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정보] 원주시 지정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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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급하게 필요해서요.
원주시 지정면의 문화재에 대한 사진하고 정확한 설명 부탁드려요.
내공은 걱정 마시고요.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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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남현맘님의 댓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의 문화재)
1.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 탑비
종 목 보물 제463호 지 정 일 1968.07.05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 시 대 고려시대
흥법사터에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진공대사(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깨어진 채 경복궁으로 옮겨놓아 이 곳에는 비의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진공대사는 장순선사 밑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공양왕 때 귀국한 후 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도 태조가 그의 설법에 감화하여 스승으로 머물기를 원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다.
비를 이고 있었던 돌거북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다. 목은 짧고 등껍질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만(卍)자 무늬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은 앞면 중앙에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을 조각하였다. 용 두 마리가 서로 무섭게 노려보고 다른 두 마리는 양 귀퉁이에서 옆을 쳐다보고 있다. 뒷면에도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웅장한 기운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시의 높은 예술수준이 엿보인다.
경복궁에 있는 비의 몸돌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깨져있어 부분적으로 비문을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이나, 대체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2.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464호 지 정 일 1968.07.05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 시 대 고려시대
흥법사터라고 전하는 밭 가운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흥법사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던 거대한 사찰로, 원래 탑 외에도 전흥법사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흥법사진공대사탑부석관(보물 제365호) 등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기단을 2단으로 두고, 그 위로 기와집 모습을 본뜬 듯한 탑신을 3층으로 쌓아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이 3개씩 새겨져 있는데, 꽃모양처럼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층 기단의 윗면은 경사져 있고, 보기 드물게 중앙에는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받침을 3단으로 조각하였다.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시고 있는 탑신은 기단에 비해 너무 작은 모습이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겨놓았으며, 1층 몸돌에는 네모난 문비가 새겨져 있고 문비 안에는 마멸이 심한 문고리 장식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두꺼워 보이고 경사가 가파르며, 아래받침은 얇게 4단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파손된 부분이 많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가에서 살짝 위로 들려있어 고려시대 석탑임을 잘 드러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머리장식을 받치기 위한 노반만 남아 있으나 그 마저도 많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이다.
기단과 탑신의 불균형이 눈에 띄며, 돌의 구성이나 조각수법이 소박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3.원주 조엄 묘역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76호
지 정 일 2000.11.18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산69-12 시 대 조선시대
문익공 조엄(1719∼1777)의 묘역이다. 조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문장에 능하고 민생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지평, 수찬 등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조창을 설치하고 조세부담을 줄이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영조 39년(1763)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고구마의 종자를 가져와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봉분 앞에는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 망주석 2기가 있고 상석에서 조금 왼쪽으로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곳에서 100m 떨어진 묘소 진입로 쪽에 신도비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신도비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이다.
4.김제남 신도비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1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산67-3 시 대 조선시대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그의 묘 가까이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선조임금의 장인이었던 김제남(1562∼1613) 선생을 기리고 있다.
선생은 선조 18년(1585)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활동을 시작하였고,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에는 이조좌랑에까지 올랐다. 둘째 딸이 선조의 둘째 비인 인목왕후로 추천되자 연흥부원군에 봉하여졌다. 광해군 5년(1613)에는 인목왕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채 사약을 받고 세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인조반정 후에야 명예가 회복되어 그를 위한 사당을 지었고, 이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구조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비를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어 재미있는 모습이며,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 있다.
조선 인조 2년(1624)에 세운 비로, 왕의 명령으로 그의 사당을 지을 때 함께 세워두었다 한다.
5.흥법사지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5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외 7필지 시 대 고려시대
흥법사는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신라 때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염거화상탑, 진공대사부도(보물 제365호), 진공대사탑비가 있었는데, 1931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현재는 흥법사지삼층석탑(보물 제464호), 진공대사탑비귀부및이수(보물 제463호)만이 남아있다.
6.원주 원충갑 묘역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8호
지 정 일 2006.07.28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지정면 간현3리 산25번지 시 대 고려시대
원충갑(1250~1321)은 고려의 무신으로 원주 출신이며 본관은 원주이다. 향공진사로 원주별초에 있으면서 1291년(충렬왕 17) 합단적이 치악성을 포위하자, 전후 10차에 걸쳐 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로부터 합단적은 예봉이 꺽이어 감히 공격도 노략질도 하지 못하였고 여러 고을에서도 굳게 방어하게 되어 비로소 합단적을 경시하는 마음이 생겼으니, 이는 모두 원충갑에게서 얻은 힘이었다. 원충갑의 이러한 공로로 원주는 익흥도호부로, 다시 1308년 원주목으로 승격되었고, 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동안 면제 되었다. 원충갑 또한 여섯 번 전임하여 삼사 우윤에 올랐다.
시호는 충숙이고 치악산 영원산성안에 원충가 세워져 제사를 모시다가 1669년(현종 10년)사당을 세워 원충갑을 추향하고 김제갑과 원호를 배향하였고, 1670년(현종 11년)윤2월 7일 충렬사로 사액되었다.
7.의민공사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1리 능촌 시 대 현대
이 사우는 조선 제14대 선조대왕 의 장인이며 인목 대비의 친 아버지인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연흥부원군 김제남은 1613(계축)년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이이첨 등의 무고를 받고 서소문밖 자택에서 사사 되었다. 당시 그의 시신은 양주서산에 모셔졌으나 그후 1623년(계축) 인조반정으로 그의 관작이 다시 복구되어 이곳에서 약 400m 쯤 떨어진 뒷산에 예장되었다.
이 사우는 그때 왕명으로 세워진 것인데 그후 두차례 소실되었고 현재의 사우는 1965년에 다시 재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