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정보] 삼척시 정상동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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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좀 알려주세요!!!
되도록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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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너 나 사랑하냐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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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음 너무 부담스럽게 하지는 마시고 그냥 여자가 사랑받고있다는 느낌만 계속 주세요여자는 많은거 바라지 않아요. 그것만 느껴도 여자도 만족할겁니다너무 큰 이벤트 같은걸로 좋게하시려 하지않으셔도 기본만 잘지켜도 충분합니다만약 지금 밀당을 하시려고 한다면 잘못된 밀당은 절대 하지마세요 ㅎㅎ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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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세뇌시키세요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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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너에겐왠지벽이느껴져 ~완벽피아노어디없나 ~ 너만보면 미칠거 같아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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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노고로시 추천드려요요거트랑 미숫가루 진짜 맛있어요 흐헝절대 카페 없을 것 같은 곳에 있어요!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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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한국에 사는친척들이 걱정되네요~ㅠㅠ. 우리 한민족은 이 재난을 이겨내리라고 믿는수 밖에 없군요~ㅠㅠ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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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큰일이군요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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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어떡해요 진짜 ㅠㅠ....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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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필건축님의 댓글
(삼척시 정상동의 문화재)
삼척 척주동해비 및 평수토찬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허목길 13-9 (정상동 82-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현종 2년(1661) 때 삼척 부사를 지낸 허목(1595∼1682) 선생과 관련이 있는 2기의 비이다. 허목 선생은 성리학을 발전시켰으며 제자백가와 경서연구에 전념하였고 특히 예학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다.
척주동해비는 정상리 육향산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정라진앞 만리도에 세워 놓았던 것을 비가 파손되자 숙종 36년(1710)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 지방은 파도가 심하여 바닷물이 마을까지 올라오고 홍수가 지면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신비한 뜻이 담긴 글을 손수 짓고 독특한 필체로 비문을 새겨 이 비를 세웠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가 잠잠해지고 그후로 주민들의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문장이 신비하면서 물리치는 능력도 지녔다 하여 ‘퇴조비’라고도 불리우며, 전서체에서 동방의 제1인자로 불리우는 허목 선생의 기묘한 서체로 인해 더욱 유명한 비이다.
평수토찬비는 척주동해비와 조금 떨어져 있으며 동해비와 같은 의미로 세운 것이다. 중국 형산의 우제가 쓴 전자비 중 일부를 허목이 목판에 새겨 보관하던 것을, 고종 광무 8년(1904) 왕의 명에 의해 칙사 강홍대 ·삼척군수 정운석 등이 돌에 그대로 새겨 넣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