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정보] 원주시 행구동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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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행구동의 문화재를 조사하는게 있는데

원주시 행구동의 문화재  좀 알려주세요

 

되도록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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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100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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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행구동의 문화재)

 

1.원주 보문사 청 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지 정 일 1985.09.13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산105  시 대 고려시대

보문사터로 알려진 곳에 지금의 절을 새로 지을 때 중 땅속에서 발견된 탑으로, 점판암(벼루를 만들던 돌)으로 이루어진 청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구조인데, 기단과 탑신의 모습이 비슷하여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현재는 이 탑을 보호하기 위해 탑의 아래에 화강암의 높고 널찍한 2층의 단을 마련해 놓았다. 아래·위층 기단은 윗면에 연꽃을 새겨놓았고,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불교문자인 범어를 새겼다. 현재 탑을 이루고 있는 전체가 모두 원래의 것은 아니고, 탑신의 2·3·4층의 몸돌과 5개의 지붕돌, 두 기단의 맨윗돌 외에는 최근에 새로 만들어 끼워놓은 것이다.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탓인지 심하게 닳고 부서진 부분이 많으나, 고려시대의 청석탑 양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탑이다. 

 

 

2.원주 운곡 원천석 묘역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75호  지 정 일 2000.11.18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산37  시 대 조선시대

운곡 원천석(1330∼?) 선생의 묘이다.

원천석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 등과 함께 성리학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으며 조선 태종의 어릴적 스승이기도 하였다. 고려말에 정치가 문란해지자 이를 개탄하면서 치악산에 들어가 숨어 버렸다. 조선왕조가 들어서 선생에게 벼슬이 주어지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켜 나아가지 않았다.

선생의 묘역 내에는 봉분 앞에 묘비와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3.창의사

종 목  원주시 향토유적 제2008-2호

지 정 일  2008.04.23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344번지 시 대  현대

원천석(1330~?) 선생의 본관은 원주, 자는 자정, 호는 운곡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은사로 널리 알려졌으며,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는 ‘회고가’의 지은이로 유명하다. 선생은 1330년(충숙왕 17년) 개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춘천향교에서 공부하였고, 27세에 과거에 나아가 국자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고려 말의 정치적 어지러움을 보고 원주 치악산에 은거하여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모셨고, 목은 이색 등과 교유하면서 시국을 개탄하였다. 일찍이 이방원을 가르친 일이 있어 훗날 그가 조선조 태종 임금으로 즉위하여 선생을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태종이 직접 치악산으로 찾아갔으나 미리 소문을 듣고 피하였다.  만년에는 유학자이면서도 불교와 도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삼교일치론’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운곡시사』가 있다. 운곡 선생은 고려왕조를 재건하려는 입장에서 왕조교체보다는 제도개선에 치중하는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또 지방관은 형정을 너그럽게 집행하고 인사도 공도에 맞게 하라고 하였다.

선생의 삶에 대해 허목은“군자는 숨어살아도 세상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선생은 비록 세상을 피하여 스스로 숨었지만 세상을 잊은 분이 아니었다. 변함없이 도를 지켜 그 몸을 깨끗이 하였다.”라고 표현하였다. 선생의 정신은 원주의 사상적 기초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변에 흐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당의 진입문은 솟을 삼문으로 되어 있는데 반하여 평삼문으로 되어 있으며 당우는 삼칸의 조선후기 익공양식으로 복원되어 있다.

  

 

4.충렬사

종 목  원주시 향토유적 제2009-1호

지 정 일  2009.04.30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석경길 24 (행구동 402-3)

시 대  현대

  충렬사는 1291년(고려 충렬왕 17년)의 합단적 침입과 1592년(조선 선조 25년) 왜적 침략에 맞서 국권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숭고한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1290년 원나라 반적 합단적[카단]이 고려의 동북변방을 침입한 이후 1291년 철령을 넘어 교주도로 난입하여 양근[양평]을 점령하고 원주에 이르러 치악산 영원산성을 공격하자, 원주별초에 소속되어 있던 향공진사 원충갑은 결사대 중산, 방호별감 복규, 흥원창판관 조신, 별장 강백송, 원주 관리 원현·원종수, 유생 안수정 등 다수의 원주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들을 물리쳤다. 이로부터 합답적은 예봉이 꺾여 여러 고을에서도 굳게 방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원충갑 등의 공로로 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 동안 면제되었다.

일본국 풍신수길의 조선 침략으로 촉발된 임진왜란은 유사 이래 최대의 국가적 위기상황이었다. 적장 모리길성이 이끄는 왜적이 영동지방을 짓밟고 남한강 상류를 따라 평창·영월·주천·신림을 거쳐 원주로 침입하자, 원주목사 김제갑은 병사와 고을 백성들을 모아 영원산성에서 결전을 펼쳤으나 중과부적으로 영원산성은 함락되기에 이르렀다. 김제갑 원주목사는 항복할 것을 강요하는 왜적에게 굴복하지 않다가 끝내 죽음을 당하였고, 그의 작은아들 김시백 또한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비보를 들은 부인 전주이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때는 1592년(조선 선조 25년) 8월 25일이었다. 김제갑 목사와 아들 그리고 부인은 충성과 효도와 정렬로써 순절하여 충 · 효 · 열의 표상이 되었다.

이에 앞서 강원도조방장 원호는 1592년 5월 여주 신륵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패주하는 적을 구미포에서 섬멸하여 서울로 향하던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는 전공을 세웠고, 이러한 승첩으로 경기·강원양도조방장 겸 여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1592년 8월 왜적에 의해 철원·평강·김화 등이 유린당하자, 병사를 이끌고 김화에 이르러 분전하였으나 왜적의 형세를 당할 수 없어 왜적에게 굴복되기 전에 절벽 아래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1669년(조선 현종 10년) 원주 하동리에 14칸으로 건립된 충렬사는 원주 유생들이 상소하여 1670년(조선 현종 11년) 윤 2월 7일 ‘충렬사’로 사액되었고, 응양상호군 충숙공 원충갑 · 원주목사 문숙공 김제갑 · 여주목사 충장공 원호 등 3위를 배향하였다.

  1871년(조선 고종 8년)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려 없어진 이후 복원되지 못하다가 원주원씨 운곡대종회에서 건립부지를 희사하고 강원도와 원주시가 공동으로 2009년 준공하여 매년 원주시민의 정성을 모아 제향하고 있다. 한편 충렬사와 관련된 유물로 1670년 당시의 사액현판은 1871년 충렬사가 없어지면서 충북 괴산 김제갑 원주목사의 불천지위 사당에 후손들이 보관해 오다가 2009년 5월 7일 충렬사 복원건립 준공에 맞춰 원주시에 기증하였다.

  

5.보문사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산105 시 대  신라

소초면 흥양3리 산1784번지에 있는 입석사는 치악산 서남쪽 중턱에 있다.

자세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은 최근에 신축되었고,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일부 사용하여 복원한 3층 석탑이 있다.

본래 입석사는 입석대로부터 원주 쪽으로 약1km정도 떨어진 곳에 암자가 있던 것을 뒤에 현재 입석사 옆의 옛터로 옮겼다가 최근에 다시 신축한 것이라고 한다.

 

 

6.국형사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고문골길 155 (행구동 98) 시 대  신라

원주시 행구동 98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국형사는 국향사라고도 부른다.

전해지는 말로는 신라 경순왕대에 무착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고문암이라 하였고, 무착대사는 이곳을 호법대도량으로 하여 불도에 정진하여 신통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당시의 유물·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조 태조때 이절에 동악단을 쌓아 동악신을 봉안하고 매년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1907년 벽하와 응송이 중창하였으며, 1945년에 자항이 1974년에는 김용호가 각각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무애당·관음전·요사 등이 있으며, 보암당대선사영주탑과 그 옆에 망실된 부도 1기가 있다. 또한 봄과 가을에 호국대제를 봉행하는 동악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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