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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님의 댓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의 문화재)

 

1.홍진 호성공신교서

종 목  보물  제1308호  지 정 일 2001.02.23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영서로 2804-36 (능평리 154)  시 대 조선시대

이 교서는 임진왜란 때 호종한 공으로 조선 선조37년(1604) 10월 당흥부원군 홍진에게 호성공신 2등을 내린 교서이다. 이 교서는 '교충근정량권절협책호성공신보국숭록대부당흥부원군겸지경연사홍진서'란 제목아래 녹훈사실 및 포상내용과 등급별 공신명단, 그리고 교서의 발급년월을 적고 있다.

내용을 보면, 홍진은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몽진할 때 의주까지 시종 수행한 공로로 2등 공신에 봉해졌으며, 영정을 그려 후세에 전하고, 본인과 부모·처자의 벼슬을 2계씩 승진 시키고, 적장자에게 군호를 세습하는 외에, 반당 6인, 노비 9구, 구사 4명, 전 80결, 은자 7양, 표리 1단, 내구마 1필을 상으로 내렸다.

호성공신 명단으로는 1등 공신에는 이항복 등 2명, 2등 공신에는 유성룡 등 31명, 3등 공신에는 허준 등 53명이고, 홍진은 2등 13번째에 기록되어 있다.

끝으로, '만력삼십이년십월'의 발급연대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 위에 「시명지보」라는 선조의 어보가 날인되어 있다.

홍진 교서에는 2등 공신에 해당되는 녹훈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호성공신에 대한 포상 규정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2.원천군 변수 영정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8호  지 정 일 1993.06.03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전치곡리 12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원천군 변수(1447∼1524)의 초상화이다.

변수는 경상도·함경도의 병마절도사를 지내었으며,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정국공신이 되어 원천군으로 봉해졌다.

선생이 공신으로 책봉되던 당시 도화서 화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머리에 사모를 쓰고 짙은 푸른색의 관복을 차려입고, 오른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채색하여 그린 전신좌상이다. 가슴에는 학과 구름무늬가 있는 흉배를 하고 있고, 옷자락 밑에는 옆 트임을 두어 안쪽에는 흰 속옷이 보인다. 두 발은 십일자(11)로 가지런히 디딤돌 위에 올려놓았다.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공신도이나, 얼굴과 사모가 훼손되어, 후대에 보수하면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3.박씨 효자ㆍ횡성고씨 효부문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시 대  조선시대

1822년 건립된 효자문과 효부문으로, 효자 박씨와 그의 처 횡성 고씨의 효를 기리고 있다.

효자문은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김경인ㆍ참판관 박성채(상지 19년 임오 4월), 효부문은 효부학생 박용하의 처 유인 횡성고씨 (상지 30년 게사 7월)의 정려이다.

  

 

4.능뜰묘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능평리 시 대  조선시대

북방면 능평리 화계초등학교 옆 서편 예사롭지 않은 묘가 언덕 중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 묘는 조선조 단종 때 이곳 출신인 병조판서 김효성의 묘이다.

연안 김씨 밀직제학공파 10대손인 김효성은 세종대왕 때 병조판서훈공일등공신(지금의 국방부 장관급)으로 초대받았다.세종 9년 (1427)안변대사로 임명됐고 단종 원년 (1453) 11월 계유정난 론공에서 정란일등공신에 책공되었고 또 연산군으로 책봉되었다. 단종 2년 69세로 홍천의 별저에서 별세하니 현지에 묘를 세우고 영의정 정인지가 찬한 대리석신도비가 세워졌다. 함께 자리하고 있는 다른 2기의 묘도 그 가족의 것으로 보이며 이묘역은 이곳에 거주하는 연안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5.홍천 구만리 지석묘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반석들길 3 (구만리 644-2)  시 대  청동시대

구만리 지석묘군은 구만초등학교 옆들에 자리하고 있는데, 고인돌이 반석같이 생겼다고 하여 이곳을 ‘반석들’이라고도 불렀다. 반석들에 있는 고인돌군은 ‘칠성바위’라고도 하는데 이는 반석들에 축조된 고인돌의 기수를 의미하는 명칭이다. 현재 학교에는 탁자식 고인돌 1기만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만리에는 또 하나의 칠성바위라 불리는 고인돌군이 있는데 1995년에 조사 보고 되었다. 구만리 666번지 박동윤씨 집 뒤에 자리하고 있는 고인돌군에는 총 5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 원래는 7기의 고인돌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밭주인에 의해 2기가 훼손되었다. 구만리 마을에서는 박동윤씨 집 뒤의 고인돌군을 위 칠성바위, 반석들의 고인돌군을 아래 칠성바위라 부르고 있다.

 

아래 지석묘군(아래 칠성바위)에서 형태를 확인 할 수 있는 고인돌은 1기뿐이다. 덮개돌은 평면형태로 거의 정사각형 모양이다. 덮개돌과 받침돌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구성말에 산재하여 있는 돌들도 같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구성말이 채석장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구성말은 원래 구석마을이란 이름에서 변음 되어 나타난 것으로 지금도 구성말, 구석말, 구성촌, 구석촌으로 불린다. 구성말에서 반석들까지는 700~800m 정도 떨어져 있다. 덮개돌의 윗면에는 33개의 성혈이 파여져 있는데 크기는 지름이 12cm에서 2cm까지 다양하다. 구만초등학교의 서쪽에 위치한 도랑에는 다른 고인돌의 덮개돌이 다리로 이용되고 있다.

 

위 지석묘군(위 칠성바위)의 고인돌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보존하고 있으나 경지 정리와 같은 이유로 위치가 이동된 것이 많다. 1호 고인돌의 경우 현재의 위치보다 5m 떨어져 있던 것을 장독대로 쓰려고 옮겨온 것이다. 3호 고인돌은 주택의 울타리 속에 들어가 있으며, 4호 고인돌은 땔감을 쌓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6, 7호 고인돌은 수년전 경지 정리를 위해 받침돌을 빼거나 눕히고 덮개돌을 땅속으로 가라 앉혀 놓았다고 한다.

 

 

6.홍천 능평리 고인돌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능평리 시 대  청동시대

능평리 고인돌군은 능평리 구석기가 발견 곳에서 남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지점에서 남쪽으로는 하화계리의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홍천강이 보인다.

현재 능평리 고인돌군에는 총 4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으나 마을에서 아 고인돌군을 ‘칠성바위’로 부르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원래는 7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에 연고가 없는 4기의 민묘가 함께 위치해 있다. 4호 고인돌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나머지는 모두 편마암으로 만들어 졌다. 덮개돌의 형태는 네모꼴이 주를 이룬다.  

 

7.홍천 하화계리 소단리 고인돌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리 소단리 시 대  청동시대

하화계리 소단리 고인돌 유적은 하화계리 사둔지 중석기 시대 유적에서 서북쪽으로 약 320m 정도 떨어진 강가에 자리하고 있다. 총 4기의 고인돌이 남북으로 10m 정도의 거리 내에 세모꼴로 분포하고 있다. 2호 고인돌은 예비군 참호를 만들면서 옆으로 밀려 내려간 상태이며, 3호 고인돌은 양수장 옆으로 옮겨져 두동강난 모습이다. 훼손된 정도가 심해 조사시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 중에 3기는 개석식으로 밝혀졌다. 고인돌의 암질은 모두 화강암이다.

소단리 고인돌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민무늬 토기 조각 4점, 단돌도끼 2점, 간돌검 조각 2점, 간돌 화살촉조각 2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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