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60년전 상파울루에서 꽃핀 한국미술…최초 국제전 심사위원 김병기, 특별전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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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3주기 기념전: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 전시 전경. 이응노(앞줄)와 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거나 비슷한 시기와 경향의 작품을 모았다. 사진 가나아트센터

김병기 상파울루에서 오다. 코리아에 또 '명예상'이 이응노 씨 작품에.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국제심사원에 끼다(김병기). 환기 작품이 상파울루 비엔날레 미술관에 수장되다." (1965년 9월 10일 김향안의 일기)

담담하게 적은 넉 줄에 감격이 묻어난다.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이 60년 전 뉴욕에서 남긴 일기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비엔날레는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무대에 본격 진출하는 전환점이다. 한국은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첫 참가, 김환기가 명예상을 받았다. 한국 미술가의 첫 국제전 수상이다. 이어 1965년 김병기(1916~2022)가 한국전 커미셔너로 이응노ㆍ김종영ㆍ이세득ㆍ권옥연ㆍ정창섭ㆍ김창열ㆍ박서보 등 30대~50대 미술가 7명을 선정했다. 7회 때 명예상을 받은 김환기의 특별전도 성사시켰다. 김병기는 당시 한국전 도록을 이렇게 시작했다.

김병기 3주기 맞아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관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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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의 현역 화가' 김병기의 생전 모습. 사진 가나아트센터

서울에서 상파울루는 아직도 멀다. 우리는 많은 고충을 무릅쓰고 두 번째로 일곱 작가의 작품 21점을 보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침묵의 소리는 두 지역 사이의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또한 서로의 전통과 풍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이 당면하고 있는 인간 감정의 '악추얼(actual)'한 호소라는 의미에서 능히 어떤 공감을 자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관 브로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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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전에 출품한 '에코-1'.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가나아트센터

김병기는 현지에서 심사위원으로 뽑혔다. 국제전 최초의 한국인 심사위원이다. 이 전시에서 이응노가 명예상을 받았다. 1963년 김환기에 이은 경사다. 서울 평창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김병기의 3주기를 맞아 그가 커미셔너를 맡았던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재현하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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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1'의 뒷면.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다는 내용과 당시 김환기의 뉴욕 집 주소가 적혀 있다. 사진 가나아트센터

당시 도록과 브로슈어에 흑백 인쇄된 일부 작품 이미지, 제목과 크기를 토대로 출품작을 수소문해 김환기ㆍ김창열ㆍ이응노의 전시작 5점을 찾아냈다. 이외에 참여 작가들의 1960년대 초ㆍ중반 작업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 등 총 45점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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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전에 출품한 김환기의 '에코-9'(왼쪽부터), '에코-3', '에코-1'. 권근영 기자

14점을 출품한 김환기는 특별전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작품을 인수하지 못한다. 생활고로 운송비를 내지 못해 그대로 경매에 부쳐지는 수모를 겪었다. 후에 미국의 지인이 한꺼번에 매입해 수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에는 이때의 14점 중 '에코(Echo)' 시리즈 3점이 나왔다. 이 중 '에코-1' 뒷면에는 비엔날레에 출품했음을 알려주는 원본 태그가 남아 있다. 1963년 비엔날레에 두꺼운 마티에르로 그린 달과 산을 내놓았던 김환기는 뉴욕에 체류하면서 스타일을 바꿨다. 화면은 키우고 표면은 얇게 그리기 시작했다. 청회색 바탕에 점과 선, 때로는 십자구도를 실험했다. ‘에코’ 시리즈는 전면점화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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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김창열의 '제사 Y-9'. 1970년대 '물방울' 시리즈로 가기 전의 추상화다. ⓒ김창열. 사진 가나아트센터

김창열이 내놓은 '제사' 연작 3점 중 '제사 Y-9'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훗날 김창열의 대표작이 된 '물방울' 시리즈가 나오기 전 단계 화풍을 볼 수 있다. 깎은 듯 깎지 않은 '불각(不刻)'을 지향하는 조각가 김종영의 추상 목조 '작품 65-1'은 비엔날레 전시 후 리움미술관에 소장됐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소장품전에서 볼 수 있다. 가나아트 전시에는 같은 시리즈로 추정되는 '작품 65-2'가 나왔다. 이 두 점은 1961~63년 숭례문 보수 공사 때 나온 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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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현대미술 소장품전 전경. 오른쪽에서 세 번째 목조각은 김종영이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65-1'. ⓒ김종영미술관. 사진 리움미술관

비엔날레 한국관 브로슈어에 소개된 이응노의 1960년작 '구성(Compositon)'도 선을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어수선한 시대였다. 국산품 애용을 선양하며 외국 미술재료 수입을 금지했지만 국내 회사가 양질의 물감을 만들지 못하던 때였다. 1960년대 유화가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며 전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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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관 브로슈어에 수록된 이응노의 '구성'(1960). 이응노는 명예상을 받았다. ⓒ이응노. 사진 가나아트센터

김병기는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 유화 1세대 김찬영. 김병기는 이중섭과 평양초등학교 동기였다. 함께 도쿄문화학원에서 미술을 배웠다. 해방 후 예술 행정가로 한국 미술의 기틀을 세운 김병기는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미국에 눌러앉는다. 뉴욕 북부 새러토가에서 건축 도면을 그리는 제도사로 일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의 반추상화에는 자 대고 도면 그리듯 날카로운 직선들이 섬광처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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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메타포, 2018,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 ⓒ김병기. 사진 가나아트센터

한국 화단에서는 잊힐 무렵인 1986년 귀국전을 열었고, 이어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100살의 현역 화가’로 2017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103세 되던 2019년까지 개인전을 열었다. 106세 되던 2022년, 잠자던 중 영면에 들었다. 생전에 그가 돌아본 자신의 화단 인생은 이랬다.

나는 추상을 통과하고, 오브제를 통과하고, 다시 수공업적이고 원초적인 선(線)으로 돌아왔다. 다 통과한 뒤의 종합적인 단계가 지금의 내 세계다. 예술에 있어 ‘1+1’의 답은 2가 아니다. 3도 되고 5도 되는, 모든 게 다 되는 세계다.”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점으로 중요하지만, 서울에서 상파울루는 여전히 멀다. 22일에는 전시와 연계한 학술 세미나가 열린다. 전시는 4월 20일까지, 성인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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