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정보] 삼척시 정상동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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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좀 알려주세요!!!
되도록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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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사람은 다 인연이 있으니까요 그 중에 자기 인연이 있을 수 있죠 ㅎㅎ기분이 나쁘다...면 뭐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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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우와 갓물주...그런 여자들 다 차버리세요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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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ㅎㅎ 부럽습니다!!얼마나 큰 건물인데 여자들이 그럴까요~~~ 혼자 생각이신건 아닌지^^;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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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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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생판 모르는 여자가 접근해오는거면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음... 사실 본인 걸 다 숨기고 연애를 해도 그것에 속임당했다는 여자도 있을테고 뭐 처음부터 오픈할거면 비슷하게 돈있는 집안이 제일이겠죠?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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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한국에 사는친척들이 걱정되네요~ㅠㅠ. 우리 한민족은 이 재난을 이겨내리라고 믿는수 밖에 없군요~ㅠㅠ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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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큰일이군요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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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어떡해요 진짜 ㅠㅠ....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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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한국에 사는친척들이 걱정되네요~ㅠㅠ. 우리 한민족은 이 재난을 이겨내리라고 믿는수 밖에 없군요~ㅠㅠ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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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큰일이군요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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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어떡해요 진짜 ㅠㅠ....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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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필건축님의 댓글
(삼척시 정상동의 문화재)
삼척 척주동해비 및 평수토찬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허목길 13-9 (정상동 82-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현종 2년(1661) 때 삼척 부사를 지낸 허목(1595∼1682) 선생과 관련이 있는 2기의 비이다. 허목 선생은 성리학을 발전시켰으며 제자백가와 경서연구에 전념하였고 특히 예학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다.
척주동해비는 정상리 육향산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정라진앞 만리도에 세워 놓았던 것을 비가 파손되자 숙종 36년(1710)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 지방은 파도가 심하여 바닷물이 마을까지 올라오고 홍수가 지면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신비한 뜻이 담긴 글을 손수 짓고 독특한 필체로 비문을 새겨 이 비를 세웠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가 잠잠해지고 그후로 주민들의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문장이 신비하면서 물리치는 능력도 지녔다 하여 ‘퇴조비’라고도 불리우며, 전서체에서 동방의 제1인자로 불리우는 허목 선생의 기묘한 서체로 인해 더욱 유명한 비이다.
평수토찬비는 척주동해비와 조금 떨어져 있으며 동해비와 같은 의미로 세운 것이다. 중국 형산의 우제가 쓴 전자비 중 일부를 허목이 목판에 새겨 보관하던 것을, 고종 광무 8년(1904) 왕의 명에 의해 칙사 강홍대 ·삼척군수 정운석 등이 돌에 그대로 새겨 넣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