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정보] 양구군 양구읍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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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군 양구읍의 문화재에는 어떤것이 인나 좀 알려주시와요~

꼭 알려주세요. 부탁할께요~~제발이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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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윤현님의 댓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의 문화재)

 

1.양구 개느삼 자생지

종 목  천연기념물  제372호  면 적 13,200㎡(지정구역) 지 정 일 1992.12.23 소 재 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한전리 산54, 동면 임당리 산148,149 

개느삼은 평안남도, 함경남도, 강원도 양구 이북의 추운 지방에 분포한다. 줄기가 굵으며 키는 1m 정도로 자라고 넓은 잎은 봄에 돋았다가 가을에 떨어진다. 꽃은 황금색으로 이른 봄에 피며 줄기의 끝부분이 약간 꼬부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개느삼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일 뿐만 아니라, 양구 비봉공원 대암산 기슭에 자리잡은 이곳 양구의 개느삼 자생지는 개느삼이 자랄 수 있는 남쪽한계선이 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2.양구 심곡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및 복장유물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지 정 일 1999.02.20 소 재 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송청리 11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심곡사에 있는 나무로 만든 불상과 그 안에서 나온 유물들이다.

 

이 불상은 조선 후기 불교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같이 나온 유물을 통해 조선 숙종 42년(1716)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발견된 글을 통해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어 당시의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3.고대리 지석묘군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9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금강산로 439-52 (하리 508) 양구선사박물관  시 대 청동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고대리에 있는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파로호수몰지역에서 옮겨 1기는 현지에 복원·보존하고, 1기는 선사박물관으로 이전복원하였는데, 선사박물관으로 이전한 고인돌은 덮개돌의 길이가 3.7m, 너비가 3.5m이며, 높이 1.63m의 받침돌이 2개 남아있다.

 

비교적 큰 고인돌로 돌칼, 돌화살촉 등 석기류가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4.양구 공수리 지석묘군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9호

지 정 일 1989.05.01 소 재 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금강산로 439-52 (하리 508) 양구선사박물관  시 대 청동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이 고인돌군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공수리 ‘주막거리’마을 앞 서천의 충적대지 위에 일렬로 분포되어 있으며, 모두 11기로 탁자식 5기, 바둑판식 6기이다. 강원대학교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며, 발견된 10기 중 파괴정도가 심한 3기를 1987년 1차 발굴하였다. 그 후 1992년 실시한 2차 발굴조사 때 새로 1기가 발견되었다. 덮개돌의 크기는 가장 큰 것이 길이 4.48m, 너비 2.28m이고, 가장 작은 것은 길이 1.43m, 너비 1.19m이다.

 

이 고인돌군은 파로호의 수위에 따라 지속적으로 훼손되어 왔기 때문에 현재는 양구선사박물관 야외부지로 이전하였다.

 

5.양구 고대리 2지구 지석묘군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지 정 일 1989.05.01 소 재 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금강산로 439-52 (하리 508) 양구선사박물관  시 대 청동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고대리에는 2곳에 고인돌이 무리지어 있는데, 그 중 한 곳인 ‘샛말’에는 모두 6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 가운데 1호와 2호는 탁자식이고 나머지 4기는 바둑판식 고인돌이며, 규모는 길이가 큰 것이 2.5m, 작은 것이 1.4m 정도이다.

 

1987년 경희대 발굴조사팀에 의하면 1호 고인돌이 탁자식인데 덮개돌 아래 받침돌이 있고 그 밑에서 다시 무덤방이 발견되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탁자식과 다른 형태이다. 이는 땅 속에 매장시설을 한 특이한 구조로 탁자식 고인돌의 새로운 유형이며, 앞으로 탁자식 고인돌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이 고인돌은 양구선사박물관 야외부지로 옮겨져 복원되어 있다.

 

6.양구향교

지정  비지정문화재 소 재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관공서로16번길 5-4 (상리 322) 시 대  조선시대

양구향교는 조선 태종 5년(1405)에 창건되어 옛 성현을 모시고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며 비봉산 영봉의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향교는 현 비봉 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해 있었으나, 1945년 광복과 함께 국토가 양단되어 유교사상은 침체되기 시작하였고 향교 유지가 곤란하였을 뿐 아니라 6.25 동란으로 소장된 문서와 문헌들이 불타 버렸다.

1955년 수복 후 뜻있는 유림들이 귀향하여, 초석과 깨진 그릇 등이 강변 또는 빈터에 널려 있어 애통히 여긴 나머지, 1963년 전 전교인 조순재가 유림들과 협의한 후, 향교 토지를 매각하여 현재의 자리에 대성전, 명륜당을 건립함으로써, 양구향교의 석존을 배향케 된 것이다.

향교에서는 지역 학생들에게 생활 예절, 한자 등을 교육함으로써 사회교육에도 이바지하고 이다.

 

 

7.팔효자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송청리 64-6 시 대  현대

효자각은 조선 헌종 때 당시의 양구군내 효자 8위를 모시기 위하여 양구읍 상리 243-2 지금의 장터 부근에 건립하고, 효행을 목판에 상세히 기록하여 후손이 보존 관리해 왔으나 일제 때 도시계획에 의해 철거되어 1993년도에 지금의 위치에 다시 건립하였다.

당시 행정 구역의 개편에 따라 회양군 수입면이 양구로 편입되면서 이 무엽이라는 효자 한분이 양구로 옮겨와 팔효자로 모시게 되었다. 그 이무엽 효자는 현재 평창 이씨 문중에서 군량리에 두 평 정도의 각을 지어 따로 제를 지내고 있다.

팔효자에 대한 효행기록은 당시 목판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6.25 동란 으로 효자각이 소실되어 없어지고 남아 있는 후손들도 전혀 문헌이나 자료를 소장하지 못하여 지금은 족보와 양구현지, 양구 군읍지에 그 일부만이 기록이 전해져내려오고 있다.

수복 후부터 효자각을 건립하지는 못했으나, 이해징 효자 후손인 이건홍씨 집에서 제사를 지내 왔으며, 현재는 양구읍 상5리에 거주하는 이건홍씨의 조카 이영하씨가 공동재산인 답 700여평을 경작하면서 매년 10월 중정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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