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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봉산동의 문화재가 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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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100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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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의 문화재) 

1.일산동 석불좌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봉산로 134 (봉산동 836-1) 원주시립박물관  시 대 고려시대

원래 원주시 중앙동의 폐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남산 추월대로 이전하였고 다시 1962년 5월에 강원감영터로 이전하였다가 2000년 봉산동 시립박물관 야외로 이전 전시하고 있다. 이 석불은 5층석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똑같은 모습으로 안치되어 있다.

이 2구의 불상은 머리 부분이 없어져 새로 보수한 것이어서 원래의 모습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체구는 단정한 편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얇아서 신체의 윤곽이 잘 나타나 있으며, 평행옷주름은 다소 도식화되었다. 깨진 두 손은 가슴에 모은 상태로 보아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쥐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손모양으로 보아 아마도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8각대좌로, 상대에는 연꽃을 2중으로 조각하였고, 중대에는 각면에 모서리 기둥을 새기고 그 안에 보살상을 새겼다. 하대에도 연꽃잎을 새겼으며, 그 아래에는 사자와 모란 등을 장식한 8각 기둥모양의 큰 돌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불신만으로도 조각수법이 뛰어남을 알 수 있는 이 석불들은 단정한 체구, 세련된 형태, 평행옷주름 등에서 신라말의 비로자나불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적어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2.일산동 오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봉산로 134 (봉산동 836-1) 원주시립박물관  시 대  고려시대

원래 원주시 중앙동의 폐사지에 있던 것을 1962년 5월에 강원감영터로 이전하였다가 2000년 봉산동 시립박물관 야외로 이전 전시하고 있다.

탑의 형태는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전체가 큼직한 돌로 이루어진 기단은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탑신의 각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떠 새겼다. 위로 오를수록 서서히 줄어드는 비율이 단아하며, 형태도 정돈되어 있다. 지붕돌은 얇은 편이고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인데, 안타깝게도 파손된 부분이 많다.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3.봉산동 당간지주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지 정 일 1976.06.17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개봉교길 41 (봉산동 1146-1) 시 대 고려시대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는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다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원주시 봉산동 내천 옆에 자리한 이 당간지주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내에 서 있던 것이라 한다.

기단부가 땅에 묻혀 있어 그 모양을 알 수 없으며, 좌우 두 기둥과 기둥사이의 당간받침돌만이 남아있다. 자연돌로 만든 당간받침돌은 양끝을 기둥밑부분이 들어갈 수 있도록 파낸 후 기둥을 끼웠고, 그 윗면에는 가운데에 동그랗게 테를 돌린 후 깃대를 끼워 세울수 있도록 구멍을 파 놓았다. 양 기둥은 직사각형이나 위로 오를수록 차츰 좁아져 맨끝은 뾰족하게 모아진 형태이다.

각 부분에서 날카로운 부분을 다듬어 부드러운 모습을 나타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세워진 시기는 대체적으로 정교한 꾸밈이 없었던 고려시대로 여겨진다. 1910년 ‘한일합방’당시 기둥 한쪽이 파손되어 1980년 4월 복원해 놓았다.    

4.원주 봉산동 석조보살입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7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봉산4길 38 (봉산동 산6-1)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에 있는 사람키 만한 석조보살 입상이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으며, 풍만한 얼굴에 눈·코·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지만 미소를 띠고 있어 친근한 인상이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고 있으며, 신체에 비해 팔은 가늘고 손이 작아서 불균형한 모습이다.

상체의 옷은 양복처럼 보이고, 큰 체구에 구름무늬 같은 하체의 옷주름이나 머리에 쓴 관 모양이 일반적인 보살과 거리가 먼 특이한 형태이다.

친근한 인상과 옷이나 신체 등 형식적인 세부표현에서 고려 보살상의 특징과 지방색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이 지방의 불상양식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5.원주 봉산동 석불좌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8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봉산로 134 (봉산동 836-1) 원주시립박물관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광배와 대좌를 갖추었지만 손과 얼굴이 깨져 있다.

어깨는 자연스럽고 둥글게 처리되었고, 가슴은 비교적 넓으며 앉아있는 자세도 안정되어 균형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팔·다리 등의 신체표현에 적당한 양감이 있어 통일신라 석불상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평행 주름모양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특징과 비슷하지만 다소 형식화 되어가는 시대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배 모양의 광배에는 덩쿨무늬와 테두리에 불꽃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3단의 8각 연화대좌인데 맨 아랫단이 땅속에 묻혀 있다. 가운데단은 8각으로 각 면에 천인상이 새겨져 있고, 맨 윗단은 연꽃이 핀 모양 안에 작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불상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고려 초기의 석불상이다.  

 

6.관동창의대장 민긍호 묘소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산1011번지 시 대  대한제국시대

한말의 의병장 민긍호(?~1908. 2. 29)의 묘로,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산1011번지의 산비탈에 있다. 원주군 본부면 하동리(현재의 원주시 학성동)에 있던 묘를 1939년 원성군 흥업면 무실리(현재의 원주시 무실동)로 이장하였고, 1954년 5월 육군준장 권준이 다시 현 위치로 이장하였다.

3단의 화강암이 띠처럼 둘러져 있는 봉분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묘비 가운데에 ‘민족영웅 의병대장 민특무긍호공지묘’라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 ‘살신성인(殺身成仁)’, 왼쪽에 ‘정신불사’라고 새겨져 있다. 묘역 입구에는 투박하고 거친 형태의 충혼탑이 하나 서 있다.

민긍호는 1907년 원주진위대의 정교로 있던 중 고종이 강제로 양위되고, 군대해산 명령이 내리자 병사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100여 회의 전공을 세운 후 1908년 2월 29일 치악산 강림전투에서 일본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7.원주 신선암 석조보살입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봉산2동 산38 시 대  고려시대

신선암 입구에 세워져 있는이 보살입상은 높이 1.7m 정도이며, 좌대는 0.5m정도로 시멘트를 이중으로 쌓아 기단을 삼았다. 본래는 철로변에 있는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두발은 고깔 모양의 익선관을 쓰고 있으며 눈과 코, 입은 마멸이 심하다. 얼굴은 풍만한 편이고 목에는 삼도가 있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 법의를 쥐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에 두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가슴 아래에서 U자 형태를 하다가 허리부분에서 다시 양편으로 갈라져있다.

이 보살입상은 다소 파손이 되었으나 크기나 조각에 있어서 우수한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양팔을 타고 내린 법의는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며 후덕한 얼굴과 풍부한 느낌에서 고려 초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현재 무릎 밑부분이 땅에 묻혀 있으며, 제작시기나 본래의 위치등에 관해서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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