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정보] 속초시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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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
아리나님의 댓글
속초시 문화재 현황입니다.
http://www.sokcho.go.kr/portal/happysokcho/historyculturenatural/designatedculpro
즐거운음악과님의 댓글
(속초시의 문화재)
1.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443호 지 정 일 1966.08.25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산24-2 시 대 신라
속초에서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설악동 어귀에 세워져 있는데, 현재 탑의 위치가 옛날 그대로라고 해도 탑 주위는 절터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이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형태로 신라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여러 장의 돌을 붙여 바닥돌을 깔고, 같은 방법으로 아래층 기단의 밑돌을 두었다. 아래층 기단의 가운데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겨두었으며, 면의 가운데에는 2개씩의 기둥조각을 새겨놓았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기고,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 2개를 조각하였다.
탑신부에서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 한 돌로 새겼는데, 몸돌마다 모서리기둥을 새겼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의 두께가 약간 두꺼운 것이 특이하며, 밑면의 받침수는 5단이다. 지붕돌 위의 경사가 급한 반면, 치켜올려진 정도는 아주 적어서 탑 전체가 무거운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옥개석 네 귀퉁이에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있어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경쾌하게 보이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은 1966년 해체하여 보수공사를 하였는데, 이때 3층 몸돌의 가운데에서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두는 공간을 찾아냈으나 사리장치나 유물은 이미 없었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많이 나타나는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탑양식과 달리, 전체적인 형태가 무겁고 형식적인 장식을 둔 면이 많다. 그러나 이 석탑은 동해안에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신라시대 석탑이어서 그 보존의 가치가 매우 크다. 절터에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기와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2.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종 목 보물 제1721호
지 정 일 2011.09.05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속초 신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1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와 제작자,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제작주체를 분명히 하고 있어 17세기 중엽경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자료이다. 이 불상을 조각한 무염은 대화사 현진과 함께 17세기 전·중엽 경을 대표하는 화사로 이 작품은 조각승 무염의 작품세계를 시기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이 삼존불상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무릎, 당당한 어깨, 알맞은 허리 등 안정된 비례와 조화로운 형태미를 갖추고 있다. 또한 상체의 불필요한 주름들은 과감하게 생략하였지만, 불신과 불의가 긴밀하게 밀착·연결되어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형태미를 보여 준다. 이러한 면에서 이 삼존상은 무염의 조각적 역량이 흠뻑 담겨 있는 작품이자 그가 조각한 작품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대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3.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종 목 보물 제1749호
지 정 일 2012.02.22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축원문 통해 1651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와 제작자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제작 주체를 분명히 하고 있어 17세기 중엽 경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자료이다. 특히 불상제작에 있어 조성화원과 화성화원, 즉 불상의 제작과 개금·개채를 분리해서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당시 불상의 제작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불상을 만든 무염은 대화사 현진, 청헌 등과 함께 17세기 전·중엽 경을 대표하는 조각승 이다. 이 작품은 조각승 무염의 작품세계와 그의 조각경향이 제자들에게 어떻게 계승되어 가는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이 삼존상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무릎, 당당한 어깨, 알맞은 허리 등 안정된 비례와 조화로운 형태미를 갖추고 있다. 불신과 불의가 긴밀하게 밀착·연결되어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형태미를 보여 준다. 또한 상체는 부드러운 선묘로, 하체는 강직한 선묘로 처리하여 예배자로 하여금 종교적 긴장감을 차츰 고조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이 삼존상은 무염의 조각적 역량이 가장 잘 담겨 있는 작품이다. 비록 시왕권속들이 남아 있지 않아 완전한 구성체계는 갖추지 못했지만, 높은 종교적 감성과 조각적 완성도를 간직하고 있다.
4.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종 목 보물 제1981호
지 정 일 2018.06.04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속초 신흥사는 외설악 동사면 기슭에 위치하는 사찰로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 자장율사가 향성사로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건 후 소실 된 사찰을 임진왜란 이후 1644년(인조 22년) 향성사 옛터에서 아래로 10리 떨어진 곳에 신흥사로 다시 세웠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은「설악산신흥사대법당중창기」(1749년), 「신흥사극락전중수기」(1770년), 「신흥사극락보전중수상량문」(1821년) 등의 자료에 의하면 영조 25년(1749년)부터 순조 21년(1821년)까지 근세 이전에 네 차례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보수공사 기록 등 연혁을 확인할 수 있는 풍부한 문헌 기록을 갖고 있어 건물의 역사를 입증하고 있다. 신흥사 경내의 중심 영역은 마당을 중심으로 주불전인 극락보전과 출입문인 보제루가 마주보고 있으며 마당 좌우에 운하당과 적묵당이 자리잡고 있는 사동중정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극락보전은 18세기 중엽에 중건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서, 18~19세기 영동지방의 중요한 왕실 원당사찰로서 세부의장 및 공포형식이 우수하고 기단과 계단, 창호 등 높은 품격의 요소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기단의 모란, 사자 문양과 계단 소맷돌의 삼태극, 용두 문양 조각들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사례이다. 창호는 소슬빗꽃살 등 다양하고 화사한 꽃살로 장식했으며 보존상태도 우수한 편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함과 품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조선후기 다포식 공포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물천장 등의 구조와 내부 닫집의 섬세한 조각형태 그리고 건립 당시로 추정되는 단청문양이 남아 있다. 이처럼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은 형태, 구조, 장식 측면에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여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역사적, 건축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5.속초 조양동 유적
종 목 사적 제376호 지 정 일 1992.10.10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조양동 산142외 9필 시 대 청동시대
동해안 청초호수 근처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기원전 8세기경에 사람이 살았던 집터와 무덤들이다.
1992년 7채의 움집터와 고인돌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집터는 생토 풍화암반층을 40∼60cm 길이로 파내고 바닥에 고운 진흙을 얇게 깔아 만들었다. 규모는 동서로 긴 네모꼴로 크기는 약 23∼76㎡ 로 밝혀졌다. 이것으로 당시 사람들이 약 7∼23평 크기의 움집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로는 많은 석기와 토기가 나왔다. 특히 고인돌에서 찾은 부채꼴 모양의 청동도끼(선형동부)는 함경남도 지역에서는 나온 적이 있으나,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는 처음 나와 이 지역 선사문화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6.신흥사 경판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설악산 신흥사에 소장되어 있는 경판은 불경을 찍어 내던 각판으로, 나무 판에 도장 새기듯 불경을 새긴 것이다.
경판은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을 비롯하여 법화경 경판 일부, 다라니경 경판 일부와 기타 흩어져 있는 몇 매의 경판 등 모두 280매가 소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3·4쪽과 13·14쪽의 경판 두 장이 빠져 있고, 한문 원문에 한글 번역문까지 함께 싣고 있으며 중요한 부분은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이 경판 끝 장에 ‘순치 15년 강원도 양양부 설악산 신흥사 개간’이라는 연기가 있으니 조선 효종 9년(1658)에 간행했던 것이다.
7.속초 김종우가옥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5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도문동 1190
시 대 조선시대
이 가옥은 18세기 중엽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현 소유자의 부친 때부터 이 곳에서 살아오고 있다.
안채와 행랑채 그리고 부속 창고로 이루어지며 집의 본채인 안채는 온돌 중심의 겹집에 마루가 도입된 ‘ㄱ’자 형태이다. 팔작지붕의 5량가 짜임새이며 평면 배치는 우측에 부엌이 있고 전열에는 마루 2칸과 사랑방이 놓이고 후열에는 안방, 뒷방, 뒷사랑이 있다. 부엌에 이어져 있는 외양간은 본채 지붕과 같은 높이로 한 칸 돌출되어 있으며 상부는 저장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연석 쌓기 기단과 투박하게 다듬은 목재는 독특한 멋을 내고 있다.
겹집 형태이며 마구간이 본채에서 돌출된 구조는 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전통 민가 형식이다.
8.신흥사 보제루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지 정 일 1985.09.13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설악산 동쪽 기슭에 있는 신흥사에 있으며, 조선 영조 46년(1770)에 세워진 것으로, 장대석으로 2단 쌓은 기단 위에 정면 7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건물은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운하당과 적묵당이 있는 마당을 둘러싸 사찰 중심 영역의 공간성을 확보해 준다. 건물의 하부는 기둥으로만 구성된 열려 있는 공간으로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 모습을 보여주는 보제루 내에는 법고와 목어, 대종, 경판이 보관되어 있고 몇몇의 현판과 중수기가 걸려 있다. 이 중에는 이 사찰이 왕실의 원찰이었음을 보여 주는 현판이 걸려 있다.
9.속초 신흥사 금고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3호
지 정 일 2011.08.12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이 금고는 명문이 남아있어 정확한 제작연대(1788년)와 주조 경위를 알 수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강원도에서는 유례가 드문 금고이다.
10.속초 신흥사 동종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4호
지 정 일 2011.08.12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이 동종은 18세기 후반 동종제작이 현저히 감소하는 시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명문이 남아있어 정확한 제작연대(1788년)와 주조 경위, 주조 장인 등을 알 수 있는 등 강원도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예라는 점에서 지정 보존가치가 있다.
11.속초 신흥사 안양암 아미타회상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5호
지 정 일 2011.08.12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이 불화는 화기를 통하여 조성연대(1874년)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조선후기 강원도 지역 불교회화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지정 보존가치가 있다.
12.속초 신흥사 명부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6호
지 정 일 2011.12.16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신흥사내
시 대 조선시대
18세기에 건축된 속초 신흥사 명부전은 전면 창호의 조형과 구성에서 보이는 독특함과 전체적인 통일성 등을 볼 때 조선후기 사찰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인 간략화와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어 조선후기 사찰건축의 양식적 특징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지정 보존가치가 있다.
13.신흥사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시 대 조선시대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자장이 ‘향성사’라는 이름으로 세웠으나 698년 화재로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뒤 의상이 ‘선정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워 1000여 년간 번창하다가 조선 인조 20년(1642) 화재로 또 다시 소실되었다. 2년 후인 1644년경 영서, 혜원, 연옥 세 스님이 선정사 아래쪽에 절을 세웠는데, 이 절이 지금의 신흥사이다. 1947년 대웅전을 시작으로 여러 건물들을 차례로 다시 세움으로써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 명부전, 영산전, 보제루 등을 비롯하여 3개의 문과 여러 부속 암자가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은 현종 5년(1664)년에 세운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명부전에는 부처를 도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셨고, 보제루에는 휴정 등 고승 60여 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1400여년 전 ‘향성사’시절의 범종은 한국전쟁 때 총상을 입은 뒤 수리하여 보존 중이다.
14.속초 김근수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4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하도문2길 63 (도문동 1504)
시 대 조선시대
나지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진 마을 가운데에 남향으로 자리잡은 집이다. 전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 함경도형 온돌 중심 겹집에 마루가 수용된 형태로, ‘도광 5년(1825)’과 ‘건륭 27년(1762)’의 명문기와가 발견되었으며, 확실한 건립연대는 미상이다.
홑처마 팔작기와지붕 형태의 가옥으로 대대로 함평 이씨가 살았으나 삼십년 전 현 소유자가 매입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회령댁’, ‘방앗간댁’으로 불리고 있다.
평면은 부엌과 본채 지붕에서 이어져 내려와 돌출된 마구간을 두고서 전열에 우물마루 2칸과 사랑방이 있고 후열에는 안방, 아랫방, 뒷사랑이 있다. 뒷사랑에는 가묘를 모시는 벽장이 있으며 마루에는 산간 지방의 주거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코쿨’이 있다.
원래는 집의 전면에 행랑채, 곳간채, 사랑채가 있는 대가옥이었으나, 해방 전후 규모가 축소되어 현재는 안채만 남아 있다.
풍수에 ‘뱀’의 형국에 해당하는 명당 자리라고 전하며 집 주위에는 안담과 바깥담이 주변을 소담하게 두르고 있다.
15.속초 신흥사 부도군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5호
지 정 일 1991.02.25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06 (설악동 산26-11)
시 대 조선시대
설악산소공원 동쪽 기슭에 있는 이 부도군은 조선 인조 22년(1644)에 신흥사가 중건된 이후 역대 고승들의 부도를 단일 장소에 조성한 전형적인 부도군으로, 19개의 부도가 있다.
대원당탑 등 3개가 원당 모양의 부도이며, 성곡당탑 등 16개가 석종 모양인데, 주인을 알 수 있는 것이 12개이다.
부도와 함께 신흥사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신흥사 사적비를 비롯하여 강세황이 쓴 용암당대선사비 등 6개의 비석이 있는데, 1764년부터 1827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16.속초 노학동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지 정 일 2000.01.22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산433
시 대 고려시대
설악산 수련원에서 달마봉 쪽으로 약 30분 정도 오르면, 한적한 절터에 이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1층 탑신과 지붕돌[옥개석]은 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2층 지붕돌과 3층 탑신, 3층 지붕돌과 노반은 각각 1석으로 조성되었고, 2층 탑신은 없어졌다.
탑의 가장 큰 특징은 1층 탑신의 4면에 사방불을 조성한 점이다. 연꽃 받침 위에 원형 머리 빛[두광]과 몸 빛[신광]을 갖춘 좌상을 조각하였는데, 마모가 심하여 정확한 형상을 알 수는 없지만 안정감 있게 돋을새김[부조]되었다.
강원 영동지방의 석탑 중에서 사방불이 조각된 귀중한 석탑으로, 조성 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의 높이는 1.8m이다.
석탑을 중심으로 약 200평의 대지가 마련된 점과 기와 조각과 석축이 있는 점으로 보아 암자터로 추정된다. 신흥사의 부속 암자인 소림암 터라고도 하지만 현 위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7.속초 매곡 오윤환 선생 생가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7호
지 정 일 2006.07.28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상도문1길 30 (도문동 195)
시 대 조선시대
속초지역의 유학자이셨던 매곡 오윤환(1872~1946) 선생의 생가로서, 전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 함경도형 겹집이다. 본채 전면에는 머름대가 있으며, 안채 뒤쪽으로 일자형의 방들이 이어져 있다. 뒷마당에는 증축한 곳간과 창고가 있다. 마구간 벽체는 판벽으로 짜여 있고 본채 지붕에 이어서 내림지붕으로 낮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안방에는 할머니가, 윗방에는 시어머니가 거주하였으며, 윗방에는 툇마루가 후원 쪽으로 나와 있어 후원을 거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랑방에는 조부가, 윗사랑에는 손자가 생활하였고 뒷방에는 며느리가, 윗 뒷방에는 딸들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18.속초 신흥사 칠성도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1호
지 정 일 2011.08.12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시 대 대한제국시대
이 칠성도는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화기를 통하여 조성연대(1901년), 제작자, 신흥사 봉안 경위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등 강원도 지역에서는 희소성 있는 칠성도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19.속초 신흥사 청동시루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9호
지 정 일 2015.11.06
소 재 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170)
시 대 조선시대
시루 형태는 아래쪽에서 상부로 올라가면서 완만하게 넓어지고, 구연부에는 한 단의 턱이 있으며, 약간 외반된 이중구연을 지닌 원통형이다.
시루 내저의 투조는 중심에서부터 3개의 동심원을 두고 수레바퀴살과 같이 구획을 하여 약간의 장식성을 보이고 있다. 외부 몸통 부분에는 약간씩 사이를 두고 음각으로 5개의 횡선이 둘러져 있으며 2개의 손잡이가 좌우에 각각 부착되어있다.
특히 시루의 구연단에는 얇은 횡대를 두른 후 그 아래에 타정 수법으로 “양양신흥사□상실유동도광4년갑신오월일매□전백근도감□현별좌광□”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의 내용으로 보아 이 시루는 양양 설악산 신흥사에서 1824년(도광 4) 왕실의 제사를 위해 청동 백근을 주조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루는 신흥사 유물 중에서도 왕실과 관련된 사격과 사세를 알려주는 자료 중에 하나로, 명문에 있는 도광 4년은 신흥사가 본격적으로 왕실의 원찰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던 때이다. 따라서 이 청동시루는 왕실의 제사인 국기일과 관련된 의식에 필요한 제물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흥사 보제루에는 1775년 쓰여 진 국기일 현판이 보존되어 있고, 영조와 원비인 정성왕후(1692~1757)의 기일이 기록되어 있다. 1803년 부총(?~?)이 쓴 신흥사 「용선전기」에는 신흥사가 열성조의 위패를 봉안한 사찰이라고 하였으며 국기일 현판에 영조 승하 후 후기로 적어 넣은 것으로 보아 왕실원찰로서 기능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특히 왕실의 역대 위패를 모신 용선전 건립을 계기로 정조의 추복사찰이 되었다. 신흥사 청동시루는 조성 당시의 사격과 사세를 가늠하게 해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시루는 보통 창사 연혁이 오랜 절에서 가끔씩 발견되는 유물이며 그 중에서도 청동시루는 국가나 왕실의 제사의식을 봉행하던 왕실 원찰에서 전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왕실의 원찰 기능을 하던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시루는 조선시대 국가의 제사에 대한 일을 맡아 보던 봉상시의 내력과 업무를 정리한 책인 태상지에 실린 것과 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태상지에는 김으로 곡식을 찌는 시루는 길이 3척으로 밑바닥은 둥근테를 가로지른 사선과 함께 투공된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