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정보] 영월군 남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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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에는 어떤문화재가 있나요???꼭 알고 싶네요. 제발좀 알려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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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초코님의 댓글

(강원도 영월군 남면의 문화재)

1.영월 청령포

종 목  명승 제50호

면 적  204,241㎡

지 정 일  2008.12.26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번지 등

영월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서쪽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이 형성된 곳으로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탑 돌무더기 등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을 비롯하여 단종의 어가 주변에 조성된 크고 오래된 소나무림이 270° 돌아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이다.

2.영월 청령포 관음송

종 목  천연기념물 제349호

수 량  1주

지 정 일  1988.04.30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번지

관음송은 영월의 청령포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19m의 크기로 1.6m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청령포는 세조 2년(1456)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단종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관음송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나라의 변고를 알려 주었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이 나무는 단종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3.영월 창령사지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81호

지 정 일  2003.01.18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 1075

시 대  조선시대

이 절터는 초로봉(해발 약 570m) 동북쪽 경사면의 해발 약 400m정도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발굴에 의해 500나한의 일부로 추정되는 나한상과 기와류, 도자기류, 철제류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일부 기와조각에는 ‘창령’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이 곳이 여러 문헌에 나오는 “창령사”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조각 수법으로 볼 때 나한상은 고려후기에서 조선초기로 이어지는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함께 출토된 기와·자기류 등이 16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유물인 것으로 보아 이 절은 15세기 말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여러 문헌에 보이다가 18세기 말 이후에는 문헌에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절터에는 1960년대까지 조그마한 암자와 석탑이 있었다고 하나, 암자가 없어진 이후 1970년대에 탑은 도난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월 창령사지는 나한상과 함께 나한상을 봉안했던 나한전터가 최초로 발굴된 중요한 유적이다.

4.영월 북쌍리 고택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0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들골안길 127-4 (북쌍리 782)

시 대  조선시대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00년 이상 되었다고 전하며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로 구성된 ㅁ자형 구조이다. 안채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대청 기둥만은 굵은 원형의 기둥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며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을 두고 왼쪽으로 안방과 부엌을 직각으로 두었다. 사랑채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에 一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마루방·사랑방·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방의 앞쪽에는 넓은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대문 왼쪽에는 2칸 사랑방을 배치하였고 방 앞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헛간채는 나중에 늘려지은 건물로 양식은 영서지방 전형의 전통 민가 형식을 따르고 있다.

5.영월 창원리 고택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2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원골길 170-9 (창원리 455)

시 대  조선시대

산을 등지고 자리잡은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접하여 ㄷ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一자형 헛간채가 배치되어 전체로는 ㅁ자형 배치를 띠고 있다. 안채는 툇마루를 설치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웃방·안방·부엌을 직각으로 배치하였다. 왼쪽으로는 건넌방이 접하여 ㄱ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영서·중부 지방 민가 형식이다. 사랑채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며 높고 경쾌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6.영월 토교리 양지말 성황당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 838

시 대  미상

성황당은 토교3리 양지말마을의 북서쪽 산기슭의 양지골에 위치하고 있다. 약 10여 년 전에 재건축하였다고 하며 지붕은 기와이며 통나무 건축물이고 규모는 약 4평 정도이다. 당 숲은 아카시아 나무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정월 초이튼날 10시 정도에 제사를 지낸다.

7.영월 토교리 도요지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 54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 양지마을(양지말) 뒤쪽, 사기장골이라 불리는 곳에 있다. 17~18세기의 도요지(가마터)로 추정되며, 면적은 약 990㎡이다. 해발고도 368.5m의 야산 경사면에 있는 도요지는 지금은 밭으로 변하였는데 밭 가장자리로 무덤 형태의 사기파편 무더기가 쌓여 있으며, 굽는 과정에서 일그러진 것으로 보이는 사기편이 무수히 널려 있다. 1991년 5월 김종석 씨가 이곳에서 백자병 1점을 발견하여 신고한 바 있다.

8.영월 김병식 효자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 584-1

시 대  조선시대

김병식 효자각은 남면 토교리의 농협창고에서 좌측 흙다리 마을로 가는 마을길이 끝나는 언덕 위에 있다. 현재의 정각은 퇴락한 상태이나 단청과 기둥 및 들보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정성을 들여 건축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정각 내에는 유하 금종한(1844~1932)이 짓고 신현태가 쓴 「표문기」가 보관되어 있다. 김종한은 안동김씨로 예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그가 「표문기」를 무진년에 썼으므로 1928년 훨씬 이전에 정문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1985년에 지붕을 보수한 바 있으며, 후손 김종철이 관리하고 있다. 김해김씨인 김병식의 자는 성수, 호는 래초이다. 대대로 효성이 지극한 집안에 태어나 부친에게 효도하였으며 부친이 타계하자 삼년의 시묘살이를 하루 일처럼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모친이 늙어 병이 들자 농사짓던 소를 잡아 달포 동안 봉양하였고, 겨울에 얼어붙은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봉양하여 병이 낫도록 하였다. 모친이 타계할 때에는 자신의 나이가 칠순이 되었는데도 상례를 극진히 치렀다.

 

9.삼척김씨 효부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 392-2 시 대  일제강점기

삼척김씨 효부각은 38번 국도 영월방향으로 진행 중 영월경찰서 남면지구대 못미쳐 우측으로 원골다리를 지나 기찻길을 건너면 도동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을 지나 원골마을로 가는 시멘트 포장길 우측에 위치한다. 원동마을 입구 길가에 정각이 있으며, 현재 후손 고진철이 관리하고 있다.

비신은 120×43.5㎝, 두께는 16㎝이고 가첨석은 폭이 76㎝, 높이 30㎝이다. 1919년 정성묵이 쓴 「포창완의문」이 비석의 뒷면에 새겨져 있으며 현재의 정각은 1943년에 건축된 것이다.

삼척김씨는 고수창의 처로 시부모에게 갖은 효성을 다하였다. 계절마다 밥상에 시부모가 좋아하는 반찬을 차려 봉양하였으며 아침 저녁으로 불을 때 방을 식지 않게 하였다. 바쁜 농사 일에도 불구하고 시아버지의 행장을 돌보아 늘 깨끗한 의관으로 외출하게 하였다. 홀로 된 시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6년간이나 수발을 하였으며 임종할 때 아들에게 며느리의 효부문을 세워 달라고 유언을 남기었다고 한다.

 

10.청령포 단종유지비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7-1 시 대  조선시대       

영조 39년 9월에 예조판서 이이 장릉을 봉심하고 돌아와 임금에게 보고할 때, 청령포는 곧 단종이 거처하던 곳인데, 담의 기초가 아직 있으나 가시덤불이 가리워져 있으니, 행로를 가리키는 비석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아뢰었다. 영조는 이를 듣고 도신에게 명하여 어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라는 여덟 글자를 새겨 비석을 세웠다.

전면, 측면 각 1간의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는 유지비는 총 높이 162cm로, 1단의 화강석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웠다.

 

11.부사 정원화 청덕선정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연당리 산95-3

시 대  조선시대

이 선정비는 남면소재지에서 양연교를 지나 연당5리 승당마을 못미쳐 빙곡2교를 지나면 돌고개골이라는 골짜기가 지방도 동쪽으로 나오는데 이 골짜기와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인 도로 바로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비신은 115×54cm이며 두께는 12㎝이다. 비문 전면에 ‘부사정공원화청덕선정비 / 갑신십월일 입’이 음각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에 따라 용정원마을에 건립된 정원화의 선정비는 1년 늦은 1885년에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12.창원리 선정비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영월로 158 (창원리 1192)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선정비군은 38번 국도(제천-영월간)변에 위치한 새술막마을 입구 50여m 북쪽에 위치한 고추밭 가장자리에 파괴되어 흩어져 있다. 비석들은 38번 국도의 확포장공사 우회도로신설로 인해 원위치를 이탈한 상태로, 우회도로신설공사 당시 비신과 비각은 모두 파괴되어 고추밭 가장자리로 옮겨졌다. 관찰사남정순선정비, 순찰사남정익선정비, 관찰사이봉의선정비, 부사금오현부망비,부사이만선부망비가 있다.

13.청령포 금표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시 대  조선시대

청령포금표비는 단종유지비각 북쪽에 위치한다. 고판서 윤양래(현종 14년〔1673〕∼영조 27년〔1751〕)는 영조 때 대사간으로 재직중 탕평책을 건의하여 왕의 신임을 받았으나, 영조 1년(1725) 7월에 영월부사로 좌천당했다가 3년(1727) 4월에 병조참판으로 등용되었다. 그가 영월부사로 있을 때 청령포를 찾아보고 영조 2년(1726) 10월 이 금표비를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장릉을 봉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령포도 살펴보고 사람들이 이곳에 왕래하는 것을 금하는 금표를 세웠으며 또한 호장 엄흥도의 비석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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