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민감국가’ 두달 몰랐다…‘둔감정부’ 깜깜 정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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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을 에너지 안보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민감국가에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다음 달 15일 이에 따른 관련 조치가 실제 발효하기 전 한국을 제외하도록 총력전에 나섰지만,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못한 채 상당 시간을 흘려보낸 뒤라 설득이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중앙일보의 관련 질의에 한국이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에 포함됐다고 확인했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 1월 초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에 추가했다”면서다. 에너지부는 “현재 한국과의 양자 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다”면서도 해당 국가 국민의 “방문과 협력이 필요할 경우 사전에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밝혔다.

실제 민감국가 국적자는 에너지부 및 산하 17개 국립연구소 등과 공동 연구 등을 진행할 때 보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된다. 원자력·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 기술 협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해당 연구소엔 ‘방문 6주 전 사전 승인’이 필요한 민감국가에 한국이 포함됐다고 이미 공지됐다. 정부는 이런 결정이 동맹을 중시한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진 걸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결정이 1월 초라면 이미 지난해 상당 기간 검토 작업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큰데, 관련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이 와중에 각 부처 간 온도 차도 감지된다. 에너지부의 카운터파트인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우리나라가 미 국책연구소와 하는 과제가 많지 않아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감국가=미 에너지부는 국가 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 우려가 있어 특별한 정책상 고려가 필요한 국가를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올린다. ▶테러 지원 국가(북한·이란·시리아 등) ▶위험 국가(중국·러시아 등) ▶기타 지정국가 등으로 분류된다.

‘민감국가’ 왜 됐나…원전기술 마찰 탓? 한국 핵무장론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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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

연구 접근권 문제와 직결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당국자는 “현재 진행 중인 과학기술 협력은 물론, 신규 사업에도 큰 차질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두 달 넘게 민감국가로 분류된 사실조차 몰랐던 정부의 이런 반응은 안일한 것으로 비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16일 KBS에 출연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와 올 한 해 약 120억원 규모의 많은 공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하며 신뢰 손상을 우려했다.

실제 대미 외교를 총괄하는 외교부는 사안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류다. 실질적 피해의 정도도 문제지만,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에 올린 사실 자체가 동맹 전체에 미칠 부정적 여파를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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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정부는 일단 발효 전 약 한 달 동안 각급에서 대미 설득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당장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번 주 중 방미해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과 양자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전부터 추진된 일정이지만, 민감국가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명확한 원인 파악은 아직이다. 추측만 무성한 가운데 미 측이 다양한 채널을 통한 한국 측의 관련 문의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한전)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대형 원전 원천기술 침해 문제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 휘말린 게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의 독자 원전 수출이 미국의 원천기술 유출에 해당한다며 크게 반발해 왔다. 해당 분쟁은 지난 1월 17일 종결 합의를 봤는데, 민감국가 지정은 그 직전이다.

한국에서 공공연히 자체 핵무장 논의가 나오는 게 미국의 핵확산 우려에 불을 붙였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6월 북·러가 사실상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맺으면서 국내에서 핵무장론이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해당 결정이 한·미 간 조선업이나 반도체, 에너지 협력 등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미래 지향적 측면에서 이를 재고해 달라는 논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동맹에 악재이지만, 오히려 미 측이 이를 협상카드로 활용할 여지를 줄 수 있는 만큼 너무 피해를 과장하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며 “윈윈이 가능한 미래 협력에 방점을 두고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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