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군/정보] 횡성군 안흥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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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의 문화재를 알려 주세요!

특징이랑 자랑거리 자세하게 써주시고요,빨리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내로 쓰시면 내공 보장할게요 장난,욕,비방 등 어이없는 답변은 신고 들어갑니다.

참고로 추가내공이 200이예요 잘 써주시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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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장난감님의 댓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는 지정 문화재가 1점도 없습니다. 그래서 강원도 횡성군에 있는 문화재를 모두 올려드립니다.

(강원도 횡성군의 문화재)

1.횡성 압곡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

종 목  천연기념물 제248호

면 적  23,100㎡

지 정 일  1973.10.05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 산186-2

백로는 열대에서 온대에 이르는 지역에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번식한다. 하천·호수·간석지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데, 주로 소나무·은행나무에서 집단 번식한다. 왜가리는 우리나라의 백로과 조류 중에서 제일 큰 새로서, 우리나라 전지역에 걸쳐 번식하는 여름새이다. 일부 적은 무리는 남쪽지방과 섬지방에서 텃새가 되어 겨울을 지낸다. 논·하천·해안·간석지에서 살며 개구리, 물고기, 뱀 등을 잡아 먹는다. 횡성 압곡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는 마을 서쪽에 있는 영산과 북쪽의 압산에 있다. 영산의 정상에는 200∼300년 된 소나무를 중심으로 숲이 우거져 있으며, 압산에는 산등성이에 약 90년 된 소나무 1그루와 그 밖에 떡갈나무, 상수리나무가 있다. 약 20년 전까지는 대부분 왜가리 집단이 번식하였으나, 점차 왜가리는 감소되고 현재는 중대백로가 번식집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횡성 압곡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 중의 하나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2.중금리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구방리 512  시 대 통일신라시대

동서로 서 있는 쌍탑으로, 탑을 품었던 절터는 민가와 경작지로 변하여 탑 이외의 다른 유물은 남아있지 않다.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며, 두 탑이 거의 같은 규모와 양식을 갖추고 있다. 기단에는 기둥모양과 불법을 수호하는 8부신중을 조각하였고,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만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이 1층이라는 점이 특이하며, 기단에 장식된 조각수법이나 각 부분의 짜임새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3.상동리 석불좌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 495-1  시 대 통일신라시대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에 있는 상동리 3층석탑과 나란히 있는 돌로 만든 불상이다. 광배만 파손되어 흩어져 있을 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와 불신이 완전한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둥글고 복스러운 얼굴은 입가에 미소를 띠어 자비스럽게 보이는데 신라 전성기 불상의 이상적 사실미가 엿보인다. 당당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무릎 위에 올려 왼손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자연스런 손모양,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의 유려한 옷주름 등에서도 역시 이상적 사실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좌는 8각 연화좌인데 하대는 땅에 묻혀서 확실한 모양을 알 수 없으나, 연꽃을 새긴 원형의 상대와 각면에 안상을 새긴 중대는 전형적인 9세기 대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불상은 원만한 인상, 부드러운 옷주름, 8각의 대좌 등에 나타난 표현으로 보아 8세기의 불상양식을 잘 계승한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보인다. 

4.상동리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 495-1  시 대  고려시대

성덕사의 옛터에 석불좌상과 함께 남아있는 3층 석탑이다.

기단은 아랫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고, 그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3층 몸돌은 잃어버려 없어진 것을 탑을 복원하면서 새로이 끼워 넣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1층과 2층은 4단씩, 3층은 3단으로 새겼으며, 낙수면에는 느린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나, 지붕돌의 너비가 좁고 두꺼워지는 등 양식상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5.읍하리 석불좌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2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태기로 15 (읍하리 58-1)  시 대 고려시대

원래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의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것으로 불신, 대좌,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는 거의 완전한 상태의 석불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는 작은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솟아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얇고 부드럽게 조각하였고, 옷주름은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을 감싸면서 무릎까지 덮고 있다. 양 손은 가슴에 모아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잡고 있으나 손끝이 모두 파손되고 손가락이 없어졌다. 손모양으로 보아서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대좌는 상·중·하대석이 모두 4각형으로서 아주 드문 예이다. 상대석에는 8개의 연꽃잎을 조각하고 중대석의 각면에는 안상을 새겼다. 하대석에는 8개의 연꽃잎을 조각하였고, 그 아래 지대석에는 한면에 3개씩의 안상을 음각하여 놓았다.

광배는 배 모양이며 윗 부분이 약간 파손되었다. 가장자리에는 구름무늬와 불꽃무늬가 섬세하게 장식되었고, 머리광배에는 연꽃무늬와 상상의 꽃인 보상화무늬가 조각되었다. 머리광배의 오른쪽과 왼쪽 위에 작은 부처를 배치하였는데 맨 꼭대기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조각 솜씨가 뛰어나고 대좌가 4각형을 기본으로 한 작품으로서 각 부분의 수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6.읍하리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3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태기로 15 (읍하리 58-1)  시 대 고려시대

일제시대 당시 횡성군내의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을 옮겨 온 것으로, 바닥돌과 기단을 잃어버려 3층의 탑신만 남아있다.

남아 있는 탑신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린 것이다. 몸돌의 높이는 1층보다 2층이 많이 줄어들었고, 3층은 2층보다 조금 작다. 위로 올라갈수록 적당하게 작아져 안정감을 주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윗면의 경사가 급하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다. 3층 지붕돌 윗면에는 6㎝정도의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머리장식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없어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지만 탑신은 아담하고 안정감이 있다. 지붕돌의 양식이나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7.횡성 신대리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지 정 일 1979.05.30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청일로 909-19 (신대리 239)  시 대 고려시대

봉복사 절입구의 산기슭 밭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이웃 주민들에 의하면 원래 이 터가 봉복사의 자리였다고 전해들었다 하는데, 이로 보아 이 밭 일대가 고려시대의 옛 절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구조이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기고, 위층 기단은 모서리에만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았는데, 탑신부의 각층 몸돌 역시 그러하다. 지붕돌은 모두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경사가 완만한 낙수면은 얇고 평평하며,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거의 없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큼직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기단부분과 지붕돌의 모습들로 보아 이 탑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8.육절려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

지 정 일 1981.08.05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공근남로169번길 92-7 (매곡리 산11)  시 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숨진 진주목사 서예원을 비롯한 그의 일가족 6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서예원은 조선 선조 26년(1593) 왜적의 2차 침입 때 적은 군사와 무기를 가지고 진주성을 굳게 지키다 결국 전사하였다. 그의 부인 이씨와 큰아들 계성, 며느리 노씨 그리고 어린 딸도 밤낮으로 군사들을 도우며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둘째 아들 계철은 강에 몸을 던졌으나, 왜적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13년 뒤에 돌아올 수 있었다.

숙종 4년(1678)에 서씨 가족의 충절이 밝혀진 후, 숙종 18년(1692) 일가족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정려각을 세웠다.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10개의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벽은 붉은색을 칠한 긴 나무막대를 돌려 세웠다. 

 

9.횡성 풍수원 천주교회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유현리 1097)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에 있는 성당으로, 원래 이곳은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천주교 신도들이 피난처로 삼아 모여 살던 곳이다.

고종 27년(1890) 프랑스인 르메르 신부가 1대 신부로 부임하여 초가 20칸의 본당을 창설하였다. 그 후 고종 33년(1896)에 부임한 2대 정규하(1893∼1943) 신부가 직접 설계하여 본당을 지었는데, 융희 1년(1907) 중국인 기술자와 모든 신도들이 공사에 참여하여 현재의 교회를 완공하였다.

건축 양식은 고딕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다.

풍수원 천주교회는 한국인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4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건축물이다. 

10.문정공 조충 지석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지 정 일 1989.05.01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덕고마을1길 12 (정암리 산207-1)  시 대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문신인 문정공 조충(1171∼1220)의 묘지석이다. 묘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묘소의 위치 등을 기록하여 무덤에 묻어놓는 것이다.

이 지석의 재료는 청석으로, 표면을 거칠게 다듬어 앞면에만 글을 새겼다. 앞면의 가장자리에는 덩굴무늬를 두른 후 그 안쪽에 테두리선을 그었다. 전체가 네 조각으로 갈라지고, 패인 곳이 많아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어려우나, 조상들에 대한 소개, 그의 생애, 인품과 일화, 가족관계 등을 적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충 선생이 세상을 뜬 고종 7년(1220)에 만든 것이다. 원래 그의 묘소는 개성에 있었으나 38선으로 남북이 갈리게 되자 그의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지석은 1988년 묘자리를 수리할 때 발견된 것이다.

11.김관 영정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42호

지 정 일  2001.12.29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갑천로 865-8 (상대리 119)

시 대  조선시대

김관은 고려시대의 장군인 김취려의 9세손으로 조선 세종 29년(1447) 사마시를 거쳐 조선 문종 1년(145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형조좌랑·병조정랑 등을 지냈다. 조선 세조 13년(1467)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을 세워 적개공신이 되었고, 강원도·충청도·황해도·영안도·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다. 영정각에 봉안되어 있는 영정의 크기는 가로 88㎝, 세로 154㎝, 인물크기 139㎝이다. 이 영정은 조선 초기 양식으로, 얼굴은 밝은 연주황색으로 칠하고 갈색선으로 윤곽을 그렸으며 입술은 붉은 연지색으로 하였다. 얼굴선은 부드러운 곡선인데 비해 옷은 풀을 먹인 듯한 직선으로 표현하였다.

12.횡성 회다지소리

종 목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4호

지 정 일  1984.12.28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정포로 37 (정금리 868-4)

예능보유자  양중하

민요는 백성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 불러지는 노래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직업·풍속·놀이 등을 기능으로 하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지역이나 부르는 사람의 취향 또는 즉흥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회다지소리는 장례행사 때 죽은 사람을 묻고 묘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회를 섞은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처음에는 느린 가락으로 시작되어 점차 빨라지며 후에는 사람들의 흥을 돋구는 메나리조로 변화되어 간다. 회다지소리는 선후창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상주의 슬픔을 달래주는 한편 무덤을 만드는 사람들의 흥을 돋게 한다. 우리 조상들은 극락왕생의 내세관을 갖고 있어 상여소리·회다지소리에 해학적인 가사가 포함되기도 한다. 횡성회다지소리는 독특한 기능민요로서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강원도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양중하 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13.전통자기도공

종 목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지 정 일  1989.05.01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창봉길 32 (창봉리 533-1)

예능보유자  장송모

전통자기도공은 전통적인 기법으로 자기를 만드는 사람 또는 기술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신석기부터 흙으로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10세기 초에는 중국 당나라의 도자기 기술을 받아들여 상감청자를 만들게 되었다. 그 후 몽고의 침입으로 청자 제작기법은 쇠퇴하고, 조선 전기에 분청사기와 조선백자의 제작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을 거치면서 가마가 파괴되고 많은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가면서 도자기술이 쇠퇴하기에 이르렀는데, 다행히도 광주관요가 유일하게 남게되어 조선백자를 중심으로 하는 큰 줄기를 이루게 되었다. 전통자기의 제작과정은 제토 · 성형 · 조각 · 시유 · 소성 등의 과정을 거친다. 제토과정은 돌을 깨뜨려 가루로 만든 뒤 흙을 풀어서 섞은 후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수비과정을 거친 다음 바탕흙(태토)을 짓이긴다. 짓이긴 흙을 물레에 올려 물건의 형태를 만들고, 성형이 끝나면 말려서 칼로 문양을 새긴다. 이어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바른 뒤 재벌구이를 마치면 작품완성이다. 제작용구는 물레·방망이·지래박·수레·물가죽·쇠홀태·목홀태·전칼 등이 쓰인다. 전통자기도공은 한국의 미를 표현하는 전통공예기술로서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전통도자기 제작기능을 이수한 강원도의 장송모씨가 강원도자문화연구회 설립을 통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14.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82호

지 정 일 2003.01.18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 594 외  시 대 철기시대

이 유적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 소재한 둔내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그 주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횡성군의 동쪽 끝지역으로 횡성읍으로부터는 동북방 30㎞ 지점이다.

주거지는 가지구 3기, 나지구 5기 등 총 8기가 발견되었으나, 가지구에서는 터파기 공사로 파손된 상태였고, 나지구에서도 도로 및 사유지로 연결되어 온전히 발굴된 것은 나-2호주거지 1기에 불과하였다. 한편 보존상태가 양호한 여자형 집자리는 당시 가옥의 구조와 변천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 등 토기류를 비롯하여 낫·도자·못·철편 등 철제품, 석촉·숫돌 등 석제품, 장신구인 옥, 탄화곡물 등이 출토되었다.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기원후 1∼2세기 경의 유적으로, 우리나라 초기철기시대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초기철기시대의 문화교류 및 전파경로 등을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15.태종대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태종로 287 (강림2리 2116)  시 대 조선시대

강림천변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태종대는 조선 태종과 그의 스승 운곡 원천석에 관련된 일화가 있는 곳이다.

원천석은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왕자의 난을 계기로 실망해서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였다. 태종이 왕위에 오른 뒤 스승을 찾아 이곳에 왔으나,스승은 빨래하는 할머니에게 거짓으로 말하고 피신하였다. 태종은 할머니가 거짓으로 알려준 바위에서 기다리다가 스승이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돌아갔다. 그 뒤 이곳을 태종이 머물렀다 해서 태종대라 부르고 비석과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태종과 관련된 유적지로 그 시대의 일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6.운암정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7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한우로 191 (읍하리 산7-1)  시 대  일제강점기

운암정은 1937년 횡성에 사는 김한갑과 이원식이 세운 정자이다.

운암정이라는 이름은 김한갑의 호인 운수에서 ‘운’자를, 이원식의 호인 청암에서 ‘암’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김한갑과 이원식은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에서 살아왔는데 둘다 무척 가난하였다. 둘은 잘 살아 보자는 굳은 결심을 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 회갑이 되어 이를 기념하고자 공사비를 반 씩 부담하여 정자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운암정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안쪽에는 ‘운암정’이라고 쓴 현판 외에도, 1944년에 쓴 운암정기가 걸려 있다.

 

17.횡성향교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향교로 12 (읍상리 산12-2)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횡성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세웠다고 전하는데, 이후 몇 차례 옮겨 지었다고 한다.

대성전을 제외한 건물과 기타 소장품 및 자료가 한국전쟁으로 모두 없어졌다. 1954년에는 기숙사인 동재·서재를, 1960년에는 강당인 명륜당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18.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종 목  등록문화재 제163호

등 록 일  2005.04.15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유현리 1097)

시 대  일제강점기

현재 성당은 1896년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 년에 착공해서 1907년에 준공했고 2년 뒤인 1909년에 낙성식을 거행한 것으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것이다. 이중 사제관은 1912년 착공 1913년10월1일 준공한 것으로 1998년 전시관으로 개조하였다. 외벽이 원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창호, 바닥, 지붕의 교체가 있었으며, 1997년 수리 후 현재 유물전시관으로 사용 중이다.

19.횡성성당

종 목  등록문화재 제371호

등 록 일  2008.02.28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태기로19번길 25 (읍상리 388)

시 대  현대

이곳에는 원래 풍수원 성당의 공소가 있었다. 1930년 본당으로 승격된 후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을 신축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져 1956년에 현재의 건물을 건립하였다.

라틴십자형 평면의 석조 성당으로 미사 공간은 내부에 분절이 없는 강당형이며, 본채의 천장 상부 목조 트러스 구조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정면 중앙에 8각 종실을 마련하고 그 위에 돔을 얹은 종탑을 두었는데, 종탑에는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종을 설치하였다.

부속 건물에는 변화가 많았으나 본당은 외형이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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