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군/정보] 횡성군 둔내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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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군 둔내면의 문화재좀 알려주세요...                 

내일까지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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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투자자님의 댓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의 문화재)

1.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82호

지 정 일  2003.01.18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 594번지 외

시 대  철기시대

이 유적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 소재한 둔내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그 주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횡성군의 동쪽 끝지역으로 횡성읍으로부터는 동북방 30㎞ 지점이다. 주거지는 가지구 3기, 나지구 5기 등 총 8기가 발견되었으나, 가지구에서는 터파기 공사로 파손된 상태였고, 나지구에서도 도로 및 사유지로 연결되어 온전히 발굴된 것은 나-2호주거지 1기에 불과하였다. 한편 보존상태가 양호한 여자형 집자리는 당시 가옥의 구조와 변천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 등 토기류를 비롯하여 낫 · 도자 · 못  ·철편 등 철제품, 석촉·숫돌 등 석제품, 장신구인 옥, 탄화곡물 등이 출토되었다.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기원후 1∼2세기 경의 유적으로, 우리나라 초기철기시대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초기철기시대의 문화교류 및 전파경로 등을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2.태기산성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경강로 6013

시 대  삼국시대

청일면 신대리의 해발 750~1,000m 정도 되는 고지에 축성된 산성이다. 진한의 태기왕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게 쫓겨 덕고산(태기산)에 들어와 성을 쌓고 방어했다고 구전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횡성현 동북쪽으로 49리 50보 되는 곳에 있으며, 둘레는 568보 5척이다. 시냇물이 한 곳에 있는데 장류하여 마르지 않는다. 또 군창 5간과 관청 2간이 있다’고 하여, 조선 초기에는 이 산성이 방위시설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축의 둘레는 3,653척이다. 안에는 우물 한 곳이 있으며 군창이 있으나 지금은 반쯤 퇴락하였다’고 하여 점차 산성으로의 기능이 상실되어져 조선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에서는 ‘금폐’라고 하였다. 이러한 정황에서 보면, 현재의 무너진 산성은 조선중기 이후 퇴락된 것이 그대로 방치해 온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태기산성(일명 덕고산성)은 종전의 기록에 3,653척이었다고 하였으나, 실측에 의한 총연장은 1,840m이다. 산성 안에는 비교적 큰 능선 하나를 끼고 있고, 수량은 많지 않으나 한줄기의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또 내부의 비교적 평탄한 곳에서는 석축의 흔적과 다듬은 석재가 발견되어 세종실록 지리지나 기타의 기록에 나오는 군창,관청지로 추정되고 있다. 동남쪽의 망대지로 보이는 곳부터 동문 방향의 석축은 대체로 무너져 내렸으나, 남문지 주변은 비교적 축성된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이 산성의 축성 폭은 대체로 100~110㎝이며, 높이는 급경사나 절벽지형을 끼고 있어서 적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은 낮게 축성하고, 완경사 지역과 적의 접근이 용이한 곳은 높고 견고하게 쌓았다.

3.화동리 효자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

시 대  조선시대

순흥 안씨 안광근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총애를 받아 오던 중 부친이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끝내 사망하자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루고 6km 가넘는 묘소에 3년을 하루같이 아침저녁으로 선묘하는 등 자식의 도리를 다함으로써 이 행적이 널리 알려져 1833년 고종 20년에 조정에서 효자정문을 내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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