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사옥 전경. 뉴스1

현대차가 1조원 규모의 자기주식(자사주)을 매입하고, 주주환원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에 나선다. 정부가 올해 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센티브 제공안을 발표한 뒤, 기업 밸류업에 참여하는 대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466만6000주(보통주 390만7000주·기타주 75만9000주)를 매입하는 안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현대차가 취득하려는 주식은 총 발행주식의 1.7%로 1조원 규모다. 약 7000억원 규모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3000억원 규모는 임직원 보상 등에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다.

자사주 매입은 오는 28일부터 3개월 내에 위탁기관인 현대차증권을 통해 장내 매입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자본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고, 주당순이익이 높아져 주가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2024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향후 3년간 4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일부 소각하는 등 밸류업 추진 계획을 공개했는데, 이날 공시한 내용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이밖에 분기배당금을 1주당 2000원→2500원으로 늘리며 연간 주당 최소 배당금을 1만원으로 제시했고, 기존 배당 성향 목표는 총주주환원율(TSR) 25%에서 35%로 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TSR은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고려했을 때, 주주들이 이익을 얻게 되는 비율을 의미한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SK하이닉스도 이날 내년부터 2027년까지 3년 동안 시행할 새로운 주주환원 정책과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다. 누적 잉여현금흐름(FCF)의 50%를 주주환원의 재원으로 한다는 기존 정책은 유지하되, 주당 연간 고정배당금을 1200원→1500원으로 25% 상향한다.

SK하이닉스는 기업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설비투자 원칙’을 내놓으며 연간 투자 규모를 매출액 대비 평균 30%대 중반 수준으로 구체화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고정배당을 높이면서 앞으로 총 현금 배당액은 연간 1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본다”며 “회사의 성장세에 걸맞은 주주환원과,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지켜가기 위한 정책을 실행할 것”이라 밝혔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최근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라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는 대기업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기업들의 자발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과 주주가치 존중 문화를 확산시켜 한국 증시를 도약시키겠다는 취지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도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어 향후 1년간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기로 의결했다. 이 중에서 3조원어치는 3개월 내에 사들여 전량 소각한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건 2017년(9조3000억원) 이후 7년 만이다.

셀트리온은 지난 21일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추가 매입한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의 자사주 매입은 올해 다섯 번째로, 지난 3·4·6월에 각각 750억원을 지난달엔 약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네이버도 지난 9월 특별 주주환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밝혔다. 네이버는 지난달 2일부터 내달 28일까지 약 4000억원을 투입해 총 발행 주식의 약 1.5% 규모인 234만7500주를 매입해 내달 31일 전량 소각할 방침이다.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움직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 초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했던 현대모비스는 ‘2024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현재 20% 수준인 TSR을 향후 3년간 30%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기아도 지난 1~3월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한 바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 시장에서 자사주 취득 신고를 한 종목은 지난 21일 기준 186개로, 매입 계획 규모는 11조3029억원에 이른다. 연말까지 한 달여 남은 시점에서 자사주 취득 신고 종목이 이미 지난해(159개 기업 6조8213억)보다 27개 늘었고, 매입 계획 규모도 4조4800억여원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