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정보] 강릉시 주문진읍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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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 마이마이 드릴테니까 우리고장 강릉시 주문진읍의 문화재좀 알려 주세요

내공냠냠 잇으면 신고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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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마미님의 댓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의 문화재)

 

1.강릉 장덕리 은행나무

종 목  천연기념물  제166호  면 적 4,381㎡(보호구역) 지 정 일 1964.01.31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 643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주문진 장덕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8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6m, 둘레는 9.63m이다. 지상 1.8m와 2.5m 높이 사이에서 8개의 큰 가지로 갈라져 있다.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는데,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는 이 나무에 많은 은행이 열렸는데, 열매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자 이곳을 지나던 늙은 스님이 이 냄새를 싫어해 부적을 써서 붙였더니 그 후부터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은행나무의 대부분은 암나무가 오래 사는데 주문진 장덕리의 은행나무는 수나무로서 오래 살고 있어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으며, 전설 등의 문화성도 가지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2.강릉 최선평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1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신리천로 342 (장덕1리 164)  시 대 일제강점기

강릉 최선평 가옥으로 대문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는 ㅁ자 평면을 가진 집이다.

안채는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오른쪽에는 부엌을 배치하고 그 앞으로 창고와 외양간을 한단 낮게 달아 지었다.

사랑채 역시 팔작지붕으로 꾸몄으며, 대문 옆에 작은 문간방을 두고 그 왼쪽으로 2칸 사랑방과 마루방을 배치하였다. 마루방 뒤에는 방과 창고를 연결하여 안뜰을 감싸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80년 전에 지은 건축물로 추정한다. 

 

 

3.강릉최씨 동원군 종택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6호  지 정 일 2005.12.30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신리천로 192-3 (교항리 998)  시 대 일제강점기

대문간채, 안채, 사랑채, 고간채에 의해 □자 배치형식을 하고 있으며 종가집으로써의 품위를 갖추고 있다. 일제시대 대정 7년(1918)과 8년에 건축되어졌으며 근대 전통한옥으로 분류된다. 안채는 전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로서 측면은 안대청이 만들어지고 대청안에 안상방이 있다. 각방들은 사이의 장지문을 없애고 생활의 편리를 위하여 한칸으로 크게 사용하고 있으며 부엌도 현대식으로 개량하였다.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기단은 자연석 초벌쌓기 위에 장대석 기단을 놓았고 굴도리 5량가 팔작 한식기와지붕형식이다. 사랑채는 사랑대청과 사랑방+사랑방으로 구성되며 대청 옆의 사랑방에는 안채에서 출입하는 신발방이 있으며 이를 통하여 대청과 사랑방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근대에 남녀의 엄격한 구분과 유교적 개념이 적어지면서 안채에서 사랑으로 곧바로 출입하는 동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랑아랫방은 뒤로 장지문 네짝을 통하여 연결되는 작은 방을 하나 더 가지고 있고 이곳은 다시 사랑부엌과 연결되어 안채와 바깥으로 출입할 수 있다. 장혀 굴도리이며 기둥은 높고 퇴청은 널판천정을 하고 벽체 상하부에는 머름을 두어 치장을 하고 있다. 장대석 초벌기단은 지대석에서 100㎜ 내밀기 쌓기를 하고 있다. 고가내는 이층 누다락 형식으로 높게 만들어져 이 집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부엌과 맞닿은 곳에는 마루바닥의 찬방이 있어 음식의 보관, 조리의 준비 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 마주보는 마당 건너편에는 고간, 서녁방(누님방) 부엌의 별당 형식의 집이 한동 있다.

대문간채는 솟을 대문을 중앙에 두고 목방과 마굿간이 또 다른 쪽에는 교간과 고지까리간이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 퇴락하였다. 넓은 터를 잡고 전통 근대 한옥으로써의 품격을 갖추고 있으나 그 당시의 모든 가옥들이 나타나는 특징으로 재목의 쓰임이 풍부하지 못한 것이 본 가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일제의 수탈에 의한 경제적 어려움이 주거에 반영된 것으로서 조금의 아쉬움이 있다. 집터의 위치와 가옥의 배치에는 나무람이 없다. 

  

 

4. 강릉 주문리 고분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연주로 482 (주문리 419) 일대 시 대  신라

해발 30m 높이의 구릉 정상에 분포하고 있다. 1997년에 강릉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고분은 신라시대의 수혈식석곽묘로 2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1호분은 남-북 방향이 장축이고, 길이 310㎝, 폭 70㎝, 깊이 70~80㎝의 크기이다. 현재 외벽은 남쪽과 서쪽이 모두 결실되었고, 북쪽 장벽과 동쪽 단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다. 바닥에는 받침돌로 추정되는 석재 6매가 나란히 북쪽 벽에 붙어 있고, 상면에는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 5매가 발견되었다.

2호분은 동-서 방향이 장축이고, 길이 180㎝, 폭 60㎝, 깊이 50㎝의 크기이다. 바닥은 받침돌 없이 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상면에서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 1매가 발견되었다.

1호분에서는 5세기 중반의 고배, 장경호, 대호, 원통형 기대 등이 출토되었으며, 2호분에서는 같은 시대의 장경호 2점, 작은 항아리 1점, 접시 1점이 출토되었다.

 

5.강릉 교항리 철기유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연주로 270 (교항리 8-2) 강원도립대학부지 일대 시 대  철기시대

강릉시 교항리 강원도립대학 부지 내의 충적 사구지대에 있는 철기시대의 주거지유적이다. 1997년 강원도립대학 건물의 개축공사 중 유구가 노출되어 강릉대학교 박물관이 긴급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43기의 주거지와 소형유구가 발견되었으며, 다양한 철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전형적인 철기시대의 철(凸)자 구조이다. 내부 시설로는 바닥, 화덕자리, 출입구, 작업대 등이 남아 있다. 철(凸)자 건축구조를 알 수 있는 판자벽, 서까래, 용마루보, 도리, 기둥, 진흙 벽, 각재 등이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은 주로 경질 무문토기가 많으며, 소량의 타날문토기 조각과 석기, 철기 등이 있다. 무문토기는 호형토기가 대부분이고 소량의 옹형토기와 발형토기, 접시 등이 발견되었으며, 타날문토기는 정확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조각들로 발견되었다.

 

6.강릉 향호리성지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1028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있던 옛 성터이다. 《문화유적총람》에는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향호 서쪽에 1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향호리 성지’와 ‘향호2리 성지’ 등 2개의 성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향호리성지는 주문진읍 향호리 1028번지에 있다. 향호 서쪽으로 약 600m의 절골에 있는 초평탄의 좁은 구역으로 약 20m 가량의 석단이 남아 있으며 기와 조각들이 산재해 있다.

 

향호2리 성지는 주문진읍 향호2리 816번지에 있다. 둘레는 약 1km 정도이고, 고려시대에 축조된 토석혼축성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두 곳 모두 성곽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며, 고려시대의 기와 조각과 건물지에 사용된 석재들만이 발견되고 있다.

 

7.강릉 주문진 봉수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의 해발 22.7m의 낮은 산봉우리에 있다. 봉수지는 지금의 신리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의 북쪽인 주문진 등대가 있는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봉수는 남쪽으로 사화산(沙火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양야산과 응하는 간봉(직봉에 들지 않은 작은 봉수조직)이다.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 등의 문서에 동일하게 강릉대도호부 영역의 북쪽 끝에 해당하는 ‘주문산봉수’라고 기록되어 있다. 봉수대는 바다를 향해 약간 돌출된 형태로 바다로 침입한 적을 적을 후망하기 편리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에 강원도의 양주 아차산 봉수에서 포천, 양평, 철원, 평강, 회양을 거쳐 함경도 안변부로 연결되는 제1거 봉수로상의 봉수대 11개소만 남기고 모든 해안의 간봉이 폐지되면서 역할을 상실했다.

 

 

8.강릉 향호리 봉수지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의 발우봉에 있다. 봉수지는 사방이 트여 남쪽으로 주문진 일대, 북쪽으로 양양군 현남면 일대까지 보이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봉수는 남쪽으로 사화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양야산과 응하는 간봉(직봉에 들지 않은 작은 봉수조직)이다.

현재 인공축석은 발견되지 않으나, 봉수지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직경 5m 정도로 그 둘레가 자연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19세기에 강원도의 양주 아차산 봉수에서 포천, 양평, 철원, 평강, 회양을 거쳐 함경도 안변부로 연결되는 제1거 봉수로상의 봉수대 11개소만 남기고 모든 해안의 간봉이 폐지되면서 역할을 상실했다.

 

9.강릉 조광현 가옥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 362번지 시 대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ㅁ’자형 배치가옥이다. 안채와 사랑채,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다. 좌측에는 슬레이트 지붕의 부속사가 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다.

 

좌측에는 우물마루로 만든 사랑대청이 있다. 사랑방과 사랑방 사이는 네 짝 미닫이문을 달아 서로 통하게 하였다.

 

10.강릉 오성근 가옥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 시 대 일제강점기

1938년에 건립한 ‘ㅁ’자형 배치가옥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떨어져 있지 않고 대청마루를 중앙에 두고 ‘ㄱ’자형 팔작 5량 겹집으로 되어 있다. 행랑채는 별동으로 떨어져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본채는 한식기와 지붕이며, 나머지는 슬레이트 지붕이다. 대청은 우물마루이고, 전면에 머름대를 둘렀다. 사랑채의 입구에는 사랑채 출입을 위한 솟을대문을 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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