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정보] 강릉시 운정동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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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고장의 문화재를 수집해보기가 있어요~

 제 고장은 강릉시 운정동 입니다! 많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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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운정동의 문화재)

 

1.해운정

 

종 목 보물 제183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256

시 대 조선시대

 

해운정은 조선 상류주택의 별당 건물로 경포호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으며, 조선 중종 25년(1530)에 어촌 심언광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것으로 전한다.

 

심언광 선생은 조선 중종 2년(1507) 진사가 된 뒤,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친 분으로 문장에도 뛰어났다.

 

이 건물은 3단으로 쌓은 축대 위에 남향으로 지었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안쪽의 오른쪽 2칸은 대청이며 왼쪽 1칸은 온돌방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대청 앞면에는 문을 달아 모두 열 수 있게 하였다. 건물 주위에는 툇마루를 돌려 놓았다.

 

건물 앞에 걸린 ‘해운정’이라는 현판은 송시열의 글씨이며, 안에는 권진응, 율곡 이이 등 유명한 사람들의 글이 걸려 있다.

 

겉은 소박하고 안쪽은 세련된 조각으로 장식한 별당 건물로, 강릉 지방에서는 오죽헌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이다.

 

2.강릉 선교장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   지 정 일 1967.04.18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운정동 431)  시 대 조선시대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선교장’이라는 이름도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1700년 이전에 건립된 안채는 이내번이 지었으며, 선교장의 건물들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열화당은 사랑채로서 순조 15년(1815)에 이후(李厚)가 세웠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는 서재 겸 서고로 사용되던 서별당이 있었다. 대문 밖 바깥마당의 남쪽으로 위치한 넓은 인공연못에 서 있는 활래정은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지었다.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마루가 연못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이 집은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각 건물의 구조도 소박하게 처리함으로써, 집 밖의 활래정과 함께 자유스럽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또한 소장하고 있는 여러 살림살이들은 옛날 강릉지방 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있다.

 

 

3.황산사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8호  지 정 일 1977.11.28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21번길 27 (운정동 440-2)  시 대  일제강점기

황산사는 충무공 최필달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900년대 초에 문중과 유림이 논의하여 짓게 되었다.

고려 개국공신 중 한 사람으로 강릉 최씨의 시조인 충무공은, 그 당시의 학문을 바로 세우고 예를 가르친 문무를 겸한 학자로서 ‘해동부자(海東父子)’라고 불렸다.

황산사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또한 사당의 경내에는 문정공 최수성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문정묘가 있다. 후손인 최명수와 진사 정채화 등이 1936년 남문동에 건립하였는데, 주변에 주택 등의 건물이 들어섬에 따라 198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최수성은 문장·글씨쓰는법·그림에 뛰어났으나 김전·남곤 등의 모함으로 조선 중종 16년(1521)에 죽음을 당한 현인이다.

문정묘는 황산사와 같은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규모는 조금 작다. 

 

 

4.강릉 수리골 고택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9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123 (운정동 256)  시 대 조선시대

경포호수에 가까이 있는 해운정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집이다. 지은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안채는 350∼360년, 사랑채는 250∼260년 정도 된 것으로 보인다.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대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ㄱ자형의 사랑채, 왼쪽에 외양간이 있다.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안채가 있는데, 사랑채와 연결되는 1칸은 비워져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안채는 앞면 4칸·옆면 2칸의 겹집으로, 4개의 방을 배치하였고 안마당쪽에는 툇마루를 내었다. 왼쪽으로는 부엌과 곳간이 있어 ㄱ자 형태였으나 부엌에 이어진 부분을 지금은 방으로 수리하여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다. 사랑채는 5칸의 규모이며, 안채와 사랑채는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집으로, 집 뒤로는 야산이 있지만 주변의 변화가 심하여 예전의 멋은 많이 없어졌다. 

 

 

5.강릉 운정동 모선재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시루봉길34번길 43 (운정동 400) 시 대  현대

모선재는 강릉박씨 판관공 종중 인물들 중에서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고 행영흥판관 증이조참판을 지낸 박중신, 무과에 급제한 후 승지가 된 박시원, 무과에 급제한 후 승지와 북병사를 지낸 박시창, 홍문박사 동부승지 예문관직제학 박시형, 홍문관교리 승정원동부승지부제학 대사성 증이조판서 박시행, 문과에 급제하고 평해군수를 지낸 박시문, 현량과로 병조좌랑을 지낸 박공달, 시강원자의를 지낸 박태수 등을 제향하기 위한 재실이다.

선조를 추모하고 묘제를 지낼 때 우천에 대비해 시제를 올리거나 제수를 장만하기 위한 장소로 건립되었다. 재실이 훼손되어 1993년 종인들이 비용을 출연하여 중수하였다.

주위에 강릉박씨 판관공 종중 인물들의 묘소와 재실들이 있어 재궁이라는 지명이 사용된다. 증봉에서 남쪽 방향으로 세 골짜기가 있는데, 하곡에는 단천공 재실이 있고, 상곡에는 생원공 재실이 있으며, 중곡에는 승지공, 북병사공, 국포재, 송계당과 사휴당과 호수공의 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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