찾아내서 욕하면 기분 나쁘지.”

페미니즘 진영과도 불편했다.

“1997년에 낸 소설 『선택』에 반발해 ‘이프(if)’라는 페미니즘 잡지까지 생겼다.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악의적으로 문제 삼았다고 생각한다.”

2001년에는 이른바 ‘책 장례식’까지 벌어졌다.

“지금도 왜 그렇게까지 됐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부산에서 사진관을 운영한다는 주동자를 그 일 있기 며칠 전에 만났는데, 내가 시답지 않게 대한다고 느꼈는지 무척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당시 DJ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한 내 조선일보 칼럼(‘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에 반발해 내 책을 반환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길래 동아일보에 후속 칼럼(‘홍위병을 떠올리며’)을 썼던 게 발단이라는데, 그런 이데올로기 문제보다 지역색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전라도 출신 아니냐’고 캐묻더라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퍼졌다.”

세무조사 비판 칼럼은 왜 쓰게 됐나.

“어느 날 TV를 켜니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를 방송 3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생중계하고 있었다. 언론사도 당연히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몰아가는 방식이 나쁘다고 봤다.”

이문열 연보

2004년 한나라당 총선 공천 심사에도 참여했는데.

“관상가도 아니고, 공천 희망자들의 정치 경력이나 식견을 따지는 역할을 했다. 원래 할 일이 아닌데 당시 집안 손자뻘인 이재오 의원이 부추겨서 한 일이다.”

공교롭게 요즘 공천 철이다.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고,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모르겠다.”

강경 보수 이미지가 강하다.

“세상 진행 원리는, 아무것도 없던 데서 새로운 게 생겨나지 않는다. 있던 걸 개량하고, 써오던 건 세월 지나 낡는다. 지나간 걸 전부 죄악시하는 진보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애꿎은 두 아이를 데려다가 서로 따귀를 때리게 하면 감정이 생겨나는 것처럼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다가 내 감정이 격앙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보수의 가치를 잊지 말자’는 주장을 했을 뿐이다. 그걸 두고 나를 공격하고 싶은 사람들이 ‘보수를 지나치게 옹호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